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T·바이오 감기엔 '로판' 왕자, 인후염엔 '빨간머리 앤'···친근함 입는 장수 일반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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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엔 '로판' 왕자, 인후염엔 '빨간머리 앤'···친근함 입는 장수 일반약

등록 2026.09.25 19:13

이병현

  기자

한미, '앤'으로 일반약 8종 묶어동아·일동은 AI·판타지 광고 승부수서브컬처 접목으로 브랜드 노후화 탈피

그래픽=홍연택 기자그래픽=홍연택 기자

감기약 광고에 순정만화풍 왕자가 나타나 따뜻한 시럽을 건넨다. 비타민제 광고에서는 작아진 배우가 알약을 타고 인체 속을 누빈다. 파스 패키지에는 1980년대 안방극장을 주름잡던 펭귄이 부활했다.

최근 보수적이고 신중한 이미지에 머물던 제약업계의 일반의약품(OTC) 브랜드가 캐릭터와 서사를 덧입고 소비자와 심리적 거리 좁히기에 나섰다.

2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기존 상징을 젊은 감각으로 재해석하거나, 인기 지식재산권(IP)과의 협업, 아예 제품군 전체를 아우르는 통합 페르소나를 구축하는 등 방식도 다채롭다. 증상 완화라는 전통적 효능 소구에서 벗어나 소비자의 일상 속에서 기억되는 브랜드 경험을 구축하려는 전략이다.

한미그룹 지주회사 한미사이언스는 목앤·눈앤·코앤 등 자사 대표 일반의약품 8종을 아우르는 공식 캐릭터 '앤'을 선보이며 통합 브랜딩에 착수했다. 빨간 머리와 주근깨, 발그레한 볼이 돋보이는 '앤'은 이름에서 유추되듯 고전 명작 '빨간머리 앤' 특유의 밝고 친근한 이미지를 차용했다.

선정 과정에는 그룹 임직원 500여 명의 선호도 투표와 사내외 전문가 심사가 반영됐다. 눈, 코, 목 등 사용 부위와 적응증이 제각각인 제품을 '앤'이라는 하나의 친숙한 얼굴로 묶어 제품군 간 연상 효과를 극대화하겠다는 포석이다. 회사는 향후 패키지 디자인은 물론 약국 진열대 홍보물(POP), SNS 콘텐츠에 이 캐릭터를 전면 배치한다는 방침이다.

젊은 세대의 하위문화를 광고 제작 방식과 스토리텔링에 직접 끌어들인 사례도 눈에 띈다.

동아제약은 물에 타 마시는 감기약 '판피린타임 나이트플루 건조시럽' 광고에 생성형 인공지능(AI) 기술을 전면 도입했다. 2030 세대 사이에서 하나의 주류 장르로 자리 잡은 웹툰 '영애물(귀족 아가씨가 주인공인 로맨스 판타지)'의 화풍과 설정을 차용해, 감기몸살로 지친 일상에 만화 속 왕자가 등장해 약을 건네는 장면을 연출했다. 두건을 쓴 캐릭터와 "감기 조심하세요"라는 복고풍 문구로 대표되던 장수 브랜드에 디지털 네이티브 문법을 이식한 셈이다.

일동제약은 피로회복제 '아로나민골드원' 캠페인에 판타지적 설정을 결합했다. 배우 류승룡이 소인으로 변해 알약을 타고 체내 혈관과 조직을 순항하는 컴퓨터그래픽(CG)을 선보였다. 일동제약은 지하철, 사무실, 골목 상권 등 전국의 고단한 생활 현장을 누비던 앞선 캠페인에 이어 이번에는 신체 내부로 침투하는 서사를 완성하며, '피로가 쌓인 곳 어디든 직접 찾아간다'는 메시지를 연속성 있게 풀어냈다.

추억 속 캐릭터를 복각해 세대 간 가교로 삼는 시도도 활발하다.

1984년 출시된 제일헬스사이언스의 '제일쿨파프'는 펭귄이 서로 파스를 붙여주는 TV 광고로 유명한 브랜드다. 회사는 지난 2024년 출시 40주년을 맞아 펭귄 캐릭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복고 한정 패키지를 선보인 데 이어, 대학생 마케터가 참여하는 서포터즈 프로그램을 통해 펭귄을 주인공으로 한 숏폼과 SNS 콘텐츠를 잇달아 공개했다. 올해 초 '대학생 마케터 1기' 프로그램을 마무리 지으며 젊은 세대에게 브랜드 친밀도를 높일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이외에 두터운 팬덤을 보유한 외부 인기 IP와 맺는 결합도 활기를 보이고 있다.

보령컨슈머헬스케어는 지난해 넷마블 엠엔비의 인기 캐릭터 '쿵야 레스토랑즈'의 대표 캐릭터 '양파쿵야'를 '용각산쿨' 패키지에 입혔다. 영등포 타임스퀘어 팝업스토어 등 2030 유동 인구가 밀집한 공간에서 한정판을 선공개하며 약국이라는 한정된 유통망 밖으로 브랜드 인지도를 넓혔다. '맑은 눈의 광인'으로 통하는 양파쿵야의 유머러스한 이미지가 목 관리제라는 진지한 제품군에 신선함을 불어넣었다는 평가다.

국내 최장수 제약사 동화약품은 대표 품목인 활명수를 통해 패션·카메라 등 이종 브랜드와 연례 아트 콜라보레이션을 이어가고 있다. 지금까지 스탠리, 코닥, 아웃도어 브랜드 밀레 등과 협업한 기념판을 잇달아 선보였다. 올해도 활명수 128주년 기념판 판매 수익금을 대한적십자사 등에 전액 기부하는 등 문화 마케팅을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으로 확장했다.

제약사가 캐릭터와 서사 구축에 공을 들이는 배경에는 일반의약품 시장의 치열한 브랜드 경쟁과 소비 주체 변화가 자리 잡고 있다.

국내 완제의약품 생산실적 중 전문의약품(ETC) 비중은 85~86%에 달하는 반면, 일반의약품(OTC) 비중은 13~14% 선(약 3조9000억원)에 머물러 정체 상태다. 제품 간 효능 차별화가 쉽지 않은 시장 환경에서, 친근한 캐릭터와 세계관은 약국 매대 앞 소비자의 최종 선택을 좌우하는 결정적 요인이 된다는 분석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펴낸 '2025 캐릭터산업백서'는 제약업계의 이러한 마케팅 전환에 명확한 근거를 제공한다. 백서에 따르면 국내 소비자의 66.7%가 "캐릭터가 제품 구매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고 응답했다. 특히 주목할 대목은 캐릭터 프린팅 상품 구매 유형에서 '식품·음료·의약외품'의 구매 경험률이 27.1%에 달했다는 점이다. 소비자 4명 중 1명 이상이 이미 캐릭터가 적용된 건강·의약 관련 소비재를 적극적으로 소비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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