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주주일 때와 종업원일 때

등록 2026.10.2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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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DX부문에 근무하는 한 후배는 오랜 주식투자자이기도 하다. 그는 나를 만날 때마다 국내 상장기업의 주주 홀대를 성토하곤 했다. 쥐꼬리 배당, 지배주주의 자기거래와 터널링을 막을 사전 규율의 미흡, 까다로운 대표소송 요건과 디스커버리 제도의 부재 같은 사후 구제 장치의 결함을 조목조목 짚다가 결국 국내 시장을 떠나 미국 주식으로 투자처를 옮겼다.

지난 5월 삼성전자 성과급 갈등이 정점으로 치닫던 즈음 그를 만나 생각을 물었다. 돌아온 답은 뜻밖이었다. "노조의 영업이익 15% 요구는 당연하다"는 것이었다. 논거는 셋이었다. 첫째, 15%는 인상이 아니라 불투명한 기존 기준을 투명하게 했을 때 나오는 수치이고, 연봉 50%라는 성과급 상한도 없애야 한다. 둘째, 동종업계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 10%·상한 폐지'를 벤치마크한 것이다. 셋째, 관철되지 않으면 가뜩이나 삼성 인재 영입에 혈안이 된 중국 업체나 경쟁사로 인재가 빠져나갈 것이다.

주주일 때 그토록 아까워하던 영업이익을, 종업원의 자리에 서자 당연히 나눠야 할 몫으로 보고 있었다. 반문하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나는 묻고 듣기만 했다. 사람은 실존적으로 약한 존재여서 이기적 관점을 벗어나기 어렵다는 명제에 동의하기 때문이다. 세상에 입장을 초월한 주장은 드물고, 경영과 투자의 세계로 들어오면 이 명제는 더욱 또렷해진다. 각자의 이해타산과 경험의 틀 안에서 아전인수식 주장들이 경합할 뿐이다. 그중 목소리 큰 주장이 제도와 정책을 결정하는 정치인의 이해와 맞아떨어지면, 그 논리가 한동안 주류 정책이 되곤 한다.

지난 십여 년 사이 한국 투자업계에는 전에 없던 현상이 하나 눈에 띈다. 법조인 출신 전업 투자자가 부쩍 늘었다는 점이다. 이들은 직업상 원고든 피고든 일단 입장을 정하면 그에 가장 충실한 논거를 유려한 문장으로 펼치는 데 숙달된 사람들이다. 하물며 자신의 투자수익과 직결되는 자본시장과 기업 거버넌스 이슈에서는 오죽하겠는가. 이들은 법적 지식과 투자 이론을 치열하게 접목해 소수주주의 입장을 대변한다.

물론 공감 가는 대목도 많다. 그러나 이들은 변론하듯 자기 입장에서만 논거를 세우고, 수많은 거버넌스 이론과 글로벌 스탠더드 가운데 유리한 것만 선택적으로 가져오는 경향이 있다. G20/OECD 기업 거버넌스 원칙을 즐겨 인용하면서도, 같은 원칙이 이해관계자의 권리와 종업원 참여를 별도 장(章)으로 두고 있다는 사실은 좀처럼 언급하지 않는다. 그 장은 기업의 경쟁력과 성공이 투자자와 종업원, 채권자, 고객, 협력업체 등 여러 자원 제공자의 기여가 어우러진 '팀워크의 결과'라고까지 적고 있다.

또한 그들의 글을 따라 읽다 보면 부지불식간에 설득당하기 쉽다. 하지만 우리가 이성과 지식을 추구하는 근본 이유는 자신의 이해관계와 경험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데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들의 의견 역시, 이 글을 쓰는 나의 의견 역시 비판적으로 읽어야 한다.

외환위기 이후 근 30년 동안 한국 자본시장을 지배해 온 거버넌스 이론은 라포르타·로페즈데실라네스·슐라이퍼·비시니 네 경제학자의 이니셜을 딴 이른바 LLSV '법과 금융' 학파의 것이다. 핵심 명제는 '좋은 거버넌스란 투자자의 투자수익을 잘 보호해 주는 것'이다. 투자자에 대한 법적 보호가 강할수록 주식시장이 발전하고 소유가 분산되며, 기업가치와 배당성향이 높아진다는 주장이다. 이들에게 거버넌스의 목적은 결국 자금 공급자인 주주와 채권자의 수익에 대한 법적 보장으로 귀결된다.

