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T·바이오 상품: 제약사가 '사 와서 파는 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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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 제약사가 '사 와서 파는 약'

등록 2026.06.13 07:04

이병현

  기자

외형 성장 뒤 상품매출 의존 위험성공동판매·계약구조 따라 달라져

그래픽=박혜수 기자그래픽=박혜수 기자

제약·바이오 기업의 실적 발표 시즌, 손익계산서를 들여다보면 유독 눈에 띄는 계정과목 두 개가 있다. 바로 '제품매출'과 '상품매출'이다. 일상에서는 두 단어를 혼용하지만, 제약업계 공시표에서는 의미가 완전히 갈린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제품은 "내 공장에서 내가 만든 약"이고, 상품은 "남이 만든 약을 떼와서 파는 약"이다. 국제회계기준(IAS 2)에서도 기업이 직접 생산한 완제품과 되팔기 위해 외부에서 구입한 재화를 엄격히 구분한다.

편의점 매대와 제약사 영업망의 공통점


이해하기 쉽도록 편의점에 비유해보자. 편의점은 자체 기획한 PB 상품도 팔지만, 매대를 차지하는 품목 절대다수는 다른 식품회사가 만든 음료와 과자다. 편의점은 직접 과자를 굽지 않아도 자사의 거미줄 유통망을 통해 막대한 매출을 올린다.

제약사도 마찬가지다. 한 제약사가 항암제부터 감기약, 당뇨약까지 모든 치료군의 신약을 직접 개발해 만들 수는 없다. 빈틈을 메우기 위해 글로벌 제약사의 오리지널 신약을 들여오거나, 타사의 유망한 약품 판권을 확보해 자사 영업망(병원·약국)에 얹어 파는 방식을 택한다. 이것이 실적표에 '상품매출'로 찍히는 숫자다.

물론 의약품은 단순 공산품 유통과는 궤를 달리한다. 깐깐한 약사법 규제 아래 허가, 보관(콜드체인 등), 유통, 안전성 정보 제공 등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된다. 따라서 제약사의 상품매출은 단순한 '보따리상 장사'가 아니라, 회사의 영업 장악력과 병·의원 채널 관리 능력을 입증하는 지표이기도 하다.

왜 남의 약을 팔까? '외형 성장'과 '영업망 효율화'


그렇다면 제약사들은 왜 자사 제품 판매에만 몰두하지 않고 앞다퉈 남의 약을 떼다 파는 걸까.

가장 큰 이유는 '속도'다. 신약 하나를 개발해 상용화하기까지는 천문학적인 비용과 10년 이상의 시간이 든다. 반면 이미 시장성이 검증된 타사 품목을 도입하면 즉각적인 외형 성장을 이룰 수 있다. 기존에 구축해 둔 영업 조직 입장에서도 특정 병원을 방문할 때 자사 제품 한두 개만 들이미는 것보다, 외부 도입 품목을 더해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제안하는 것이 영업 효율을 극대화하는 길이다.

함정은 '마진'··· 매출 뻥튀기 주의보


문제는 수익성이다. 남의 약을 파는 만큼 마진율은 자체 제품에 비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상품매출에는 원개발사나 공급사에 떼어주는 '매입원가'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제품매출 비중이 높은 회사가 짭짤한 영업이익을 챙기는 반면, 상품매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은 회사는 매출 규모(외형)만 비대하고 실속(영업이익률)은 텅 빈 '빛 좋은 개살구'가 될 위험이 있다.

회계상 착시도 주의해야 한다. 최근 유행하는 '공동판매(Co-promotion)' 계약 구조에 따라 실적표의 모습은 천차만별로 바뀐다. 제약사가 재고 위험을 직접 떠안고 약을 떼다 파는 구조라면 국제회계기준(IFRS 15)에 따라 판매액 전체(총액)가 상품매출로 잡힌다. 하지만 단순히 영업 활동만 대행하고 수수료를 받는 구조라면, 덩치 큰 상품매출이 아닌 '수수료매출'이나 '용역매출'(순액)로 소박하게 반영된다. 겉보기엔 똑같은 판매 제휴라도 계약의 성질에 따라 매출의 질이 완전히 달라지는 셈이다.

상품과 제품의 황금비율 찾아라


그렇다고 상품매출 비중이 높은 제약사를 무조건 자체 경쟁력이 없다고 깎아내릴 수는 없다. 우수한 외부 신약을 국내 시장에 빠르게 안착시키는 것도 제약사의 핵심 역량이다.

다만 아킬레스건은 명확하다. 극단적인 경우 원개발사가 "이제부터 우리가 직접 팔겠다"며 판권을 회수해 버리면, 단숨에 수백억 원의 매출이 증발해 버리는 치명적 리스크를 안고 가야 한다.

투자자와 시장이 실적 기사에서 읽어내야 할 핵심은 '균형'이다. 상품매출로 확보한 두둑한 현금(캐시카우)과 튼튼한 영업망을 지렛대 삼아, 자체 신약 파이프라인과 제품매출을 얼마나 착실히 키워가고 있는가. 단순한 숫자 너머, 제약사의 진짜 경쟁력을 가늠하는 잣대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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