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초만 해도 대형마트 새벽배송의 빗장이 14년 만에 풀릴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당정이 대형마트의 의무휴업과 영업시간 제한은 유지하되 온라인 주문 상품의 포장·반출·배송은 규제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향으로 뜻을 모았기 때문이다. 김동아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지난 2월 관련 내용을 담은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하지만 법 개정은 첫 관문도 넘지 못했다. 개정안은 지난 5월19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 상정돼 법안심사소위원회로 넘어갔지만 후속 논의는 진척되지 않고 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소상공인단체가 골목상권 침해를 우려하며 반발하고 노동계가 심야 노동에 따른 건강권 문제를 제기하면서 정치권의 추진력도 약해졌다.
규제 완화 논의는 어느새 새벽배송 허용 여부보다 상생 조건을 둘러싼 협상으로 변질됐다. 정부가 조율 중인 방안에는 대형마트와 온라인 플랫폼 등이 최소 10년간 매년 100억원 이상을 출연해 총 1000억원 규모의 상생협력기금을 조성하고, 새벽 시간에는 단일 품목 기준 1만원 이하 농·축·수산물 판매를 제한하는 내용 등이 거론된다.
심지어 소상공인단체 내부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새벽배송 허용 자체를 반대하는 단체가 있는 반면 한국수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는 동네 슈퍼의 디지털 전환에 5년간 5000억원을 지원하는 조건으로 수용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놨다. 상생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지원 규모와 방식에서 접점을 찾지 못하는 모습이다.
대형마트 영업규제는 골목상권과 전통시장을 보호하기 위해 2012년 도입됐다. 그러나 14년 동안 유통시장의 중심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옮겨갔다. 대형마트는 자정부터 오전 10시까지 점포를 활용한 온라인 주문 처리와 배송이 제한되지만 쿠팡과 컬리 등 이커머스 업체에는 같은 규제가 적용되지 않는다.
소비가 대형마트에서 전통시장으로 이동하기보다 규제 밖 온라인 플랫폼으로 넘어갔다면 제도가 여전히 도입 취지에 맞게 작동하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대형마트 규제를 완화하면 전통시장이 곧바로 타격을 입는다는 전제도 점검할 필요가 있다. KDI가 의무휴업일을 주말에서 평일로 전환한 지역을 분석한 결과 대형마트 매출은 증가했지만 전통시장과 농축수산·전통유통 업태에서는 통계적으로 유의한 매출 감소가 확인되지 않았다.
새벽배송 허용의 영향을 직접 분석한 결과는 아니지만 대형마트 영업 확대가 반드시 전통시장 매출 감소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소상공인과 야간 노동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원칙은 분명하다. 다만 해법이 대형마트의 배송 자체를 금지하는 방식이어야 하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골목상권에는 공동물류망과 온라인 판로 구축 등 실질적인 경쟁력 지원이 필요하고, 야간 노동 문제는 적정 인력과 근로시간·휴식 기준을 강화해 다뤄야 한다.
새벽배송을 허용한다면서 판매 상품의 가격까지 제한하면 사실상 또 다른 규제를 만드는 것과 다르지 않다. 상생기금 역시 피해 규모와 사용처에 대한 객관적인 검토 없이 허용의 대가처럼 부과돼서는 안 된다.
정치권이 이해단체의 합의를 기다린다는 이유로 결정을 미루는 동안 규제를 받지 않는 플랫폼의 시장 지배력은 더 커진다. 이제는 누구의 반발이 더 큰지가 아니라 14년 된 규제가 실제로 누구를 보호하고 있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
뉴스웨이 선다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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