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1년 준비금 소진 전망탈모 치료제 예산 추계 미제시신규 급여 정책 투명성 필요

올해 1분기 건강보험 재정 당기수지는 3조8989억원의 적자를 냈다. 30조원을 웃돌던 누적 준비금도 불과 석 달 만에 26조원대로 주저앉았다. 분기별 재정 실적 하나만 떼어내 건강보험의 파산을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뚜렷한 재원 대책 없이 새로운 급여 항목을 논의할 만큼 우리 곳간이 넉넉하지 않다는 경고음으로는 충분하다.
당장 국회예산정책처의 최근 추계만 봐도 상황은 녹록지 않다. 의료개혁 투자를 걷어내고 보더라도 건보 누적 준비금 소진 시점은 2031년인데, 정부의 의료개혁 1·2차 실행방안에 따른 지출을 반영하면 그 시기는 2029년으로 2년이나 앞당겨진다. 심지어 이 계산에는 향후 막대한 재정이 투입될 간병비 급여화나 상병수당 제도화 비용은 빠져 있다. 우리는 이제 '어디에 쓸 것인가'를 넘어 '무엇을 포기할 것인가'를 선택해야 하는 냉혹한 현실 앞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굵직한 신규 급여 문제를 다루는 정부의 방식은 안일하다 못해 순서가 뒤바뀌어 있다. 최근 논란이 된 탈모 치료제 급여화 공론화 과정이 대표적이다. 보건복지부는 당초 국민참여단 200명이 참여하는 '모두의 토론회'를 7월4일 열 계획이었으나, 여론의 질타가 이어지자 6월29일 돌연 행사를 취소했다.
정책 수요자인 국민에게 의견을 묻겠다면서 정작 가장 중요한 '비용 계산서'는 쏙 빼놓은 탓이다. 탈모약 급여화를 위해 향후 5년간 정확히 얼마의 예산이 소요되며, 그 재원을 국민이 낼 건강보험료 인상분으로 충당할지, 아니면 국고에서 끌어올지에 대한 정부 차원의 공식 추계는 제시되지 않았다.
토론 준비 과정에서 연간 1284억~1797억원이라는 숫자가 흘러나오긴 했다. 하지만 이는 2025년 탈모 치료 전문의약품 예상 공급액(2568억원)에 본인부담률을 단순 대입한 가설에 불과하다. 건강보험 문턱이 낮아진 뒤 새롭게 밀려들 환자 수요나 처방 증가율, 약가 협상에 따른 변수 등은 배제된 반쪽짜리 수치다.
물론 탈모 당사자가 겪는 심리적 위축을 가벼운 '미용' 문제로 치부할 수는 없다. 그러나 탈모 환자의 고통이 존재한다는 것과 그 고통의 비용을 전 국민이 기여하는 사회보험으로 짊어지겠다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건강보험은 모든 질환을 무제한으로 보상하는 화수분이 아니라, 한정된 재원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가 공동 부담할 위험의 우선순위를 가리는 규칙이기 때문이다.
설령 공론화를 재개하더라도, 최소한 '청년층 한정 지원안', '중증도 및 소득 연계안', '선별급여 비율 조정안' 등 구체적인 시나리오별 예상 비용을 국민에게 먼저 내놓아야 한다. 객관적 숫자가 없는 토론은 정책 설계를 위한 숙의가 아니라 감정에 기댄 여론전으로 흐를 위험이 크다.
정부나 국회가 예산이 수반되는 법안을 발의할 때 비용추계서와 재원조달 방안을 반드시 첨부하듯, 국민의 쌈짓돈인 건보 재정을 쓰는 결정에도 동일한 잣대를 대야 한다. 일각에서는 탈모약이든 비만치료제든 신규 급여 제안 시 '급여영향평가서' 공개를 의무화하는 원칙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최소한 보험료를 올리지 않겠다면 기존에 있던 어떤 보장 항목을 줄일 것인지 명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존 급여 항목에 대한 출구 전략도 촘촘해져야 한다. 보건복지부는 올해 은행엽엑스와 도베실산칼슘, 실리마린 등 3개 성분을 급여적정성 재평가 대상으로 선정해 임상적 유용성을 다시 따지기로 했다. 앞으로 신규 진입하는 급여 항목 역시 3~5년 뒤 실제 환자 수와 지출 규모를 재확인하고, 당초 예상과 어긋날 경우 혜택 범위와 본인부담률을 조정하는 식의 사후 통제 장치를 처음부터 마련해야 한다.
어떤 약이든 찬반 여론보다 중요한 것은 합리적 판단 기준이다. 비용을 명확히 계산하고, 재원 마련 방안을 밝히며, 그로 인해 후순위로 밀리게 될 다른 보장이 무엇인지 국민에게 투명하게 보여줘야 한다. 명확한 계산서 한 장 없이 불쑥 동의 여부부터 묻는 것은 공론화라는 이름 뒤에 숨은 '책임 외주화'다.
뉴스웨이 이병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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