그러나 거버넌스 이론이 이것만은 아니다. 프리먼과 리드의 이해관계자 이론, 블레어와 스타우트의 팀 생산 이론, 데이비스 등의 스튜어드십 이론, 고셴과 스콰이어의 주인비용 이론 등 LLSV와 다른 관점이 다수 존재한다. 초점은 저마다 다르지만, 투자자 보호를 거버넌스의 전부로 보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같다.

특히 이해관계자 이론과 팀 생산 이론은 기업을 주주의 수익 창출 장치로만 보지 않고, 여러 참여자의 기여와 충돌하는 이해를 조정하는 장치로 본다. 고셴과 스콰이어는 모든 기업에 들어맞는 단 하나의 '좋은 거버넌스'란 없다고 말한다.

물론 지배주주와 소수주주 사이의 기울어진 운동장이 여전히 심각한 한국에서는 LLSV식 처방이 일정한 실효성을 갖는다. 최근 세 차례 상법 개정도 그 연장선에 있다. 그러나 기업에는 소수주주 외에도 지배주주, 경영진, 종업원, 채권자, 그리고 국가라는 이해관계자가 엄연히 존재한다. 특정 이해관계자의 이익과 관점만으로 설계된 개혁은 나머지의 저항을 부르거나, 제도만 바꾸고 행동은 바꾸지 못하기 쉽다.

지난 30년 가까이 역대 정부와 시민단체의 노력에도 법 조문은 늘고 현실의 변화는 더뎠던 데에는 이런 사정도 작용했다고 본다. 글로벌하게 보면 분산소유와 경영권 시장에 기반한 영미식 주주중심 모델이 오히려 예외에 가깝다. 역설적이게도 이는 라포르타 등이 1999년 27개 부국의 대기업 소유구조를 조사해 직접 확인한 사실이다. 그 이념을 한국에 그대로 옮겨 심는 접근도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한 나라의 거버넌스 개선에는 그 나라의 역사적 맥락이 반드시 고려돼야 한다.

같은 잣대는 종업원의 주장에도 똑같이 적용돼야 한다. 삼성전자 성과급 논쟁으로 돌아가 보자. 올해 5월 20일 밤, 총파업 직전 이뤄진 합의는 기존 초과이익성과급(OPI)의 연봉 50% 상한을 유지하는 대신, 반도체 부문에 '노사가 합의해 선정한 사업성과의 10.5%'를 상한 없이 10년간 자사주로 주는 특별성과급을 신설했다.

나는 직원 보상을 확대하는 방향에는 찬성한다. 다만 방법은 잘못됐고, 바로잡혀야 한다고 본다. 당해 연도 세전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먼저 떼어내는 방식은, 그 이익을 낳은 자본의 비용과 국가의 몫인 법인세를 따지기도 전에 종업원의 몫부터 확정하는 규칙이다. 한쪽의 몫을 키우는 만큼 다른 쪽의 몫을 줄이는 제로섬 규칙인 셈이다.

대안이 없지는 않다. 자본비용을 차감한 경제적 부가가치(EVA)를 기준으로 성과를 나누는 방식은 주주가 요구하는 최소 수익을 먼저 보장하므로 주주와 직원의 이익을 균형 있게 반영한다. EVA는 세후 기준이어서 법인세(지방소득세 포함 최고 27.5%)만 떼어도 EVA의 20%는 영업이익의 14.5%에 그치고, 자본비용까지 빼면 훨씬 작아진다. 상한 폐지까지 더하면 '15%는 인상이 아니다'라는 후배의 첫 논거는 성립하기 어렵다.

