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KB금융의 '자발적(?) 세대교체'의 '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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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금융의 '자발적(?) 세대교체'의 '이면'

등록 2026.09.14 17:37

김다정

  기자

'셀프연임' 불식시킨 선제적 세대교체···2단계 승계 트랙으로 '외풍' 차단10년 공들인 승계 프로그램···외부 후보 진입장벽 해소는 향후 과제이재근 "회장 권력 분권화" 첫 메시지···이사회 중심 시스템 경영으로 응답

그래픽=박혜수 기자그래픽=박혜수 기자

KB금융그룹이 양종희 현 회장의 연임 대신 이재근 KB금융지주 부문장을 차기 회장 최종 후보로 전격 선정하며 '세대교체'를 단행했다. 역대 최고 성적표를 거두며 '리딩금융' 입지를 단단히 구축한 양 회장의 무난한 연임을 점쳤던 시장의 관측을 깨뜨린 결단이다.

임기를 정상적으로 마친 현직 회장이 차기 회장 최종 후보군에서 경쟁한 끝에 교체된 것은 KB금융 출범 이후 사실상 처음이다. 윤종규 전 회장 시절부터 이어져 온 '현직 회장 연임 공식'도 깨지게 됐다.

KB금융지주 회장후보추천위원회(이하 회추위)가 공식적으로 내세운 명분은 과감한 변화와 세대교체다.

조화준 회추위원장은 "현재의 우수한 성과에 머무르지 않고, 그룹의 본원적 경쟁력 강화와 미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과감한 변화와 세대교체가 필요한 시점에서 이를 이끌 적임자로 이재근 부문장을 선택했다"고 강조했다.

당국 압박 정면돌파···외풍 속 챙긴 명분과 실리


하지만 금융권 안팎에서는 이번 인선을 단순한 수장 교체로 보지 않는다. 정부의 고강도 지배구조 개선 압박이라는 외풍(外風)을 수용한 '선제적 조치'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번에 단행된 이례적인 인사 파장의 이면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금융당국이 올 한 해 지속적으로 수위를 높여온 지배구조 개혁의 기류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금융지주 지배구조 개선은 지난해 12월 금융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금융지주 회장의 장기 연임을 '부패한 이너서클'이라고 직격한 이후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당시 이 대통령은 "부패한 이너서클이 형성돼 소수가 돌아가며 지배권을 행사하는 상황을 방치할 수 없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후 금융위와 금융감독원은 지배구조 개선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최고경영자(CEO) 선임·승계 절차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높이고 이사회의 독립성과 견제 기능을 강화하는 방안을 논의해왔다. 금융지주 회장의 장기연임 제한과 연임 요건 강화, 주주·기관투자자의 감시 기능 활성화, 성과보수 체계 개선 등도 검토 대상에 올랐다.

당초 금융당국은 KB금융의 차기 회장 선임 절차가 본격화하기 전에 개선안을 내놓겠다는 계획이었다. 특히 앞서 지난 6월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KB금융의 숏리스트 작업이 7월 3일부터 시작되는 만큼 그 전에 발표될 것으로 본다"고 밝힌 바 있다.

당초 예상과 달리 아직까지 최종안은 확정되지 않은 만큼 양종희 회장의 무난한 연임이 지배적이었다. 여기에 양 회장의 경우 첫 연임 도전이어서 이른바 '3연임 제한' 논의의 직접적인 대상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KB금융은 당국의 제도화에 앞서 자율적으로 지배구조 개선의 기준점을 제시하며 세대교체를 단행했다. 금융권에서는 이번 인선을 KB금융의 외풍에 의한 자발적 세대교체로 평가한다. 사상 최대 실적을 낸 현직 회장조차 철저한 경쟁과 평가를 거쳐 세대교체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입증함으로써, 당국이 정조준해 온 '셀프 연임과 참호 구축' 비판을 정면으로 불식시키는 명분을 얻었다.

