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기은·하나 702억 금융사고···"연체 없는 정상여신" 해명5년간 지속된 연쇄 대출 사기···경찰 수사 전까진 감시망 '먹통'개별 은행 방어막 한계 명확···타행 간 정보 공유 체계 '無'
최근 은행권에서는 크고 작은 '금융사고'가 빈발하고 있다. 대상은 국책은행과 시중은행을 가리지 않았다. 특히 유사 수법에 의한 사고가 잇따르면서 내부통제 실효성에 의문도 커졌다. 전문가들은 타행에서 대형 사고가 터진 뒤에야 뒤늦게 역추적에 나서 자신들의 구멍을 발견하는 현재 상황이 진짜 문제라고 지적한다.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KDB산업은행과 IBK기업은행·하나은행에서 동일 거래처와 관련한 사기 혐의로 총 702억에 달하는 금융사고가 났다. 사고 발생 기간은 2021년 3월부터 올해 3월까지 약 5년에 이른다.
앞서 지난 6일 산업은행은 외부인에 의한 사기 혐의로 583억원의 금융사고가 발생했다고 공시했다. 수백억 대 대출이 나간 상황에서 은행이 스스로 이상 징후를 적발한 것이 아니라, 경찰청의 압수수색 과정에서 뒤늦게 파악됐다.
산업은행의 공시 이후 타행들도 동일 거래처를 매개로 한 위험에 노출됐음을 인지하고 점검에 나섰다. 뒤이어 IBK기업은행과 하나은행에서도 각각 94억원, 24억원 규모의 사기 혐의가 연달아 포착됐다.
이들 은행은 "거래처로부터 연체 등이 없는 상황으로 '정상여신'에 해당한다"며 "사기 여부는 추후 수사 결과에 따라 최종 결정될 예정"이라고 똑같은 답변을 내놨다.
한 기업이 여러 금융기관을 상대로 연쇄 사기 대출을 벌이는 동안, 사정기관이 개입하기 전까지 은행 내부의 사전 경보 장치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한 셈이다. 이는 현재까지 명확히 밝혀진 피해 금액이며, 향후 수사 경과에 따라 피해 규모가 더욱 불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수사 착수 뒤에야 드러난 이상 징후···'정상 여신' 착시
국책은행에 이어 주요 시중은행마저 동일한 사기 수법에 노출되면서 은행권 전반에 비상이 걸렸다. 대출 심사의 허점을 노린 조직적 금융 범죄가 잇따라 확인됨에 따라, 은행권의 여신 심사와 내부통제 시스템 전반을 전체 점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동일 사건이 확인되면서 은행권 전반에 걸쳐 여신심사와 사후관리, 내부통제 체계가 제대로 작동했는지도 관심사로 떠오를 전망이다.
최근 금융사고 공시를 낸 세 은행 모두 수사기관의 압수수색이나 타행의 사고 공시가 있기 전까지는 해당 대출의 이상 징후를 전혀 감지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은행 관계자들은 모두 "자체 감사 결과 여신 취급 절차 자체에는 문제가 없었다"며 "해당 차주는 이자를 꼬박꼬박 내던 정상 거래처였기 때문에 사전에 이상 징후를 포착하기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는 은행권의 여신 관리가 서류 검증과 연체 여부에만 매몰돼 있다는 방증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정상적인 상환과 정상적인 거래는 같은 개념이 아니라는 것이다.
차주가 대출 이후 이자를 꼬박꼬박 납부하고 있다는 것은 채무 이행이 정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대출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허위 서류나 부정한 방법이 사용됐다면 연체 여부만으로 이를 찾아내기는 어렵다.
결국 은행권이 지금까지 내부통제의 주요 기준으로 삼아온 '연체·부실 여부'와 '금융사기 가능성' 사이에 빈틈이 존재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번 사고는 거래처의 '기업금융' 관련 사기 혐의라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이미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등 엄격한 규제가 적용되는 개인대출과 달리 기업대출은 서류 요건만 맞추면 상대적으로 대출 실행이 쉽다는 것이다.
