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전기 없는 AI 없다···굴뚝산업의 화려한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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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없는 AI 없다···굴뚝산업의 화려한 귀환

등록 2026.06.08 06:59

김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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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우

  기자

조선 엔진 기술, 육상 발전설비로 각광철강·화학 유휴 부지, 핵심 인프라로 재조명데이터센터 전력망 확보가 입지 경쟁 좌우

그래픽=박혜수 기자그래픽=박혜수 기자

인공지능(AI) 산업이 급성장하면서 조선·철강·화학을 일컫는 이른바 '굴뚝 산업'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AI 서비스의 핵심 기반인 데이터센터가 24시간 막대한 전력을 소비하는 구조인 만큼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반도체 확보를 넘어 발전 설비와 송전망 등 전력 인프라를 직접 확보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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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ick Point!

AI 산업 성장으로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급증

전통 제조업이 AI 시대 인프라 공급자로 재조명

전력 인프라 확보가 AI 경쟁력의 핵심으로 부상

숫자 읽기

글로벌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 2024년 415TWh에서 2030년 945TWh로 2배 이상 증가 전망

국내 데이터센터 약 60%가 수도권에 집중

민간 데이터센터 75% 이상 수도권에 몰림

자세히 읽기

데이터센터용 발전·송전 인프라 구축에 5~10년 이상 소요

가스터빈 공급 부족, 송전망 병목 등으로 전력 확보 어려움

중속엔진 기반 발전설비가 데이터센터 임시·백업 전원으로 주목

펼쳐 읽기

철강·화학업계 유휴 부지와 전력망이 데이터센터 입지로 재평가

동국제강, 심팩 등 유휴 공장 부지에 데이터센터 구축 사례 등장

여수·대산 산단 등 기존 산업단지의 전력·냉각 인프라 가치 부각

향후 전망

AI 데이터센터 입지 경쟁력, 전력·냉각 등 인프라 조달 능력에 달림

전통 제조업의 인프라 자산이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부상

국내외 기업, 태양광·SMR·연료전지 등 차세대 에너지 인프라 확보 경쟁

다만 전력 인프라 확충 속도는 AI 산업 성장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데이터센터를 위한 발전·송전 인프라 구축에는 통상 5~10년 이상이 소요된다. 미국에서는 가스터빈 공급 부족과 송전망 병목 현상이 나타나고 있고, 국내 역시 수도권 전력망 포화로 인해 신규 데이터센터 사업이 지연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전통 제조업이 AI 시대의 핵심 인프라 공급자로 부상하고 있다. 선박 엔진 기술이 데이터센터용 발전 전력 설비로 활용되고, 철강·화학업계의 산업용 전력망과 유휴 공장 부지는 AI 데이터센터 입지 후보지로 재평가받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GPU보다 전기 부족"···K-조선, 선박 엔진 AI 특수


그래픽=박혜수 기자그래픽=박혜수 기자

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데이터센터가 AI 수요의 핵심 기반으로 떠오르면서 전력 소비 증가 속도는 일반 산업 수요를 크게 앞지르고 있다. AI 데이터센터는 예비 전원이 제때 기동하지 못하거나 부하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지 못하면 서버 중단은 물론 냉각 장애로 이어질 수 있다.

데이터센터 사업자 입장에서는 단순 대규모 전력을 확보하는 것을 넘어 안정적인 전력 공급과 즉각적인 대응 능력을 함께 갖춰야 하는 상황이다.

전력 확보 경쟁이 심화되면서 발전설비 자체도 데이터센터의 핵심 인프라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송전망 연결 지연과 가스터빈 공급 부족으로 단기간 내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대체 전원으로 관심이 쏠리고 있다.

문형남 한국AI교육협회 회장은 "작은 전산실도 UPS와 자가발전 장치를 갖추듯 데이터센터는 대규모 전산실이기 때문에 전기가 끊기지 않는 것이 기본 조건"이라며 "전압이 불안정하거나 정전이 발생하면 시스템에 충격을 줄 수 있어 데이터센터에서는 전력의 양뿐 아니라 전기의 품질도 매우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전력 병목 현상의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선박 엔진 기술을 기반으로 한 육상발전용 엔진이다. 데이터센터에 적용되는 것은 선박 추진기관 자체가 아니라 선박과 발전 시장에서 검증된 중속엔진 기술을 활용한 발전설비다.

선박용 대형 저속엔진은 컨테이너선·LNG운반선 등의 프로펠러를 직접 돌리는 추진기관에 가깝지만, 중속엔진은 선내 전력 공급이나 육상 발전설비에 폭넓게 활용된다. 데이터센터에는 이 중속엔진에 발전기를 결합한 육상용 발전 패키지가 적용된다.

이러한 엔진 발전설비 역시 전기를 생산한다는 점에서는 기존 발전설비와 동일하지만 가스터빈보다 납기가 짧고 여러 대를 조합해 필요한 용량만큼 단계적으로 증설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데이터센터 사업자들이 송전망 연결을 기다리는 동안 임시 전력을 공급하거나, 백업 전원 및 일부 지역에서는 상시 발전원으로 활용하기에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제 글로벌 데이터센터 시장에서는 이러한 중속엔진 기반 발전설비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다. HD현대중공업도 이 같은 흐름에 맞춰 엔진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HD현대중공업은 최근 미국 에너지 인프라 개발기업과 20메가와트(MW)급 힘센엔진 기반 발전설비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계약 규모는 6271억원으로 그동안의 발전용 엔진 계약 중 최대 규모다. 이 설비는 데이터센터 전력 인프라에 투입될 예정이다.

