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C 인터뷰서 美 전공정 팹 검토 의향 밝혀"내년 가장 힘든 해" 공급 부족도 재차 경고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미국에 메모리 반도체 전공정 팹을 짓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한국보다 건설비가 두 배 가까이 비싸고 전력·용수 확보도 쉽지 않지만 인공지능(AI)발 메모리 수요를 감당하려면 미국 생산기지 확대가 불가피하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비용을 감수하고서라도 생산능력을 선점해야 하는 국면에 들어섰다는 의미다.
미국 경제방송 CNBC가 13일(현지시간) 공개한 인터뷰에서 최 회장은 미국 내 전공정 팹 추가 건설 가능성에 대해 "기꺼이 할 의향이 있지만 적합한 부지를 찾는 것이 정말 어렵다"고 말했다. SK하이닉스가 미국에서 후공정이 아닌 전공정 생산시설 구축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국 팹의 가장 큰 걸림돌은 비용이다. 최 회장은 한국에서 팹 하나를 짓는 비용이 미국의 절반 수준이라고 밝혔다. 토지뿐 아니라 전력과 용수 가격이 높고 각종 인허가 절차도 까다롭다는 설명이다. 반도체 전공정은 막대한 전력과 초순수, 전문 인력을 필요로 하는 만큼 단순히 공장 부지만 확보한다고 투자가 가능한 사업도 아니다.
SK하이닉스가 현재 미국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에서 건설 중인 38억7000만달러(한화 5조4826억원) 규모의 시설도 첨단 패키징 공장이다. 전공정 팹은 웨이퍼 생산부터 회로 형성까지 전체 생산 공정이 이뤄지는 만큼 투자 규모와 인프라 부담이 훨씬 크다.
그런데도 미국 전공정 투자가 검토되는 것은 메모리 산업에서 생산능력 자체의 가치가 다시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AI 데이터센터가 빠르게 늘면서 HBM을 비롯한 고성능 메모리 수요가 급증하고 있지만 메모리 업체들의 증설 속도는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최 회장은 내년 메모리 시장을 "전쟁 같은 상황"으로 진단하며 공급 부족이 더욱 심해질 가능성을 언급했다.
이 같은 공급 부족은 메모리 업체의 실적뿐 아니라 IT 산업 전반의 비용 구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메모리 가격이 상승하면 서버와 스마트폰, PC 등 완제품 제조사의 원가 부담이 커지고 결국 소비자 가격으로 전가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최 회장이 '칩플레이션'을 경고한 것도 이런 공급 구조를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결국 SK하이닉스 입장에서는 미국 팹의 높은 투자비와 메모리 공급 부족 사이에서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다. 미국에서 생산하면 비용 부담이 커지지만 생산능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급증하는 AI용 메모리 수요에 대응할 기회를 놓칠 수 있다.
미국 내 생산기지를 확보해야 할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미국 정부가 반도체 공급망의 자국 내 생산을 강화하는 가운데 AI 데이터센터와 빅테크를 중심으로 현지 반도체 공급망 구축 요구도 높아지고 있다. 전공정까지 미국에서 수행할 수 있다면 현지 고객과의 공급망 연계도 한층 강화할 수 있다.
다만 이번 발언을 실제 투자 결정으로 해석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최 회장이 직접 부지 확보의 어려움을 언급한 만큼 전력·용수 등 인프라 여건과 세제 혜택, 정부 지원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투자 규모가 큰 전공정 팹의 특성상 예상 수익성과 생산 안정성을 충분히 따져야 하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의 미국 전공정 팹 검토는 단순한 해외 생산기지 확대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AI 시대에는 기술 경쟁력 못지않게 필요한 시점에 필요한 물량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이 경쟁력을 좌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 회장은 향후 10년 안에 글로벌 메모리 생산량이 현재 생산능력의 5배 수준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수요 증가에 맞춰 공급능력을 선제적으로 확보해야 한다는 의미다.
결국 SK하이닉스의 선택지는 명확하다. 비싼 미국 팹을 감수하고 생산능력을 선점할 것인지, 비용 부담을 이유로 투자를 늦출 것인지다. 미국 전공정 투자가 실제 결정으로 이어질 경우 이는 SK하이닉스가 AI 메모리 시장의 장기 성장에 얼마나 공격적으로 베팅할지를 보여주는 첫 번째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뉴스웨이 고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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