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노란봉투법 100일, 열린 건 교섭장 아닌 법정 문

오피니언 기자수첩

노란봉투법 100일, 열린 건 교섭장 아닌 법정 문

등록 2026.06.17 16:09

이승용

  기자

원청 교섭 확대됐지만 현장은 사용자성 다툼구내식당·세탁실까지 번진 '진짜 사장' 논쟁하청 권리 보호 취지에도 기준 부재가 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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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봉투법이 시행 100일을 맞았지만 산업 현장에서 먼저 열린 것은 교섭의 장이 아닌 노동위원회 심문장과 법정 문턱이었다. 법은 원·하청이 마주 앉아 실질적인 교섭을 하도록 하겠다는 취지로 만들어졌지만, 현장에서는 '누가 진짜 사장인가'를 가리는 사용자성 다툼이 교섭보다 앞서고 있다.

최근 현대자동차와 한화오션을 둘러싼 노동위원회 판단은 이 같은 현실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울산지방노동위원회는 현대차가 하청노조들과 교섭해야 한다고 봤고, 중앙노동위원회는 한화오션의 급식·세탁 업무 협력업체 노조에 대해 원청 사용자성을 인정했다. 과거 원청 사용자성 논쟁이 생산라인 사내하청 노동자를 중심으로 벌어졌다면, 이제는 구내식당과 세탁실, 보안·경비, 통근버스까지 그 무대가 넓어진 셈이다.

노동위가 주목한 것은 계약서가 아니라 실제 영향력이다. 구내식당 조리실을 고치고, 세탁실 설비를 바꾸고, 통근버스 운행 환경을 개선하려면 결국 원청의 승인과 예산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청업체가 명목상 사용자라 해도 작업환경을 좌우할 힘이 원청에 있다면, 적어도 안전 문제에서는 원청도 교섭장에 나와야 한다는 판단이다.

문제는 이 논리가 안전을 넘어 임금과 성과급, 복리후생으로 확장될 때다. 어디까지가 원청 책임인지 선이 흐려지는 순간, 교섭은 대화의 통로가 아니라 또 다른 분쟁의 출발점이 된다.

기업들이 교섭에 곧장 응하지 않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한 사업장에서 급식·세탁·보안 업무의 사용자성을 인정하면 다른 협력업체 노조 요구까지 줄줄이 이어질 수 있다는 부담이 생긴다. 기업들이 첫 교섭을 단순한 절차가 아니라 향후 원·하청 관계 전반에 영향을 줄 선례로 보는 이유다.

노동계에는 이 흐름이 물러설 수 없는 명분이 됐다. 법은 바뀌었고, 노동위 판단도 잇따르고 있다.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하청노조 1151곳이 원청 434곳에 교섭을 요구했다는 숫자는 원청 교섭이 더 이상 일부 사업장의 예외적 요구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기업에는 피하고 싶은 선례지만, 노동계에는 열어야 할 첫 문이다. 같은 판정을 두고 한쪽은 확산을 우려하고, 다른 한쪽은 변화를 출발점으로 삼는 것이다.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하청노조 1151곳이 원청 434곳에 교섭을 요구했다는 숫자는 단순한 요구 건수가 아니라, 앞으로 수많은 사업장에서 같은 절차가 반복될 수 있다는 예고에 가깝다.

다만 이 숫자가 무거운 이유는 교섭 요구가 늘어서만은 아니다. 법이 대화를 열기 전에 대화 상대를 둘러싼 다툼부터 키우고 있다는 점이 더 본질적이다.

노란봉투법은 '진짜 사장'을 찾기 위한 법에서 그쳐서는 안 된다. 원청 책임을 묻는 일은 필요하지만 기준 없는 책임 확대는 그 누구도 설득하지 못한다. 대화의 장을 만들지 못하고 매번 법정에 가야 하는 법이라면 노란봉투법의 시행 100일은 권리 확대보다 분쟁의 예고편으로 기억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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