허위 사업 서류나 명의를 동원해 대출을 일으킨 뒤 연체만 하지 않고 정상 거래로 위장하는 고도화된 수법 속에서 '정상여신'의 의미를 어디까지 볼 것인지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개인 대출은 규제가 까다롭지만, 법인 대출이나 법인을 매개로 한 여신의 경우 서류상 요건만 맞추면 심사를 통과하는 경우가 많다"며 "서류상으로는 정상적인 대출이라도 실제 현장에서 대출 목적과 다르게 사용되는 경우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대출 목적과 실제 자금 사용처를 면밀히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개별 은행 통제망 한계···타행 공유·당국 대응 '사후 수습'에 그쳐
금융권에서는 이번 사건을 단순한 개별 은행의 일회성 사고가 아닌, 시스템적 허점을 파고든 '연쇄 사고'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그동안 금융권의 내부통제 강화는 개별 금융회사의 자율과 책임을 묻는 방향으로 진행돼 왔다. 은행마다 자체 내부통제 기준을 마련하고 임직원의 업무분장 및 승인 절차를 엄격히 한 것은 물론, 여신 심사와 사후 관리 시스템도 고도화했다.
그러나 그럴수록 금융사고의 수법이 날로 지능화·복잡화하면서 개별 은행 단위의 내부통제만으로는 명확한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특히 이번 연쇄 사고의 핵심은 고도화된 사기 대출 행태가 어떻게 은행권 전반에 걸쳐 장기간 정상 거래로 관리될 수 있었는지를 규명하는 데 있다.
수많은 여신 거래를 취급하는 금융회사가 모든 부정행위를 100% 차단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문제는 한 곳에서 발견된 위험이 다른 금융회사에서 반복될 가능성을 줄일 수 있는 시스템과 체계가 과연 금융권에 존재하느냐는 점이다.
한 금융기관에서 성공한 사기 수법은 다른 은행에서도 동일하게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현행 구조에서는 특정 차주가 여러 은행을 돌며 동일한 수법으로 연쇄 대출 사기를 일으키더라도, 최초 공시나 수사 결과가 수면 위로 올라오기 전까지는 위험을 공유하고 사전 차단할 고리가 전혀 없다.
실제로 이번 사태에서도 산업은행의 사고 공시가 올라온 이후에야 기업은행과 하나은행에서 유사 사례가 확인됐다. 반대로 말하면, 최초 사고가 수면 위로 드러나기 전까지는 동일한 위험 거래가 타행에서 '정상 여신'으로 수년간 관리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타행의 사고 공시를 보고 나서 비슷한 사례의 거래가 있는지 내부 점검에 들어갔다"며 "타 금융기관의 사고정보가 시스템적으로 공유되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은 "사고가 발생하면 필요성이 있는 건들에 한해 사후공유하고 있다"는 입장이지만, 이는 수사기관 등을 통해 사고 공시가 단행된 이후의 통보에 불과하다.
이로 인해 타행에서 사고가 터진 후 뒤늦게 쫓아가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식 대응이 구조화되어 있다. 이상 징후를 공유하거나 위험을 사전에 차단할 고리가 전혀 없는 '격리된 구조'였음이 입증된 셈이다.
김 교수는 "한 기업이나 법인이 단일 은행이 아닌 복수 금융기관을 상대로 동시에 돈을 끌어쓰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상 징후나 사고가 발견되면 다른 은행도 이를 파악할 수 있도록 타행 간 금융사고 및 위험 정보 공유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유사 사고가 반복되는 상황에서 금융감독당국의 대응은 기존 여신 프로세스를 점검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한 곳에서 발견된 위험이 다른 금융기관에서 반복되는 구조적 고리는 끊어내야 한다는 요구 속에서 추가 사고를 막기에 충분한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금감원 관계자는 "전체 은행을 대상으로 한 전수조사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근본적으로 여신 프로세스나 절차적 측면에서 미흡한 점이 있는지, 과거 마련한 점검·개선 방안들이 잘 이행되고 있는지 살펴보는 수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관련기사
뉴스웨이 김다정 기자
ddang@newsway.co.kr
저작권자 © 온라인 경제미디어 뉴스웨이 ·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