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7년 4월 신규 공고부터 글로벌 Scope 1·2·3 탄소감축계획 요구영국 법인 넘어 한국 공장·공급망 정조준셀트리온 UK, 기준연도 Scope 3 절반 재산정
영국 국민보건서비스(NHS)에 의약품을 공급하는 국내 바이오기업 앞에 새로운 조달 문턱이 다가오고 있다. 가격과 품질, 공급 안정성에 더해 기업이 대외적으로 제시하는 '탄소 데이터' 자체의 신뢰도를 입증해야 하는 시험대다.
영국 국민보건서비스 잉글랜드(NHS England)는 2027년 4월 1일 이후 조달 절차가 개시되는 연간 500만파운드(부가가치세 포함) 이상의 대형 신규 계약과 모든 신규 프레임워크를 대상으로 한층 강화된 '2027 NHS 탄소감축계획(CRP)' 지침을 본격 적용한다. 기존 제도가 영국 내 사업장의 Scope 1·2와 제한적인 5대 Scope 3 배출량을 점검했다면, 새 기준은 입찰 참여 법인의 글로벌 Scope 1·2와 사업 전반에 연관된 Scope 3 전 영역으로 검증 경계를 넓힌다. 공인된 온실가스 감축 계획은 이사회 승인을 거쳐 외부에 공개해야 하며, 최소 요건을 채우지 못할 경우 원칙적으로 기술·가격 경쟁조차 거치지 못한 채 입찰 자격을 잃는다.
이번 규제의 핵심은 단순히 "탄소를 많이 배출하면 NHS에서 탈락한다"는 1차원적 규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2027 CRP는 기업이 조직 경계를 합리적으로 설정했는지, 사업과 얽힌 Scope 3 항목을 누락 없이 식별했는지, 그리고 기준연도와 당해연도 배출량을 일관된 산정 방식으로 도출했는지를 검증하는 '적격 심사(Pass/Fail) 게이트'에 가깝다. 첫해인 2027~2028 회계연도에는 신규 편입된 Scope 3 데이터가 일부 비어 있더라도 객관적인 사유와 차기 연도 확보 로드맵을 제출하면 심사를 통과할 수 있지만, 명확한 설명 없이 특정 배출 범위를 누락하면 입찰 자격 박탈로 직결된다.
의약품은 NHS 탄소의 17%
NHS가 의약품 공급망을 정조준하는 배경은 뚜렷하다. NHS가 산정한 공급망 온실가스 총배출량(Carbon Footprint Plus) 분석에 따르면, 의약품 및 처방 관련 배출량은 전체의 약 17%(약 470만tCO₂e)에 달한다. 공급망 전반을 통틀어 탄소중립을 달성하려면 제조사와 유통사의 감축 동참 없이는 불가능한 구조다. NHS는 2027년 기업 단위 Scope 3 확대에 이어 2028년부터 의약품 등 고배출 분야를 우선으로 제품 단위 탄소정보(LCA) 요건을 단계적으로 도입할 계획이다.
국내 기업 입장에서 가장 큰 변화는 배출 산정 범위의 지리적 확장이다. 영국 현지 판매법인이 입찰 주체로 나서더라도 2027 CRP가 정의하는 '글로벌 경계'는 영국 국경 내 활동에 머무르지 않는다. NHS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해외 제조소에서 구매한 완제품이나 영국 유통을 위한 국제 운송 등도 조직 경계 분석에 따라 보고 대상에 포함된다. 모회사의 CRP를 원용하는 방안도 열려 있으나, 입찰 법인이 모회사의 100% 자회사여야 하고, 모회사의 넷제로 선언과 감축 조치가 입찰 법인에 실질 적용된다는 점을 증명해야 하는 등 까다로운 단서가 붙는다.
결과적으로 한국 공장에서 바이오의약품을 생산해 영국으로 수출하는 체제라면 현지 사무소의 전기와 차량 사용량만 집계하던 방식은 통하지 않는다. 원부자재 조달, 한국 송도 생산시설 또는 위탁생산(CMO) 거점, 국제 항공·해상 물류에 이르는 가치사슬 전반의 탄소를 어떻게 분류하고 배분했는지 정합성을 갖춰 설명해야 한다.
국내 기업 중 셀트리온과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이미 이 시스템의 직접적인 영향권에 들어섰다. 영국 조달 통계 플랫폼 및 공식 공고에 따르면 NHS England의 '브랜드 의약품 트랜치 B(Branded Medicines Tranche B)' 공급사 명단에는 셀트리온 헬스케어 영국법인(Celltrion Healthcare United Kingdom Ltd)과 삼성바이오에피스 영국법인(Samsung Bioepis UK Ltd)이 나란히 등재되어 있다. 이 프레임워크는 아달리무맙, 베바시주맙, 인터루킨 억제제 등 K-바이오의 핵심 바이오시밀러 품목을 포괄한다.
