산업 K조선, 차세대 선박 '설계 선점' 경쟁···AIP 잇달아 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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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조선, 차세대 선박 '설계 선점' 경쟁···AIP 잇달아 확보

등록 2026.10.06 14:43

이건우

  기자

AIP로 기술 위험 낮추고 선주 신뢰 확보···초기 설계 경쟁 본격화삼성重은 사업화·한화오션은 표준화·HD현대는 시장 확장

그래픽=이찬희 기자그래픽=이찬희 기자

국내 조선 3사가 암모니아 추진선과 부유식 액화천연가스 생산설비(FLNG), 차세대 가스운반선 등 미래 선박의 기본설계를 선점하는 데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달 열린 세계 최대 가스 산업 전시회를 통해 글로벌 선급의 기본인증(AIP)을 잇달아 확보하며 본격적으로 시장이 열리지 않은 차세대 선종의 설계와 핵심 기술을 미리 검증하는 모습이다.

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국내 조선 3사(HD한국조선해양, 한화오션, 삼성중공업)가 지난달 태국에서 열린 가스텍 2026에서 글로벌 선급으로부터 새롭게 확보한 것으로 확인되는 AIP는 총 20건이다.

HD현대 조선부문이 10건으로 가장 많았고 삼성중공업이 6건, 한화오션이 4건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술이 복수의 선급으로부터 인증받은 사례를 제외하면 AIP 대상 기술·설계는 모두 18건이다.

AIP는 새로 개발한 선박이나 기자재의 설계 개념이 실제로 구현 가능한지, 안전상 큰 문제가 없는지를 초기 단계에서 확인하는 절차다. 조선사는 이 과정에서 선급의 검토를 받아 설계상 위험요소를 미리 찾아내고 이후 상세설계 방향을 잡을 수 있다.

기본설계검증(BDR)은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AIP를 받은 개념을 실제 기본설계 수준으로 구체화한 뒤 선체와 주요 설비, 시스템 구성이 선급 기준에 맞게 설계됐는지를 보다 세부적으로 확인한다.

두 인증 모두 상용화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개발 초기 위험요소를 줄이고 이후 상세설계와 실증으로 넘어가기 위한 검증수단으로 활용된다.

삼성중공업은 AIP에서 이어지는 후속 사업화의 움직임이 명확하다. 회사는 이번 가스텍에서 자체 개발한 천연가스 액화시스템 'SENSE'를 적용한 FLNG 상부설비 개념설계에 대해 미국선급(ABS)과 영국 로이드선급(LR)의 AIP를 확보했다.

ABS로부터는 BDR도 받는 동시에 국내 해양플랜트 엔지니어링 업체 가스엔텍과 SENSE의 첫 사업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설계 검증을 실제 사업 모델로 연결하는 작업에도 착수했다.

회사가 AIP에 그치지 않고 라이선싱까지 추진하는 것은 자체 액화공정 기술을 향후 FLNG 수주뿐만 아니라 외부 판매가 가능한 기술로 확대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한화오션은 표준 FLNG 설계에 대해 ABS와 노르웨이선급(DNV)의 AIP를 획득했다. 앞서 표준 부유식 원유 생산·저장·하역설비(FPSO) 설계를 개발한 데 이어 FLNG까지 반복 적용이 가능한 플랫폼 설계를 구축하는 전략이다.

프로젝트마다 처음부터 설계를 다시 하는 대신 검증된 기본설계를 반복 적용해 초기 설계 기간을 단축하고 프로젝트 수행 과정의 불확실성을 낮추겠다는 것이다.

HD현대는 AIP를 기존 가스운반선뿐만 아니라 새로운 해양 인프라 사업으로 영역을 넓히는 데 활용하고 있다. HD한국조선해양은 힘센엔진을 기반으로 한 100MW급 부유식 발전설비의 기본 개념설계와 전력계통, 복원성 등을 ABS로부터 검증받고 후속 상세설계에 들어갈 계획이다. 회사는 선박 설계·엔진 기술을 데이터센터와 산업단지용 해상 전력 인프라로 확장한다는 방침이다.

삼성중공업은 독자 기술의 사업화, 한화오션은 표준설계 확보, HD현대는 기존 조선 기술의 신규 시장 확장에 각각 중점을 두고 있다.

이같이 조선사들이 개발 초기 단계부터 선급과 설계를 검증하는 것은 차세대 연료일수록 선주가 떠안아야 할 기술적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액화천연가스(LNG)와 달리 암모니아·수소 등은 선박 적용 경험과 관련 규정, 연료 공급 인프라가 아직 충분히 축적되지 않은 상황이다.

선주는 선박을 발주할 때 연료 효율뿐 아니라 안전성, 제조사 보증, 유지보수 체계와 보험 인수 가능성까지 따져야 한다. 이 과정에서 선급의 사전 검증은 기술 위험 부담을 일정 부분 덜어주는 근거로 활용된다.

물론 AIP를 확보했다고 곧바로 실제 선박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상세설계와 제품 시험, 위험도 평가에서 나온 보완사항 이행 등 추가 검증이 필요하고 기술에 따라 기국 승인도 거쳐야 한다.

선주 역시 실선 운항 실적과 경제성, 연료 가격과 벙커링 인프라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기술 개발 속도와 실제 시장 형성 속도에는 차이가 있다.

다만 차세대 연료 기술이 실제 선박에 적용되는 속도는 과거 LNG 도입 초기보다 빨라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LNG 추진선과 연료저장 기술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선급 규칙과 위험도 평가 방식, 설계·운항 경험이 축적됐고 이를 메탄올과 암모니아 등 새로운 연료에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선사 입장에서는 새로운 연료가 등장할 때마다 검증 체계를 처음부터 구축해야 했던 과거보다 제품 개발과 선박 적용에 필요한 시간을 줄일 수 있는 기반이 생긴 셈이다.

조선업계의 AIP 확보 경쟁은 인증 건수를 늘리는 것보다 향후 발주가 예상되는 시장의 설계를 먼저 확보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 조선업은 선주가 요구하는 사양이 정해진 뒤 설계를 시작하면 수주 대응에 시간이 필요한 만큼 미리 기본설계와 안전성 검증을 마친 업체가 초기 기술협의에서 유리하다.

특히 암모니아 추진선과 FLNG, 부유식 발전설비처럼 아직 시장 규모가 확정되지 않은 분야에서는 어떤 설계가 사실상의 표준으로 자리 잡는지가 향후 수주 경쟁력에 영향을 줄 수 있다.

한국선급 관계자는 "AIP는 상용화를 보장하는 인증은 아니지만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초기 단계에서 안전성과 기술적 타당성을 확인하고 이후 상세설계와 실증 방향을 잡는 데 의미가 있다"며 "특히 실선 적용 경험이 적은 기술일수록 선급의 사전 검증과 위험도 평가 결과가 선주가 기술을 검토하는 중요한 판단 근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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