양 회장 재임 기간 중 선임된 사외이사들이 대거 포함된 회추위였음에도, 대세론에 안주하지 않고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 프로세스를 통해 과감한 변화를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동시에 내부적으로 오랫동안 공들여 육성해 온 '검증된 내부 인재'에게 경영권을 승계하는 실리까지 확보했다. 단순한 지배구조 리스크를 넘어 인공지능(AI) 전환과 미래 성장동력 확보라는 시대적 과제까지 두루 고려한 판단이라는 것이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현재 정부가 금융지주 지배구조 개선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만큼 이번 인선 과정에도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며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4700조원 신규 투자 등 정책 기조와 보조를 맞추고, 디지털·미래 전략 전환을 차질 없이 이끌 적임자로 판단해 이번 인선이 이뤄진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이 부문장 역시 "AI 시대에 접어들며 앞으로 3~5년간의 변화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금융그룹의 명운이 갈릴 것"이라며 "변화의 흐름에 뒤처지지 않으면서도 안정적인 성과를 기반으로 체질 개선을 이끌겠다"고 강조했다.

이재근 KB금융 차기 회장 최종 후보자가 14일 오전 서울 여의도 KB국민은행 신관에서 도어스테핑을 하고 있다. 사진=강민석 기자이재근 KB금융 차기 회장 최종 후보자가 14일 오전 서울 여의도 KB국민은행 신관에서 도어스테핑을 하고 있다. 사진=강민석 기자

정치적 외풍 막은 '승계 프로그램' 방화벽


KB금융이 외풍 속에서도 승계 주도권을 지키고 명분과 실리를 모두 챙길 수 있었던 요인으로는 체계적으로 갖춰진 '승계 프로그램'이 지목된다. 당국의 표적이 되기 쉬운 '부회장' 직함을 피하고 '지주 부문장'이라는 실무 중심의 승계 트랙을 안착시킨 결과다.

자칫 금융당국의 '3연임제 제한' 드라이브 속에서 차기 회장 후보군을 공식화하지 못하면 외풍으로 내부 승계 라인이 무력화되거나 관료 출신 외부 인사가 영입되는 파행이 되풀이될 위험이 있다.

하지만 KB금융의 경우 은행·증권·보험·카드, 자산운용 등 다양한 계열사 경험과 지주 전략 수립 역량을 다각도로 검증받은 인재가 이미 준비되어 있었기에 가능한 선제적인 결단이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치적 외풍 속에서 검증된 '내부 대안'을 즉시 제시하는 방화벽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KB금융은 국내 금융지주 중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체계적인 최고경영자(CEO) 승계 시스템을 갖춘 곳으로 평가받는다.

회추위는 상시적으로 후보군을 관리하면서 회장 임기 만료 수개월 전부터 선임 절차를 개시해 충분한 검증 기간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운영되고 있다. 올해도 후보자 평가 기간을 예년보다 한 달 이상 앞당겨 투명성을 한층 강화했다.

특히 주목받는 점은 KB금융의 내부 인재 육성 방식이다. 단순히 은행에서의 실적을 넘어서 증권·보험·카드·자산운용·지주 전략 등 다양한 계열사와 사업 부문을 경험하면서 종합적인 경영 역량을 쌓도록 설계되어 있다.

내부 후보를 대상으로 별도의 'CEO 내부 후보자군 육성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프로그램에는 미래 그룹 CEO 과정(FGC·Future Group CEO Course), 연 1회 경영현안 주제 발표회, 이사회 워크숍 등이 포함된다.

승계 절차가 시작되기 전부터 육성 프로그램과 이사회 검증 과정을 거치며 역량을 평가받게 되는 셈이다. 유사시에도 검증된 후보를 배출할 수 있게 되면서 외부 압력이나 내부 잡음 없이 자체 승계 프로세스에 따라 회장 교체를 자연스레 이뤄낸 건전한 지배구조를 확립했다는 평가다.

2014년 KB사태 이후 승계 시스템 '안착'


불과 10여년 전만 하더라도 KB금융의 지배구조는 불안정했던 것이 사실이다. 과거 2014년 전산시스템 교체를 두고 지주회장과 은행장과의 내분이 발생하며 그룹 전체를 혼란에 빠뜨렸던 이른바 'KB사태'가 대표적이다.

이후 KB금융지주 회장 겸 KB국민은행장에 오른 윤종규 전 회장은 취임 이후 '지배구조 개선 TF'를 출범시키며 CEO 후보 육성 및 경영승계 시스템 안착에 심혈을 기울였다.

KB금융은 국내 금융권에서 유일하게 부회장 순환 보직 시스템을 정착시킨 후 현재는 부문장 제도를 후계 프로그램과 연동하고 있다. 유력 차기 회장 후보들에게 주요 부문을 번갈아 맡겨 전반적인 CEO 업무를 경험시키도록 한 것이 핵심이다.

