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AI 반도체 '쩐의 전쟁'···최태원이 경고한 투자 확대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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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반도체 '쩐의 전쟁'···최태원이 경고한 투자 확대의 역설

등록 2026.11.06 13:56

신지훈

  기자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5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16동 1층 중앙홀에서 열린 최 회장 초청 특별강연에서 'AI 시대 시장경제의 변화와 기업이 요구하는 미래 인재상'을 주제로 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강민석 기자최태원 SK그룹 회장이 5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16동 1층 중앙홀에서 열린 최 회장 초청 특별강연에서 'AI 시대 시장경제의 변화와 기업이 요구하는 미래 인재상'을 주제로 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강민석 기자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인공지능(AI)과 반도체를 둘러싼 글로벌 투자 경쟁이 과열되면서 금융시장의 변동성도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AI 산업의 성장 기대에 자금이 한꺼번에 몰린 상황에서 작은 외부 변수에도 주가가 크게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대규모 투자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AI 패권 경쟁이 반도체 기업들의 투자 규모를 천문학적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있지만, 투자를 늘린다고 수익성이 자동으로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경쟁사들이 동시에 생산능력을 확대하면 중장기적으로 공급과잉이 발생할 수 있고, 시장의 성장 기대가 꺾일 경우 막대한 투자비가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역시 시장 주도권 확보를 위한 투자 확대와 자본 효율성 관리라는 두 과제를 동시에 풀어야 하는 상황이다.

최태원이 짚은 AI 투자 쏠림···"돈은 이미 너무 많이 풀렸다"

최 회장은 5일 서울대에서 열린 'AI 시대, 세계 경제 패러다임의 변화와 대한민국의 비전' 특강에서 미국 중간선거 이후 반도체주가 급락한 배경으로 과잉 유동성을 지목했다.

그는 "이미 돈은 너무 많이 풀렸다"며 "AI가 돈이 된다고 하니까 너무 많이 들어갔고 우리나라에서도 반도체가 오른다고 하니까 한꺼번에 몰려가서 사버렸다"고 말했다. AI 산업의 성장 기대가 투자 자금의 집중을 불러왔고, 이 같은 쏠림이 시장의 변동성을 키우고 있다는 진단이다.

최 회장은 시장 조정이 본격화하면 상승 폭이 컸던 만큼 하락 폭도 커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조정이 들어오면 혼란이 생기고 너무 많이 올라간 만큼 너무 많이 빠지기도 한다"며 "이런 롤러코스터 장세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실제 미국 중간선거 이후 반도체주를 둘러싼 투자심리는 급격히 위축됐다. 민주당이 텍사스와 조지아 등 데이터센터 밀집 지역의 주지사 선거에서 승리하면서 AI 인프라에 대한 규제가 강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했다. 지난 4일(현지시간) 엔비디아 주가와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는 각각 3.1%가량 하락했다. 국내 증시에서도 5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각각 7.57%, 9.46% 급락했다.

AI 산업의 성장 기대가 반도체 기업의 주가를 끌어올린 만큼 정책 환경과 투자심리 변화에 따른 조정 폭도 커지는 모습이다. 반도체 기업의 실적과 기술 경쟁력뿐 아니라 AI 인프라 투자에 대한 시장의 기대, 정책 불확실성 등이 주가에 미치는 영향도 확대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문제는 금융시장의 변동성과 별개로 기업들의 투자 경쟁은 멈추기 어렵다는 점이다. AI 반도체 시장에서는 선제적인 설비 확보와 기술 개발이 경쟁력을 좌우한다.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고성능 메모리 수요에 대응하려면 생산능력 확대와 첨단 패키징 기술 확보가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데이터센터 증설에 필요한 전력·냉각·네트워크 등 인프라 투자도 늘면서 반도체 기업들의 공급망 투자 부담 역시 커지고 있다.

최 회장도 글로벌 AI 투자 경쟁에서 대규모 베팅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지난 6월 발표한 3대 메가 프로젝트를 언급하며 "당시 투자 발표를 하겠다고 한 게 2100조원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전 세계가 이 게임에 들어와 있다"며 "우리도 이렇게 베팅하지 않고서는 쫓아갈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투자 과열에 대한 경고와 투자 확대의 불가피성을 동시에 보여준다. AI 시장의 성장세가 이어지는 동안 투자를 늦추면 경쟁에서 밀려날 수 있지만, 경쟁사들이 앞다퉈 생산능력을 확대하면 공급이 수요를 앞지를 가능성도 커진다. 투자 규모 자체보다 시장 성장 속도와 실제 수요에 맞춰 자금을 집행하는 능력이 중요해진 셈이다.

그래픽=홍연택 기자그래픽=홍연택 기자

삼성·SK, AI 주도권 잡으려 투자 확대···자본 효율성 시험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AI 반도체 시장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대규모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해 시설투자 규모를 84조4000억원으로 계획했다. 이 가운데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는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 투자액은 76조8000억원이다. 올해 3분기까지 누적 시설투자는 59조9000억원에 달했다. 메모리 반도체 생산능력 확대와 차세대 공정 전환, 파운드리 경쟁력 강화 등에 자금을 투입하고 있다.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 파운드리 공장 등 글로벌 생산거점 확보도 추진 중이다.

