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이건희 신경영, 삼성의 DNA를 바꾸다

산업 재계 이건희 6주기 ②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이건희 신경영, 삼성의 DNA를 바꾸다

등록 2026.10.23 16:00

신지훈

  기자

1993년 프랑크푸르트 선언···양보다 질로 경영의 기준 전환불량품 500억원어치 소각·라인스톱제···품질 우선 원칙 각인지역전문가 제도·7·4제 도입···인재와 조직문화 혁신에 주력

편집자주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이 별세한 지 6년이 됐다. 그가 남긴 유산은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이끄는 기술력과 품질을 최우선으로 삼은 경영 원칙에만 머물지 않는다. 인재를 키우고 조직을 바꾸는 데 쏟은 노력, 평생 수집한 문화재와 미술품을 사회와 나눈 선택도 그의 경영을 설명하는 한 축이다.
삼성이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차세대 반도체 주도권을 놓고 경쟁하는 지금 이건희 시대의 성과는 과거의 기록인 동시에 현재를 비추는 기준이 된다.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의 6주기를 맞아 반도체 초격차의 형성 과정과 신경영의 유산, 이재용 회장 체제의 과제, KH 컬렉션의 사회적 가치를 네 편에 걸쳐 짚어본다.

1993년 6월 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켐핀스키호텔에서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이 임원진들에게 '신경영' 구상을 밝히고 있다. 사진=삼성 제공1993년 6월 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켐핀스키호텔에서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이 임원진들에게 '신경영' 구상을 밝히고 있다. 사진=삼성 제공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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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ick Point!

1993년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은 경영 기준을 품질과 고객 만족 중심으로 전환 선언

기술만으로는 세계 시장에서 생존 어려움 인식

제품 및 조직 관행까지 변화 필요성 강조

숫자 읽기

1995년 구미사업장에서 약 500억원 규모 불량제품 폐기

라인스톱제 도입으로 생산라인 중단 후 원인 해결

'7·4제' 근무제도로 업무 집중도 및 자기계발 시간 확보

어떤 의미

신경영은 경영 기준 자체를 변화시키는 데 의미

생산량 증대보다 품질과 조직 관행 변화 중시

인재 육성, 품질 혁신, 업무 방식 변화가 기업 경쟁력 구성 요소

자세히 읽기

지역전문가 제도로 임직원 해외 파견

현지 언어, 문화, 시장 환경 직접 경험 통해 글로벌 사업 역량 강화

인재를 단기 실적 아닌 장기적 관점에서 육성

주목해야 할 것

기술 변화와 시장 요구에 빠르게 대응 필요

품질과 인재 중요성 구호에 그치지 않고 실제 업무 방식에 반영 여부가 관건

신경영의 질문은 품질과 인재를 실제로 반영할 수 있는지 여부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은 임원들에게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고 주문했다. 양적 성장에 집중하던 삼성의 경영 기준을 품질과 고객 만족 중심으로 바꾸겠다는 선언이었다. 제품을 잘 만드는 기술만으로는 세계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으며 제품을 만드는 방식과 조직의 관행까지 바꿔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담겼다.

신경영의 출발점은 품질이었다. 당시 삼성은 외형 성장에 비해 제품 완성도와 고객 만족도에서 개선할 부분이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선대회장은 불량품을 줄이는 데 그치지 않고 불량이 발생하는 생산 방식과 조직의 관행부터 바꿔야 한다고 판단했다. 품질을 담당 부서만의 업무가 아니라 경영 전반의 기준으로 삼으려 했다.

대표적인 조치가 생산현장에 도입한 라인스톱제다. 불량이 발생하면 생산라인을 멈추고 원인을 해결한 뒤 다시 가동하도록 한 제도다. 생산량을 유지하기 위해 불량을 감수하는 관행을 바꾸고 문제를 발견한 현장에서 해결하도록 한 것이다. 단기적인 생산 차질보다 품질 문제를 방치했을 때 발생할 손실이 더 크다는 판단이 깔려 있었다.

1995년 경북 구미사업장에서 진행한 불량제품 화형식은 품질 우선 원칙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남았다. 삼성은 품질 기준에 미달한 휴대전화 등 약 500억원 규모의 제품을 폐기했다. 판매 가능한 제품을 늘리는 것보다 기준에 미달한 제품을 시장에 내놓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임직원에게 각인시키려는 조치였다. 품질에 대한 신뢰를 확보하려면 단기적인 손실도 감수해야 한다는 원칙을 행동으로 보여준 셈이다.

신경영은 생산현장에만 머물지 않았다. 임직원의 시간 활용과 업무 방식도 바꾸려 했다. 1993년 도입한 이른바 '7·4제'는 오전 7시에 출근해 오후 4시에 퇴근하는 근무제도였다. 일찍 업무를 시작해 집중도를 높이고 퇴근 이후에는 자기계발에 시간을 활용하도록 하겠다는 취지였다. 근무시간 자체보다 일하는 방식과 개인의 역량을 함께 바꾸려는 시도였다.

인재 육성 역시 중요한 축이었다. 이 선대회장은 자본과 천연자원이 부족한 한국이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려면 인재를 확보하고 역량을 키워야 한다고 봤다. '한 명의 천재가 10만명을 먹여 살린다'는 발언은 인적 자원의 중요성을 강조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인재를 채용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이들이 전문성을 쌓고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는 관점이었다.

1990년 도입한 지역전문가 제도는 이런 인재경영을 보여준다. 임직원을 해외에 장기간 파견해 현지 언어와 문화, 시장 환경을 직접 경험하도록 했다. 짧은 출장이나 자료 조사만으로 파악하기 어려운 생활방식과 사업 관행을 익히게 해 글로벌 사업 역량을 키우려는 목적이었다. 해외 시장을 직접 이해하는 인력을 장기적으로 육성한다는 점에서 단기 실적을 위한 인력 운용과는 다른 접근이었다.

신경영의 의미는 개별 제도의 도입보다 경영의 기준을 바꿨다는 데 있다. 생산량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고 품질을 높이려면 생산 방식과 조직의 관행을 함께 바꿔야 한다는 원칙을 경영 전반에 적용했다. 품질 혁신과 인재 육성, 업무 방식의 변화가 서로 분리된 과제가 아니라 기업 경쟁력을 구성하는 요소라는 인식이었다.

오늘날 기업들은 기술 변화와 시장의 요구에 빠르게 대응해야 한다. 기술을 개발하더라도 제품의 완성도와 고객 신뢰를 확보하지 못하면 성과로 이어지기 어렵고,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더라도 조직이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역량을 발휘하기 어렵다. 신경영이 남긴 질문도 여기에 있다. 품질과 인재를 구호로 내세우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의사결정과 업무 방식에 반영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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