다만 2027년 4월 1일을 기점으로 기존 계약이 일시에 전환되는 것은 아니다. 적용 기준은 계약 집행일이 아닌 조달 절차 개시일(입찰 공고일)이다. 일례로 2026년 9월 계약이 개시된 프레임워크도 실제 본입찰 공고는 2026년 2월에 이뤄졌다. 2027년 하반기 계약이라도 조달 공고가 4월 1일 이전에 게시됐다면 기존 규정을 따른다.
셀트리온 UK 사례가 드러낸 '탄소 데이터 정합성'의 복잡성
국내 기업이 마주할 데이터 품질 문제는 셀트리온 영국법인이 공시한 연도별 CRP 보고서를 추적하면 파악할 수 있다.
셀트리온 헬스케어 UK는 2024년 발간한 CRP 보고서에서 2022년 기준연도 Scope 3 배출량을 206.38tCO₂e로, 총배출량을 213.39tCO₂e로 공시했다. 그러나 이듬해 제출한 2025년 보고서에서는 동일한 2022년 Scope 3 수치가 92.96tCO₂e로, 총배출량은 99.72tCO₂e로 대폭 수정됐다. 같은 기준연도의 배출량이 55%가량 급감한 것이다.
회사는 보고서를 통해 "이전 계산식에서 확인된 산정 오류를 바로잡고 영국 정부의 에너지·탄소 보고 제도(SECR) 기준과 정합성을 맞추기 위해 기준연도 수치를 재산정했다"고 명시했다. 기업이 공시하는 탄소 지표의 변동이 설비 투자나 친환경 운송 같은 물리적 감축의 결과물만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2024년 공시 실적에서도 유사한 구조가 확인된다. 셀트리온 UK의 2024년 총배출량은 97.19tCO₂e(Scope 1 7.48t, Scope 2 4.56t, Scope 3 85.15t)로 집계됐다. 전년 대비 Scope 3가 감소했으나, 감소 요인은 단일하지 않았다. 사업장 폐기물(Category 5) 부문 감소에는 영국 에너지안보·넷제로부(DESNZ)가 재활용 및 에너지 회수 계산 오류를 수정하면서 공식 배출계수를 약 70% 낮춘 행정적 조정 요인이 작용했다. 공장과 사옥을 직접 혁신해 줄인 실질 감축분과 정부 계수 변경에 따른 장부상 감소분이 뒤섞여 있는 셈이다.
물론 현장 운영 혁신을 통한 실질 감축도 있다. 회사는 영국 내 유통망을 효율화해 개별 배송 빈도를 줄여 상위 운송·유통(Category 4) 배출량을 전년 대비 25%(12.97tCO₂e), 2022년 대비 37%(22.47tCO₂e) 감축하는 성과를 냈다. 동시에 사무실 전력 사용량은 건물 전체 면적 대비 임차 면적을 적용한 추정치이며 폐기물 역시 공용 배분 방식을 쓰고 있다는 현실적 한계를 보고서에 적시했다.
이는 2027년 규제와 정확히 맞물린다. 셀트리온 UK의 현행 CRP는 필수 5개 항목(출장, 통근, 폐기물, 상하류 운송) 위주로 꾸려져 있으나, 2027년부터는 온실가스 프로토콜(GHG Protocol)의 15개 Scope 3 전 카테고리를 면밀히 대조해 보고 대상과 제외 항목의 타당성을 입증해야 한다. 셀트리온 본사는 주요 바이오시밀러 11개 품목에 대해 ISO 14040/14044 기준의 전과정평가(LCA)를 수행하며 원료부터 완제품에 이르는 밸류체인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어, 향후 본사의 원천 데이터를 영국 법인의 CRP와 결합하는 작업이 선결 과제로 꼽힌다.
