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기술은 실전 배치 끝냈는데··· 스테이블코인, '규제 족쇄'에 갇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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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은 실전 배치 끝냈는데··· 스테이블코인, '규제 족쇄'에 갇혔다

등록 2026.09.10 18:04

이진실

  기자

카카오페이·BC카드·현대카드, 지갑·결제·송금 기술 검증 잇따라기존 금융망 대비 시간·비용 절감 기대···기업 간 거래 활용 가능성↑美·EU·日 등 주요국 제도 마련···국내는 감독체계·외환규제 등 쟁점 산적

그래픽=이찬희 기자그래픽=이찬희 기자


국내 금융 및 IT 업계가 스테이블코인 기반의 차세대 결제·송금 인프라 실증을 끝내고 실전 배치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정작 이를 받쳐줄 제도적 장치 마련은 요원하다는 지적이다. 결제망 수수료와 해외 송금 시차를 획기적으로 줄여줄 핵심 금융 기술에 빅테크와 카드사는 물론 일반 제조업체까지 뛰어들고 있으나, 법제화 난항으로 산업 현장의 기술 혁신과 정책 간 시차 격차가 위험 수준으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결제·송금까지···금융권 스테이블코인 활용처 확대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카카오페이는 전날 디지털자산 지급결제 구축 기술에 대한 실증(PoC)을 완료했다. 이번 실증은 기존 카카오페이머니에 활용해온 지갑 시스템을 스테이블코인 등 온체인(On-chain) 자산까지 담을 수 있는 통합형 디지털자산 지갑으로 확장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카카오페이는 약 4300만명의 사용자를 기반으로 한 결제 네트워크와 대용량 트래픽을 처리해온 지갑 시스템을 보유하고 있다. 카카오그룹은 이번 실증에서 스테이블코인 등 디지털자산의 송금·결제·정산 기술뿐 아니라 사용자 인터페이스까지 구축하며 향후 유통 인프라 확산을 위한 기술 검증을 마쳤다는 설명이다. 카카오그룹은 "장차 스테이블코인 유통 체계를 신생 규제 프레임워크와 기업별 실정에 맞춰 개발하고 운용하는 것이 시장의 과제"라고 밝혔다.

금융권의 스테이블코인 실증은 카카오페이에 그치지 않는다. 카드사들도 결제와 송금 등 실제 금융서비스에 스테이블코인을 접목하는 작업에 나서고 있다. BC카드는 지난달 코인베이스·웨이브릿지와 함께 '해외 디지털자산 지급-국내 카드 결제 인프라 연결' 실증사업(PoC)을 완료했다. 외국인 관광객이 '베이스' 지갑에 보관한 달러 스테이블코인(USDC)으로 국내 BC QR 가맹점에서 결제하는 시나리오를 통해 해외 디지털자산과 국내 결제망을 연결할 수 있는지를 검증했다.

현대카드는 소비자 결제보다 기업 간 거래에 가까운 해외송금 영역에서 가능성을 확인했다. 지난 7월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해 현대자동차 미국·멕시코 법인 간 송금을 진행하는 타당성 검증을 완료했다. 현대카드는 이를 계기로 현대자동차그룹 해외 법인 간 정산과 자금 이체 등으로 스테이블코인의 활용 범위를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금융권이 이처럼 선제적으로 기술 검증에 나서는 것은 스테이블코인이 기존 금융결제망을 보완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블록체인 기반의 스테이블코인은 중개기관을 거치는 기존 송금 방식과 달리 24시간 거래가 가능하고 국가 간 자금 이동에서도 시간과 비용을 줄일 가능성이 있다.

특히 업계에서는 개인 소비자 결제보다 기업 간 거래에서 먼저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스테이블코인으로 결제할 수 있는 가맹점이 제한적인 데다 기존 카드나 간편결제보다 뚜렷한 편익을 느끼기 어렵기 때문이다. 반면 기업은 해외 법인 간 송금이나 정산처럼 금액이 크고 거래가 반복되는 영역에서 비용과 처리시간을 줄일 수 있어 활용 유인이 상대적으로 크다는 분석이다.

여신금융연구소 관계자는 "기업들이 스테이블코인 관련 실증과 기술 검증에 나서는 것은 기존 금융결제망을 우회해 새로운 방식으로 자금을 이동시킬 수 있기 때문"이라며 "기존 금융권의 결제망을 이용하는 것보다 시간이나 비용 측면에서 절감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핀테크나 카드사뿐 아니라 제조업체 등 기업 입장에서도 글로벌 자금 거래를 기존 금융결제망이 아닌 새로운 네트워크를 통해 처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시간과 비용을 아낄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산업은행 미래전략연구소도 지난해 '금융권의 스테이블 코인 추진 현황' 보고서에서 금융기관들이 결제·송금 방식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스테이블코인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국가 간·기관 간 실시간 지급을 통해 결제 시차를 줄이고 환율 변동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기대에서다.

기술은 앞서는데 법제화는 지연···제도 공백 우려

문제는 금융권의 기술 실증 속도를 제도 정비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디지털자산기본법 발의를 위해 국회와 지속해서 협의를 이어가고 있지만 스테이블코인 감독 체계와 가상자산 거래소 대주주 지분 제한 등을 둘러싼 이견으로 논의가 난항을 겪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이달 중 정부안을 국회에 제출한다는 계획이지만 핵심 쟁점이 정리되지 않으면서 실제 법안 발의 시점은 불투명한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법적 틀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금융사들이 기술 개발에 먼저 나서는 만큼 향후 제도화 과정에서 발행 주체와 준비자산 관리, 이용자 보호, 외환 규제 등 구체적인 기준이 정립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여신금융연구소 관계자는 "미국을 비롯해 유럽, 일본, 홍콩, 싱가포르 등 주요국은 스테이블코인 발행과 관련 서비스에 대한 법·제도적 틀을 어느 정도 마련한 상태"라며 "우리나라는 아직 구체적인 제도가 마련되지 않아 시기적으로 늦은 편"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국내에서 스테이블코인 확산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특히 스테이블코인이 해외 디지털자산과 연계돼 국경 간 거래에 활용될 경우 기존 외환거래 체계를 우회해 자본이 해외로 이동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은행도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주요 위험 가운데 하나로 규제를 우회한 자본유출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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