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사재 털어 한국반도체 인수···메모리 사업 진출 씨앗64K D램에서 세계 1위까지···장기 투자·기술 선택이 만든 도약적층 기술로 경쟁 우위 확보···AI 반도체 시대에도 이어지는 기술 승부
- 편집자주
-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이 별세한 지 6년이 됐다. 그가 남긴 유산은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이끄는 기술력과 품질을 최우선으로 삼은 경영 원칙에만 머물지 않는다. 인재를 키우고 조직을 바꾸는 데 쏟은 노력, 평생 수집한 문화재와 미술품을 사회와 나눈 선택도 그의 경영을 설명하는 한 축이다.
삼성이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차세대 반도체 주도권을 놓고 경쟁하는 지금 이건희 시대의 성과는 과거의 기록인 동시에 현재를 비추는 기준이 된다.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의 6주기를 맞아 반도체 초격차의 형성 과정과 신경영의 유산, 이재용 회장 체제의 과제, KH 컬렉션의 사회적 가치를 네 편에 걸쳐 짚어본다.
1974년 삼성의 반도체 사업은 지금과 달랐다. 국내에 기술 기반이 부족했고 세계 시장은 미국과 일본 기업이 장악하고 있었다.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은 이런 상황에서 경영난에 빠진 한국반도체 지분 50%를 사들였다. 반도체가 전자산업의 미래를 좌우할 것으로 내다보고 사재를 투입한 것이다. 당시의 투자는 삼성전자가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강자로 성장하는 출발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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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삼성의 반도체 사업은 기술 기반 부족
미국과 일본 기업이 시장 장악
이건희 선대회장, 한국반도체 지분 50% 인수
1983년 도쿄선언 후 메모리 반도체 사업 본격화
64K D램 개발 및 1992년 64M D램 세계 최초 개발
세계 D램 시장 1위 등극
8인치 웨이퍼 도입으로 생산성 및 원가 경쟁력 강화
스택 방식 채택으로 D램 경쟁력 확보
메모리 반도체, AI 서버 및 가속기 핵심 부품으로 확대
HBM4 양산 출하 및 HBM4E 샘플 공급
차세대 메모리 시장에서 기술 주도권 확보 필요
고객사와의 협력 및 안정적 양산 능력 중요
이 선대회장의 반도체 경영은 기술을 따라잡는 데 그치지 않았다. 시장이 어려울 때도 생산시설과 차세대 기술에 투자해 다음 호황을 준비하는 방식이었다. 반도체는 설비투자 규모가 크고 가격 변동이 심해 투자 시기를 놓치면 손실이 커진다. 반대로 경쟁사가 투자를 줄일 때 생산능력과 기술을 확보하면 시장이 회복됐을 때 더 큰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삼성은 이 판단을 바탕으로 후발주자에서 선도 기업으로 올라섰다.
1983년 이병철 창업회장의 '도쿄선언' 이후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같은 해 64K D램 개발에 성공했고 1992년에는 세계 최초로 64M D램을 개발했다. 그해 삼성전자는 세계 D램 시장 1위에 올랐다. 한국반도체 인수 이후 기술개발과 생산능력 확충에 투자한 지 약 18년 만에 세계 시장의 판도를 바꾼 것이다.
생산 방식에서도 과감한 선택이 이어졌다. 1990년대 초 업계의 주력 공정이 6인치 웨이퍼였을 때 삼성전자는 더 많은 반도체를 한 번에 생산할 수 있는 8인치 웨이퍼 도입을 추진했다. 기술적 위험과 비용 부담이 컸지만 웨이퍼 한 장에서 얻는 칩 수를 늘려 생산성과 원가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판단이었다. 삼성전자는 1993년 8인치 웨이퍼 양산라인을 구축했고 같은 해 메모리 반도체 매출 기준 세계 1위에 올랐다.
기술 선택에서도 기존 강자의 방식을 그대로 따르지 않았다. D램의 집적도를 높이는 기술을 놓고 일본 업체들이 트렌치 방식을 채택할 때 삼성전자는 스택 방식을 선택했다. 회로를 기판 아래로 파내는 대신 위로 쌓는 방식이었다. 기술적 불확실성을 감수하고 다른 경로를 택한 결정은 이후 삼성의 D램 경쟁력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러한 투자의 효과는 수십 년 뒤에도 이어지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는 PC와 스마트폰을 넘어 AI 서버와 가속기의 핵심 부품으로 쓰임새가 확대됐다. 시장의 중심도 범용 D램에서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고성능 제품으로 넓어졌다. 과거 대량생산과 원가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집중했다면 이제는 고객사의 AI 반도체 설계에 맞춰 성능과 전력 효율을 높이는 기술이 중요해졌다.
삼성전자는 올해 2월 6세대 HBM인 HBM4 양산 출하를 시작한 데 이어 5월에는 HBM4E 샘플을 고객사에 공급했다. HBM4에는 1c D램과 4나노 파운드리 공정을 적용해 메모리와 시스템반도체 기술을 결합했다. 제품의 집적도를 높이는 수준을 넘어 여러 반도체 기술을 통합해 고성능 제품을 구현하는 방향으로 개발 전략이 진화하고 있다.
다만 과거의 성공이 차세대 시장의 우위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HBM은 고객사의 AI 가속기 성능과 설계에 맞춰 개발해야 해 기술력뿐 아니라 고객사와의 협력, 안정적인 양산 능력도 중요하다.
과거 일본 기업을 추월하며 세계 1위에 올랐던 삼성전자는 이제 HBM을 비롯한 차세대 메모리 시장에서 기술 주도권을 확보해야 한다. 반도체 불모지에서 출발해 생산능력과 기술을 축적한 경험을 새로운 경쟁 환경에서도 성과로 연결할 수 있을지가 남은 과제다.
뉴스웨이 고지혜 기자
kohjihye@newsw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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