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개 공정 중 7곳 AI···효과 검증·확대생산·설비·안전 등 공장 전 영역 AI 접목실패 모델 재검증···2030년 생산성 1000억원 목표
60년 넘게 멈추지 않고 달려온 공장이 있다.
지난 10일 찾은 SK이노베이션 울산Complex(울산CLX)다. 1964년 가동을 시작한 이곳은 부지만 약 250만평에 달한다. 공장 안 배관을 모두 연결하면 지구에서 달까지 왕복하고도 남는 길이라고 한다. CCTV는 약 1000대, 조정실은 30개에 이른다. 단일 석유화학공장 기준 원유정제 생산능력 세계 3위 규모의 거대한 설비가 지금도 쉼 없이 돌아가고 있다.
이 거대한 공장에 인공지능(AI)이 들어오고 있다.
방식은 예상보다 느리고 신중했다. 98개 복합공정을 한꺼번에 바꾸는 대신 기존 설비와 공정을 그대로 둔 채 AI를 하나씩 붙이고 있다. 효과가 확인된 공정부터 적용 범위를 넓히는 방식이다.
현재 머신러닝 모델이 구축된 공정은 7개다. 숫자만 놓고 보면 시작 단계에 가깝다. 하지만 현장을 둘러보니 AI는 이미 생산과 에너지 사용, 설비 관리와 안전관리 곳곳에서 사람의 판단을 보조하고 있었다.
울산CLX의 중심부인 HOU(Heavy Oil Upgrading) 조정실에 들어서자 수십 개의 모니터가 눈에 들어왔다. 온도와 압력, 원료 투입량 등 공정 상태를 보여주는 수치가 끊임없이 바뀌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운전원들이 24시간 공정 상태를 살핀다.
기존에는 운전 조건을 바꿨을 때 결과가 어떻게 달라질지 작업자가 경험과 계산을 바탕으로 판단했다. 지금은 AI가 여기에 하나의 판단 근거를 더한다. 운전 조건을 입력하면 예상 결과를 계산하고 목표에 맞는 조건을 제시한다.
사람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AI가 데이터를 읽고 이상 징후나 최적 조건을 제시하면 엔지니어가 현장의 상황과 경험을 더해 최종 판단을 내린다. 울산CLX가 이를 '듀얼 브레인'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AI가 사람을 대체하기보다 사람이 모든 데이터를 동시에 살피기 어려운 시간과 공간의 빈틈을 메우는 구조에 가깝다.
그렇다고 AI를 붙인다고 바로 성과가 나오는 것도 아니다.
울산CLX는 실제 적용 과정에서 기대만큼 효과가 나오지 않았던 사례도 공개했다. 정유공정 가운데 하나인 2번 FCC에 약 2년 전 적용한 AI 모델은 당초 기대했던 수준의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후 모델을 다시 손보고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데이터를 활용해 재검증했다.
과거에 쌓인 운전 데이터를 활용해 AI를 적용했을 때와 실제 운전 결과를 비교하는 작업도 진행했다. 어떤 조건에서 AI의 판단이 실제 생산성과 연결되는지를 다시 확인하기 위해서다.
2019년부터 도입된 일부 시스템도 데이터를 쌓고 모델을 고도화하면서 올해 들어 효과가 개선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과정에서 확인된 것은 AI 도입의 성패가 기술 자체보다 현장 적용에 달려 있다는 점이다. 정유·석유화학 공정은 하나의 공정에서 발생한 변화가 다음 공정과 제품 생산량, 품질, 에너지 사용량에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특정 AI가 개선 효과를 냈더라도 공장 전체의 손익으로 이어졌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울산CLX 관계자는 "실제로 적용했을 때 눈에 띌 정도의 유의미한 효과가 나타나는 과제들이 있다"며 "추가 리소스를 투입해 적용 범위를 넓힐 만하다고 판단할 수 있는 수준의 결과가 확인되고 있다"고 말했다.
AI 적용 범위도 생산 공정에만 머물지 않는다.
원유를 어떤 조합으로 투입할지부터 어떤 제품을 얼마나 생산할지 결정하는 과정에도 AI가 활용되고 있다. 생산량뿐 아니라 제품 품질과 에너지 사용량까지 함께 고려해 공장 전체의 수익성을 높이는 것이 목표다.
스팀 네트워크도 대상이다. 정유·석유화학 공장에서는 스팀과 전력, 용수 등이 생산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사용된다. 같은 양의 제품을 생산하면서 에너지 사용량을 줄일 수 있다면 그 자체가 비용 절감으로 이어진다.
설비 관리에도 AI가 들어간다. 펌프와 압축기 같은 회전기기의 진동과 온도 변화를 감지해 이상 징후를 찾는 'SKADI'가 대표적이다. 설비에 문제가 발생한 뒤 대응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고장이 발생할 가능성을 미리 파악해 정비 시점을 판단하는 데 활용한다.
드론도 현장에 투입되고 있다. 사람이 일일이 확인하기 어려운 설비를 촬영하고 축적된 이미지를 AI가 분석해 육안으로 놓칠 수 있는 변화를 찾아내는 방식이다.
안전 분야에서는 AI의 역할이 더욱 직관적이다.
울산CLX에서는 하루 약 3000명이 작업하고 연간 작업 건수만 약 33만건에 이른다. CCTV만 약 1000대다. 사람이 모든 화면을 24시간 지켜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울산CLX가 개발하고 있는 'SHEILD'는 이 같은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시스템이다. CCTV 영상뿐 아니라 가스 측정기와 설비 센서, 작업허가서, 작업자 위치 정보, 드론·로봇 데이터 등을 한데 모아 이상 징후나 위험도가 높은 작업을 찾아낸다. AI가 위험 상황을 먼저 포착해 조치나 순찰을 제안하고 최종 판단은 사람이 내린다.
생산성을 높이는 AI와 사고를 줄이는 AI가 하나의 공장 안에서 동시에 움직이는 셈이다.
SK가 울산CLX의 AX를 추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AI를 새로운 기술로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비용과 생산성, 안전이라는 사업 성과로 연결하겠다는 것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올해 울산포럼에서 "AI가 비즈니스 모델로 될 수 있는 것인지 봐야 한다"며 "돈을 벌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울산CLX가 제시한 목표도 구체적이다. 올해 예측 모델과 연계형 에이전트를 개발하고 검증한 뒤 내년부터 데이터 인프라를 확대하고 2028년까지 AI 신뢰성을 높여 적용 범위를 넓힌다는 계획이다. 2030년에는 연간 약 1000억원의 생산성 향상 효과를 내고 설비 비가동과 중대사고를 '제로'로 만드는 것이 목표다.
울산CLX의 변화는 SK가 추진하는 제조 AX의 방향을 보여준다. 데이터센터처럼 처음부터 AI를 전제로 만들어진 공간이 아니라 60년 넘게 가동된 기존 공장에 AI를 하나씩 접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 축적된 운전 데이터와 현장 경험에 AI의 분석 능력을 더해 공장의 의사결정 방식을 바꾸는 작업이다.
아직 완성된 공장은 아니다. 효과가 부족했던 모델을 다시 고치고 실제 현장에서 성과가 확인된 과제에 적용 범위를 넓혀야 한다. 울산CLX가 보여준 것은 AI 공장으로의 급격한 전환보다 기존 제조 현장에 AI를 얼마나 정교하게 이식할 수 있는지를 시험하는 과정에 가깝다.
60년 동안 축적한 현장 경험에 AI라는 또 하나의 두뇌를 붙이는 작업이 이제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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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웨이 이건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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