삼성바이오에피스 'CMO 비중 90% 이상'···공급망 배출 관리가 열쇠
자체 대규모 상업 생산시설보다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CMO) 파트너십을 적극 활용하는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사업 구조상 공급망 데이터의 중요성이 더욱 도드라진다.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 가운데 Scope 3가 차지하는 비중은 90%를 웃돈다. 특히 완제품 조달 및 원료를 포괄하는 '구매한 제품·서비스(Category 1)'가 전체 배출의 56.7%, '판매된 제품의 가공(Category 10)'이 20.7%를 점유한다. 두 카테고리만으로 전체 탄소 배출의 4분의 3을 초과하는 구조다. 지사 직원들의 출장이나 건물 에너지 감축보다 CMO 공장의 에너지 효율과 협력사 원부자재 데이터 확보가 탄소 관리의 승부처라는 의미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이에 대응해 생산 공정의 수율과 역가를 끌어올려 배치(Batch)당 온실가스 발생량을 줄이는 공정 혁신을 핵심 감축 수단으로 가동하고 있다. 동일 수량을 공급하더라도 배양 역가가 높아지면 필요한 생산 횟수가 줄고, 이는 협력 CMO 시설의 용수·스팀·전력 소비 절감으로 직결된다. 아울러 ISO 14040 기반의 탄소발자국 평가 체계를 갖추고 영국 법인을 포함한 해외 거점을 온실가스 검증 경계에 통합 관리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양사 대응 방식은 차이를 보인다. 셀트리온은 현지 조달 법인이 직접 CRP를 운용하며 현지 물류 감축을 선제적으로 입증해 온 만큼, 기존 5개 지표를 글로벌 전 밸류체인으로 확장하는 조직 경계 통합이 당면 과제다. 반면 삼성바이오에피스는 CMO 기반의 거대 Scope 3와 공정 단위 지표를 관리해 온 만큼, 이를 NHS 조달 자격에 부합하는 형태로 영국 법인 CRP에 정밀하게 연계·이관하는 표준화 작업이 관건이다.
'단발성 보고서' 퇴출···매년 갱신 의무
또 다른 복병은 보고서의 엄격한 유효기간과 사후 갱신 의무다. NHS 지침에 따르면 입찰에 제출하는 CRP 보고서는 공고일 기준 18개월 이내의 결산 데이터로 작성돼야 한다. 계약을 체결한 이후에도 계약 기간 내내 매년 최신화된 CRP를 재공시해야 한다. 컨설팅사에 의뢰해 일회성으로 보고서를 찍어낸 뒤 방치하는 방식은 차단된다.
NHS 산하 '의약품 가치·접근국(Medicines Value and Access)'은 이미 사전 필터링 장치로 '에버그린 공급망 지속가능성 평가(Evergreen Sustainable Supplier Assessment)'를 운영하고 있다. 2024년부터 의약품 조달 참여 시 에버그린 평가 제출이 의무화됐으며, 최근 개편된 에버그린 레벨 2 항목은 2027 CRP 요건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영국 조달 시장에 참여하는 제약사는 이제 매년 갱신되는 유효한 탄소 평가 등급을 상시 보유해야 한다.
2028년 제품 탄소 발자국 정조준···BSI 'PAS 2090' 촉각
2027년이 법인 단위의 탄소 회계 검증이라면, 다음 해인 2028년에는 '제품 1병(Vial)'의 탄소발자국이 평가선상에 오른다.
NHS는 2028년부터 의약품과 의료기기 등 탄소 기여도가 큰 제품군을 중심으로 '제품 단위 탄소 발자국' 규격을 조달에 적용하는 제도를 설계 중이다. 이와 관련해 영국표준협회(BSI)가 제정한 의약품 전과정평가(LCA) 글로벌 표준 'PAS 2090:2025'가 업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제약사마다 서로 다른 제품 탄소 계산식을 하나로 묶는 제품범주규칙(PCR) 표준으로, NHS England와 주요 글로벌 빅파마(대형제약사)가 개발 실증에 동참했다. PAS 2090이 향후 NHS 조달의 공식 필수 규격으로 확정될 경우 국내 바이오사가 자체적으로 구축해 온 LCA 방법론도 이에 맞춰 재조정해야 한다.
파급력은 현지 유통 법인을 넘어 위탁개발생산(CDMO) 기지로도 확산하고 있다. 고객사인 다국적 제약사가 Scope 3와 완제품 탄소발자국을 입증하려면 의약품을 생산하는 CDMO 공장의 실시간 공정 데이터가 뒷받침돼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자체 제품탄소발자국(PCF) 산정 시스템에 대해 DNV 제3자 검증(ISO 14067, PAS 2050 부합)을 획득하고, 수십여 개 글로벌 제약사 고객사에 생산 배치별 탄소 데이터를 정량 산출해 제공하고 있다. NHS에 직접 납품하지 않는 국내 제조 거점까지 글로벌 넷제로 조달 그물망에 편입된 상태다.
NHS 잉글랜드는 공식 보고서에서 "의료 공급망은 글로벌하며, 배출 감축과 회복탄력성 제고에는 글로벌 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NHS 넷제로 전문가 패널도 지난해 공식 보고서에서 "NHS는 홀로 넷제로를 달성할 수 없다"며 전력·수송과 함께 더 지속가능한 의약품 생산을 필수 조건으로 꼽았다.
뉴스웨이 이병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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