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AI 투자 속도조절론 부상하는데···K반도체 "주문 둔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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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투자 속도조절론 부상하는데···K반도체 "주문 둔화 없다"

등록 2026.09.17 15:09

신지훈

  기자

글로벌 AI 투자 논쟁 확산안전성 강화 지향, 투자 둔화는 없어국내 반도체 업계의 긍정적 전망

그래픽=박혜수 기자그래픽=박혜수 기자

인공지능(AI)의 급격한 발전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AI 속도조절론'이 글로벌 빅테크를 넘어 정치권으로 번지면서 AI 투자 확대의 최대 수혜주로 꼽혀온 국내 반도체 업계에도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AI 모델 개발 과정에서 안전성 검증과 외부 평가가 강화되거나 개발·투자 속도가 늦춰질 경우 데이터센터 증설과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AI 반도체 수요에도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현재 논의는 AI 개발 자체를 중단하거나 투자를 축소하자는 단계와는 거리가 있다. AI 안전성을 확보하면서도 개발 속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은 데다, 국내 반도체 업계에서도 아직 HBM을 비롯한 AI 반도체 주문이 둔화하는 움직임은 감지되지 않고 있다. 미국이 중국과의 AI 기술 격차를 유지하기 위해 반도체 공급망을 전략적으로 관리할 경우 국내 메모리 업계에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1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최근 AI 업계에서는 기술 발전 속도와 안전성 확보를 둘러싼 논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다리오 아모데이 앤트로픽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12일 프런티어 AI 개발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고 주장한 데 이어 샘 올트먼 오픈AI CEO, 일론 머스크 xAI CEO, 데미스 허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CEO 등이 관련 문제의식에 공감하면서 논의가 확산됐다.

아모데이 CEO가 제안한 것은 AI 기술을 멈추자는 것이 아니라 자체 안전 점검과 업계 공통 기준, 국제적 협력을 통해 기술 발전 속도에 맞는 안전장치를 마련하자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는 지난 15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세일즈포스 연례 행사에서도 자체 점검과 업계 표준, 국제 공조를 통한 AI 안전 확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이 같은 안전 기준이 실제 제도나 업계 관행으로 자리 잡을 경우다. AI 모델 출시 전 외부 검증이나 안전성 평가가 필수 절차로 굳어지면 모델 개발 기간이 길어지고 막대한 연산 자원을 투입하는 기업들의 투자 의사결정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AI 데이터센터 건설과 서버·메모리 투자 역시 일정 부분 속도 조절이 불가피할 수 있다는 의미다.

특히 국내 반도체 업계는 AI 투자 사이클과 맞물려 성장해온 만큼 이 같은 논의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AI 모델이 고도화될수록 학습·추론에 필요한 연산량이 늘어나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데이터센터와 GPU, HBM 등 AI 인프라 투자가 확대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다만 현재까지 AI 속도조절론이 실제 투자 축소로 이어지고 있다는 징후는 뚜렷하지 않다. 아모데이 CEO 역시 AI 기술 자체의 발전이나 모델 훈련을 중단하자는 의미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국내 반도체 업계에서도 아직 주문 둔화 조짐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김두언 하나증권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현재까지 논쟁이 데이터센터 투자나 반도체 주문의 변곡점을 만들었다는 증거는 없고 한국 반도체 수출과 글로벌 AI 공급망 매출도 확장 중"이라며 "신규 주문 축소와 메모리 가격 하락이 나타나면 경계해야 하지만 아직 징후가 없다"고 분석했다.

AI 개발 속도를 늦추지 않고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반론도 이어지고 있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AI 안전과 개발 속도가 양립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고, 마크 저커버그 메타플랫폼스 CEO 역시 업계 전체가 일괄적으로 감속하기보다 각 기업이 안전한 개발에 책임을 지는 방식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의견을 내놨다.

우리 정부도 감속보다는 기술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안전장치를 강화하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16일 "AI에 필요한 것은 속도 조절이 아니라 '속도 책임'"이라며 "대한민국의 AI 시계를 늦추지 않겠다"고 밝혔다. 한국은 AI 선도국을 추격하는 입장인 만큼 기술 개발과 산업 활용 속도를 낮출 여유가 없다면서도 안전·신뢰를 위한 제도와 기술적 장치를 함께 강화해야 한다는 취지다.

기업 현장에서도 AI 투자를 늦추기보다 실제 사업 경쟁력으로 연결하려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16일 사장단 회의에서 "AI는 더 이상 선택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 미래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축"이라며 "AI 미래 승부처에서 이길 수 있도록 사장단이 빠른 속도와 집요한 실행력을 갖춰달라"고 주문했다.

오히려 미국과 중국의 AI 패권 경쟁은 국내 반도체 업계에 새로운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미국이 AI 안전성 확보와 별개로 중국과의 기술 격차를 유지하기 위해 반도체 공급망 관리와 수출통제를 강화할 경우 미국 AI 밸류체인과 연결된 한국 메모리 업계가 전략적 공급망의 한 축으로 부각될 수 있어서다.

결국 관건은 AI 산업의 속도 자체보다 속도와 안전 사이에서 어느 수준의 기준이 마련되느냐에 달렸다는 분석이다. 외부 검증이나 안전 규제가 AI 모델 개발의 필수 절차로 자리 잡으면서 투자 기간과 비용을 크게 늘릴 경우 반도체 수요에도 부담이 될 수 있지만, 안전 검증을 강화하면서도 기술 개발이 이어진다면 현재의 AI 인프라 투자 흐름이 크게 흔들릴 가능성은 제한적이어서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AI 안전성 논의가 확대되는 것 자체가 당장 반도체 수요 감소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며 현재 데이터센터 투자나 HBM 등 AI 반도체 주문이 둔화하는 조짐도 없다"며 "다만 향후 안전 규제가 실제 AI 개발과 투자 속도를 늦추는 수준으로 구체화된다면 반도체 수요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관련 논의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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