다만 이 방식을 채택했던 회사들은, 의도하지는 않았더라도, 산식과 자본비용 가정을 충분히 공개하지 않아 직원들의 신뢰를 얻지 못했다. 올해 삼성전기와 삼성SDI 임직원 투표에서 각각 97.1%와 93.4%가 'EVA의 20%' 대신 '영업이익의 10%'를 택한 것이 그 방증이다. 기준보다 운용의 투명성이 관건이다. 자본비용률과 투하자본의 산정 근거를 노사가 함께 검증하고 공개하는 성공 모델을 만들어 가기 바란다.

보상의 시점도 다시 생각할 문제다. 올해 사업활동의 성과는 시간을 두고 나타나고, 거꾸로 올해의 이익은 수년 전의 투자와 그때 구성원들이 흘린 땀의 결실이기도 하다. 올해의 이익을 올해 재직자들이 전부 나눠 갖는 것이 공정하다고 하기 어려운 이유다. 실적 변동성이 큰 반도체는 물론이고 변동성이 작은 기업도, 5년 내외의 미래 실적과 연계한 주식·현금 보상을 병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수년에 걸쳐 나눠 받는 보상은 인재를 붙잡아 두는 데에도 한 해의 목돈보다 효과적이니, 후배가 걱정한 인재 유출에 대한 답도 여기에 있다.

이번 합의가 특별성과급을 전액 주식으로 주고 그 3분의 2의 매각을 1~2년 묶은 것은 진일보다. SK하이닉스 노사도 전액 현금 지급 약속을 1년 만에 고쳐 성과급의 절반을 자사주로 주기로 했다. 그러나 두 회사 모두 재원은 여전히 당해 연도 성과의 일정 비율이고, 이연이나 매각 제한도 최장 2년에 그친다. 당해 연도 이익을 당해 연도에 나눠 갖는 구조는 보상을 단기 실적에 묶어 두고, 주주와 종업원이 함께 바라봐야 할 미래를 보상 설계에서 지워 버린다.

한편 기업 거버넌스에서 이해 조정만큼 중요한 것이 또 하나 있다. 끊임없는 혁신의 추구다. 거의 모든 제품과 서비스에는 수명이 있다. 환경 변화, 새로운 기술의 등장, 경쟁 구도와 소비자 니즈의 변화에 따라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제품과 서비스는 새로운 혁신력에 기반한 것들로 대체된다. 반도체야말로 한 세대의 승자가 다음 세대에서 밀려나는 일이 되풀이돼 온 산업이다. 오늘의 파이를 어떻게 나눌지만 다투는 거버넌스는 내일의 파이가 사라지는 것을 막지 못한다. 혁신을 지속할 유인과 투자 여력을 어떻게 확보할지가 거버넌스 설계에 반드시 반영돼야 하는 이유다. 보상을 5년 내외의 미래 실적에 연계하자는 제안도 결국 이 점과 맞닿아 있다.

다시 그 후배 이야기다. 그는 주주일 때 '주주 홀대'를 성토했고, 종업원일 때 '영업이익의 15%'를 당연하다고 했다. 두 주장 모두 나름의 논거를 갖췄지만, 한 몸 안에서 둘은 충돌한다. 영업이익의 15%를 성과급으로 떼어내면 주주에게 돌아갈 이익과 배당 재원이 줄기 때문이다.

그가 이중적이어서가 아니다. 사람이란 원래 그런 존재이고, 기업이란 원래 그런 곳이다. 소수주주와 지배주주, 경영진, 종업원, 채권자, 그리고 국가가 하나의 파이를 두고 서로 다른 몫을 주장하는 곳이며, 기업 거버넌스란 그 충돌하는 몫들을 조정하고 파이를 키우는 장치다. 그렇다면 좋은 거버넌스 개혁은 어느 한 입장의 변론을 그대로 입법하는 일이 아니라, 후배의 두 얼굴을 한 테이블에 앉히는 일에 가까울 것이다.

그날 나는 묻고 듣기만 했지만, 다음에 그를 만나면 하나는 물어볼 참이다. "주주로서의 자네와 종업원으로서의 자네가 한 테이블에 앉는다면, 어떤 규칙에 합의하겠는가?" 그 답이 아마 한국 기업 거버넌스가 찾아야 할 현답에 가장 가까울 것이다.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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