실무 역량을 입증할 수 있는 '계열사 CEO → 지주 부문장 → 회장'이라는 정교한 2단계 검증 트랙을 뼈대로 삼았다. 사실상 '은행장=차기 회장'이라는 공식을 깨고, 현직 회장과 지주사 부문장과의 경쟁구도를 형성한 것이다.

그래픽=박혜수 기자그래픽=박혜수 기자

현재 양종희 회장 역시 이 승계 프로그램으로 수장으로 발탁된 인물이다. 양 회장은 2021년 글로벌부문장 겸 보험부문장, 2022년 디지털부문장 겸 IT부문장, 2023년 개인고객부문장 겸 WM/연금부문장 겸 SME부문장을 두루 거쳤다. 같은 시기 부회장으로 재직한 허인 전 부회장, 이동철 전 부회장과 보직을 순환하는 방식으로 지주 주요 부문을 대부분 경험했다.

이재근 차기 회장 내정자도 정통 내부 승계 후보로서 상징성을 갖고 있다. 지주 재무기획부장과 최고재무책임자(CFO)를 거쳐 최연소 국민은행장, 지주 부문장을 역임하면서 동일한 시스템 검증을 완수했다. 재무·전략·글로벌·WM 등 그룹 내 주요 핵심직무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아온 준비된 경영진이라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조화준 회추위원장은 "지주 부문장과 은행장을 맡으며 쌓은 은행과 비은행 전반에 대한 탁월한 전문성에 더해 재무·전략·글로벌 부문 등에 대한 높은 식견과 통찰력까지 겸비했다"며 "은행장과 지주 부문장을 역임하면서 보여준 성과와 경영능력은 그룹의 리더가 되기에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양 회장에 이어 이 내정자로 이어지는 승계 프로그램의 안착은 차기 KB금융 회장 선임 과정에서 불확실성을 줄였다는 관측이 나온다.

김대종 교수는 "회장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직원들과 얼마나 잘 화합하고 조직을 잘 이끌어 가느냐"라며 "연간 5조원 이상의 이익을 내고 있는 성과 기반 위에 세대교체와 조직전환이 잘 이뤄졌다"고 평가했다.

이재근 내정자 '분권화' 선언···자발적 세대교체 '완성'


이와 함께 이재근 부문장이 차기 회장으로 내정된 후 첫 메시지로 '시스템 경영'을 제시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이 부문장은 14일 오전 서울 여의도 본사 사옥으로 출근하며 기자들과 만나 "계열사 대표 인사 역시 후추위 등 정해진 시스템을 통해 논의하고 결정해야 한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이어 "금융그룹의 규모가 커질수록 특정 경영자의 판단에 의존하기보다 시스템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며 "회장이 전부 힘을 갖고 인사를 하기보다 이사회 소위원회인 대표이사후보추천위원회가 논의하면서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메시지는 KB금융이 단행한 자발적 세대교체의 진정성을 완성하는 핵심 대목으로 해석된다. 승계 시스템을 통해 검증받아 수장에 오른 인물이 취임 일성으로 회장 1인의 독점적 권력 구조를 개선하고, 이사회 중심의 투명한 시스템 경영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내부 승계 시스템을 통한 리더십 교체에 이어 권력의 분권화까지 선언하며 당국의 개혁 요구에 선제적으로 응답한 데 이어 지배구조의 새로운 기준점을 제시했다는 평이 나오는 이유다

다만, 모범 사례로 평가받는 KB금융의 승계 프로그램도 한계는 분명히 존재한다. 내부 인재 발탁이라는 긍정적인 평가 이면에는 외부 후보자의 진입 한계라는 역설적인 과제도 남아있다. 체계화된 내부 육성 트랙이 견고해질수록 외부 출신 후보가 실질적으로 경쟁을 펼치기 어렵다는 형평성 논란이 불거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금융지주 지배구조가 한 단계 더 진화하기 위해서는 내부 승계의 안정성을 유지하면서도 외부 후보에게도 실질적 기회가 돌아가는 공정한 시스템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김대종 교수는 "경제학의 두 축은 공정성과 효율성"이라며 "특정 후보군에 치우치지 않고 그룹을 공정하고 효율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시스템을 확립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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