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K하이닉스 관세 부담 직면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자국 내 반도체 제조업 부활을 목표로 수입 반도체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는 동시에, 현지 투자 및 생산 실적에 비례해 관세 부담을 낮춰주는 '2차 반도체 관세'로 인해 국내 반도체 업계가 거대한 통상 방정식에 직면했다.
대만 TSMC와의 협상에서 먼저 구체화된 이 제도가 한국 기업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경우 대미 투자를 대폭 확대하지 않는 한 고율 관세를 면하기 어려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다.
7일 관계 부처와 외신에 따르면 미국 상무부는 수입 반도체에 고율 관세를 매기는 구상과 함께, 현지 생산 능력에 연동해 무관세 수입 물량을 허용하는 세부 실행안을 다듬고 있다. 자국 중심의 반도체 공급망 재편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다는 포석이다.
이번 구상의 핵심은 최근 미국과 대만 간 협상에서 구체화된 '대만 모델'이다. 대만 TSMC 등은 미국 내 공장 건설 및 생산 계획과 연계해 무관세 수입 쿼터를 부여받는 구조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제도는 공장 건설 단계와 완공 후 생산 단계에 차등화된 배율이 적용되는 것이 특징이다. 신규 공장을 짓는 동안에는 향후 예상 생산능력의 최대 2.5배까지 무관세 수입이 허용되는 반면, 공장이 완공되어 본격 가동된 이후에는 1.5배 수준으로 무관세 배율이 조정되는 방식이다. 착공 단계에서는 전폭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해 신속한 현지 투자를 유도하고, 완공 이후에는 실제 미국 내 생산량을 끌어올리도록 압박하는 것이다.
외신들은 이번 조치가 트럼프 행정부의 '아메리카 퍼스트' 제조 리쇼어링 기조를 극대화한 통상 압박책이라고 분석한다. 블룸버그 통신은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의 발언을 인용해 "미국 시장에 진입하기 위한 유일한 통행증은 미국 내 현지 생산"이라며 "대만 TSMC가 수천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확약하며 무관세 쿼터를 확보한 사례가 향후 한국, 일본 등 주요 반도체 공급국과의 협상 기준점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로이터와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은 이번 조치가 가질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함께 제기한다. 빅테크 기업들이 필요한 최첨단 반도체 수요를 미국 현지 생산량만으로 충당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초과 수입분에 부과되는 관세가 결과적으로 글로벌 AI 데이터센터 구축 비용과 서버 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미국이 이러한 현지 생산 연동형 관세 제도를 한국에도 동일하게 적용하려 함에 따라 국내 반도체 산업의 주력인 메모리(D램·낸드플래시) 분야의 부담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대만 TSMC 중심의 파운드리와 메모리 반도체는 산업 구조가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파운드리는 애플, 엔비디아, 퀄컴 등 주요 미국 빅테크 고객사 인근에 생산 거점을 두는 것이 유리하지만, 메모리 반도체는 국내에 조성된 초대형 메가클러스터를 통한 규모의 경제가 가격 경쟁력의 핵심이다.
용인·평택 등 국내에 밀집된 생산 생태계를 미국으로 무리하게 이전할 경우, 인프라 구축 비용과 인건비 폭증으로 인한 원가 상승이 불가피하다. 이미 삼성전자는 텍사스주 테일러에 파운드리 공장을, SK하이닉스는 인디애나주에 첨단 패키징 공장을 짓고 있지만 메모리 웨이퍼 생산 라인 자체를 미국으로 대거 옮기는 것은 수익성을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다.
결국 국내 반도체 업계는 미국의 현지 생산 확대 압박과 국내 생산의 규모의 경제 사이에서 새로운 전략적 선택을 요구받게 됐다. 향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미국 내 생산·투자를 확대하면서도 국내 메모리 생산 경쟁력을 유지하는 균형점을 찾아야 하며, 미국의 관세 정책이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과 국내 기업의 투자 지형을 어떻게 바꿀지가 향후 산업 경쟁력의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
뉴스웨이 이윤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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