SK하이닉스 역시 생산능력 확대와 차세대 메모리 기술 확보에 자금을 집중하고 있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첫 번째 팹에 31조원, 청주 P&T7에 19조원,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확보에 11조9000억원을 투입하는 등 주요 투자 계획만 약 61조9000억원에 이른다. HBM 시장에서 확보한 기술 우위를 유지하는 동시에 AI 수요 증가에 대응할 생산 기반을 구축하려는 전략이다.

실적과 재무 여력만 놓고 보면 양사의 투자 확대를 뒷받침할 기반은 마련돼 있다. SK하이닉스는 올해 3분기 매출 104조6155억원, 영업이익 83조3338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률은 80%에 육박한다. 현금성 자산은 114조5000억원, 차입금은 15조8000억원으로 순현금 규모가 약 98조7000억원에 달한다. 현재의 실적과 재무구조는 대규모 투자 집행을 가능하게 하는 요인이다.

그러나 지금의 호실적이 향후 투자 수익성까지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반도체 설비투자는 집행과 동시에 생산능력으로 전환되지 않는다. 공장 건설과 장비 반입, 시운전, 수율 안정화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투자 결정 당시 예상한 시장 수요와 실제 제품이 양산되는 시점의 수요가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특히 HBM은 일반 D램보다 웨이퍼 투입량과 후공정 부담이 크다. HBM 생산 비중이 확대되면 동일한 웨이퍼 투입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범용 D램 물량이 줄어들 수 있다. 당장은 AI 수요가 공급을 웃돌더라도 주요 업체들이 생산능력을 동시에 늘리면 향후 메모리 시장의 수급 균형이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예상 조감도. 사진=AI(챗GPT) 생성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예상 조감도. 사진=AI(챗GPT) 생성

장기공급계약으로 수요 가시성 확보···투자 위험 줄일 수 있을까

기업들이 투자 위험을 줄이기 위해 활용하는 수단 중 하나가 장기공급계약(LTA)이다. 생산설비를 먼저 확충한 뒤 고객사를 확보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주요 고객과 공급 물량을 사전에 협의해 수요 가시성을 높이는 전략이다.

SK하이닉스는 글로벌 주요 고객사 14곳과 장기공급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2027~2028년 전체 생산능력의 50% 이상을 계약으로 확보했으며, 계약 기간은 통상 5년 수준이다. 일부 계약에는 예치금 등 이행을 담보하는 장치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장기공급계약은 대규모 투자에 앞서 일정 수준의 수요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고객사 입장에서도 AI 데이터센터 구축에 필요한 메모리 공급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 반도체 기업은 계약을 통해 생산계획과 투자 규모를 보다 정교하게 조정할 수 있다.

그러나 LTA가 투자 위험을 완전히 없애는 것은 아니다. 계약 가격은 일정한 범위 안에서 시장 상황을 반영하는 구조인 만큼 향후 메모리 가격이 하락하면 수익성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계약 물량 외에 추가로 확보한 생산능력은 여전히 시장 수요에 따라 판매해야 한다. 장기계약이 공급 안정성을 높이는 장치라면, 투자 규모와 시기를 조절하는 판단은 여전히 기업의 몫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투자 전략도 이 지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삼성전자는 메모리와 파운드리, 첨단 패키징을 아우르는 생산 기반을 확충하며 종합 반도체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SK하이닉스는 HBM을 중심으로 AI 메모리 시장에서 확보한 우위를 생산능력과 고객 기반으로 연결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양사 모두 AI 시장의 성장에 대응하기 위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지만, 투자 성과를 가르는 것은 집행 규모만이 아니다. 실제 수요가 어느 정도로 지속될지, 경쟁사의 증설이 시장 공급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투자한 설비를 얼마나 빠르게 안정적인 수익으로 연결할 수 있을지가 핵심 변수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AI 수요가 중장기적으로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지만, 성장 속도와 투자 회수 시점까지 확신하기는 어렵다. AI 서비스 확산에 따른 데이터센터 투자가 지속되더라도 기업별 투자 계획이 한꺼번에 현실화하면 특정 시점에 공급이 집중될 수 있다. 투자 확대가 개별 기업의 경쟁력에는 도움이 되더라도 산업 전체의 수익성을 낮추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 셈이다.

최 회장이 지적한 투자 쏠림과 시장 변동성은 반도체 기업들이 마주한 딜레마를 보여준다. 글로벌 AI 경쟁에서 투자를 늦추면 시장 주도권을 잃을 수 있지만, 경쟁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무작정 투자 규모를 키우면 공급과잉과 투자 회수 지연이라는 부담을 떠안을 수 있다. AI 반도체 시장의 다음 경쟁은 누가 더 많은 돈을 투입하느냐를 넘어, 수요를 정확히 읽고 투자 시기와 규모를 조절해 실제 이익으로 연결하느냐에 달렸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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