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멈추고 '실적' 채우는 보신주의에 경쟁력↓"조직·사고 환골탈태해야···이재용의 결단 필요"
전문가들은 흔들리는 삼성전자의 현 주소를 한 마디로 압축했다. 옛 생각을 털어내지 못하는 경영진과 변화를 좇기 급급한 현장의 괴리가 지금의 위기로 이어졌다는 진단인데, 삼성전자가 블랙베리나 노키아 등 몰락한 글로벌 기업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사고의 대전환이 필요하다는 제언이 나온다.
30일 학계와 재계 안팎에선 삼성전자의 위기가 현장과 본부의 커뮤니케이션 부재에서 비롯됐다는 진단을 내놓고 있다. 사업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오자 도전을 멈추고 실적 맞추기에 급급하다 보니 서서히 경쟁력을 잃고, 결국 기회가 왔을 때 잡지 못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박상인 서울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는 "자본을 투입해 메모리칩 등 기술 격차를 유지하는 것은 '개도기' 때나 통했던 방식"이라며 "시대가 완전히 바뀌었음에도 삼성전자는 전혀 변하려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삼성전자 역시 HBM(고대역폭메모리)과 파운드리의 시대를 예견하지 못했던 게 아니다"라면서 "그럼에도 메모리 반도체 부문이 주도권을 놓지 않은 탓에 사업의 축이 HBM·파운드리로 넘어가지 못하고 '메모리 리드'마저 사라지면서 위기에 빠진 것"이라고 짚었다. 달리 말하면 자신들의 이익에 반하는 일엔 협조하지 않은 회사 내 기득권이 화를 자초했다는 분석이다.
삼성전자 내부의 시선도 크게 다르지 않다. 현재의 '총체적 난국'은 하루 이틀 얘기가 아니라고 직원들은 증언한다. 지난 3~5년간 비용 절감을 명분 삼아 신기술 도입을 늦추고 연구 예산을 줄여 HBM 개발이 지연됐을 뿐 아니라 파운드리도 제자리걸음을 반복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설상가상 인력도 경쟁사로 대거 이동했다.
익명의 삼성전자 직원은 "수치를 가늠하긴 어렵지만 HBM이나 파운드리 사업은 가장 기본적인 수율을 잡는 데 실패하면서 거래처가 떨어져 나가는 상황"이라며 "구성원 사이에선 반도체 사업에 대한 걱정이 많은데, 이 목소리가 경영진에게까지 전달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고 귀띔했다.
그러면서 "회사는 여전히 직원에게 많은 부담을 안긴다"면서 "마치 경영진이 윗선엔 모두 다 할 수 있는 것처럼 보고하고 '숫자'를 맞추고자 직원을 압박한다는 의구심마저 든다"고 토로했다.
시장에선 삼성전자의 모습에서 블랙베리와 노키아, 인텔 등 예전엔 화려했지만 지금은 위태로운 '옛 IT 명가'를 떠올린다. 이들 모두 흐름을 외면하거나 경영진의 미숙한 판단으로 인해 본류에서 밀려난 기업인데, 국내 최고 기업 삼성전자도 자칫 이들을 뒤따를 수 있다는 우려가 담겼다.
블랙베리나 노키아는 한 때 전세계 휴대폰 시장을 장악했지만, 한순간에 뒤안길로 사라졌다. 스마트 기기가 중심으로 떠오르고 제품 주기도 짧아지는 시장 환경 속 경쟁사의 연구개발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 게 패착이었다. 인텔의 경우 마케팅·재무 전문가 출신 전임 CEO가 회사를 코너로 몰아넣었다는 게 정설이다. 2013~2018년 경영을 총괄한 브라이언 크르자니크는 원가 절감에 매달리다 경쟁사에 추월당했고, 후임자 밥 스완은 비용 회수에 급급한 나머지 투자 기회를 날렸다. 이에 인텔은 기술 전문가 팻 겔싱어 CEO를 소환했지만 분위기는 여전하다.
크게 보면 삼성전자도 다르지 않다. 기술과 거리가 있는 '재무통', 즉 사업지원TF 중심의 현 경영 시스템이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고 외부에선 평가한다. 위기 국면엔 재무 쪽을 전면에 내세우는 게 정답처럼 여겨지지만, 관리에 치우쳐 투자·연구개발에 소홀하다 보면 기술 측면에서의 역량은 자연스럽게 작아질 수밖에 없어서다. 여기에 사업지원TF는 사실상 최고 의사결정 기구로서 경영 전반에 손을 뻗으며 '옥상옥' 구조를 만들었다는 비판을 받는다.
따라서 삼성전자도 이들 기업을 반면교사 삼아 대대적 인적 쇄신에 나서야만 사상 초유의 위기를 탈피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박 교수는 "삼성전자로서는 사업지원TF 중심의 관성을 과감히 깨고 조직과 사고를 환골탈태해야 하는 시점"이라며 "이재용 회장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뉴스웨이 차재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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