이번 계약은 HD현대중공업이 데이터센터 전력 인프라에 맞는 육상 발전 패키지로 확장했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 AI 데이터센터에 활용되는 것은 선박 추진기관 자체가 아니라 선박과 발전 시장에서 검증된 엔진 제작·운전 기술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방식이다.

최병호 고려대학교 AI 연구원 연구교수는 "AI 데이터센터는 고성능 GPU가 24시간 가동되는 구조라 전력과 냉각 등 인프라 전반의 안정성이 중요하다"며 "전력 수요가 커질수록 안정적으로 시스템을 돌릴 수 있는 백업 전원과 보조 전력 설비 수요도 함께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기 있는 땅' 돈 된다···철강·화학, 유휴부지 재평가


출처=유토이미지출처=유토이미지

AI 시대에는 발전설비를 넘어 데이터센터를 지을 수 있는 '전기 있는 땅'의 가치도 재평가되고 있다. 최근 데이터센터 건설 과정에서 가장 큰 난제로 꼽히는 것은 전력 확보다. 분산에너지활성화 특별법에 따르면 10MW 이상 전력을 사용하는 시설은 전력계통 영향평가를 받아야 하는데, 수도권에서는 전력망 여유 부족으로 통과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따라 데이터센터 사업자들은 신규 송전망 구축보다 이미 대규모 전력 인프라를 갖춘 산업 부지를 확보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대규모 전력망을 보유한 철강·화학업계의 유휴 공장 부지가 새로운 자산으로 부상하고 있다.

최근 철강·석유화학 산업은 글로벌 공급 과잉과 수요 둔화로 공장 가동률을 낮추거나 일부 생산라인을 중단하고, 공장을 폐쇄하며 구조조정의 대상이 됐다. 이 가운데 이들 산업 부지가 이미 대규모 산업용 전력망, 변전소, 냉각·용수 설비 등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 부각된다.

동국제강은 인천·충남 당진 등 제철소 유휴 부지에 데이터센터를 구축하고, 이를 임대하는 사업을 검토 중이다. 글로벌 철근 수요 둔화로 인천 철근공장은 50%대 가동률을 유지 중인 가운데 공장 부지나 전력망 등 자산의 새로운 가치를 모색하고 있다.

철강업계에서는 생산설비의 활용 가치보다 전력망과 부지 자체의 가치가 높아질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공장 부지가 생산 설비를 위한 공간이었다면 이제는 전력망과 변전소를 갖춘 인프라 자산으로 평가받고 있다"며 "AI 데이터센터 확산으로 산업용 전력 인프라의 가치가 달라지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실제 포항에서는 합금철 전문기업 심팩의 공장 부지를 활용한 AI 데이터센터 구축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이 공장은 업황 부진으로 가동이 중단됐지만, 345킬로볼트(kV)급 변전소와 인접해 있어 대규모 전력을 즉시 공급받을 수 있다는 점이 데이터센터 입지 경쟁력으로 작용했다. 철강업계가 보유한 유휴 부지와 전력 인프라가 새로운 자산으로 평가받는 배경으로 꼽힌다.

석유화학업계도 비슷한 흐름이 감지된다. 글로벌 공급 과잉으로 사업 재편이 진행 중인 여수·대산 국가산업단지는 국가 기간산업 거점으로 대규모 송전·변전 설비와 열병합발전, 공업용수 인프라를 이미 갖추고 있다. 수도권 데이터센터 입지 확보가 전력망 문제로 갈수록 어려워지면서 이들 산단이 보유한 전력·용수 인프라 가치도 재조명되고 있다.

특히 석유화학 공정 특성상 구축된 대규모 전력망과 냉각용 인프라는 막대한 전력과 냉각 설비가 필요한 AI 데이터센터 수요와 맞닿아 있다. 업계에서는 데이터센터 입지 경쟁력이 부지 확보를 넘어 전력과 용수, 냉각 인프라 확보로 확대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지방 산업단지를 데이터센터 거점으로 활용하려는 논의도 이어지고 있다. 전남 동부권에서는 율촌산단을 중심으로 제조업 특화 AI 데이터센터 유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충남 대산권에서도 데이터센터와 차세대 전원인 소형모듈원전(SMR)을 연계한 산업 전환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전력망 신설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기존 산업단지가 보유한 물리적 인프라의 전략적 가치가 부각되는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향후 데이터센터 입지 경쟁력이 단순 부지 확보를 넘어 전력 조달 능력에 의해 결정될 것으로 보고 있다.

김철현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등은 최근 보고서에서 "국내 데이터센터 입지는 송전선로 제약과 전력 여건을 고려할 때 영남·호남권이 상대적으로 유리하다"며 "충청권은 대산 석유화학단지를 활용한 연료전지, 호남권은 여수 석유화학단지의 부생수소 기반 연료전지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AI가 다시 부른 굴뚝산업···'물리 인프라' 경쟁


그래픽=홍연택 기자그래픽=홍연택 기자

그동안 AI 산업 경쟁은 그래픽처리장치(GPU)와 소프트웨어를 중심으로 인식돼 왔다. 그러나 생성형 AI 확산으로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급증하면서 전력 생산과 송배전, 발전 설비, 산업용 부지 확보 등 '물리 인프라'가 새로운 경쟁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글로벌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는 2024년 약 415TWh(테라와트시)에서 2030년 945TWh 수준으로 두 배 이상 증가할 전망이다. 미국의 경우 데이터센터가 향후 전력 수요 증가분의 45% 이상을 차지할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하지만 송전망과 발전 인프라 확충은 AI 산업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가스터빈 공급 부족으로 주요 공급업체 납기가 2028~2030년으로 밀린 상태다. 국내에서는 발전설비보다 송전선로와 변전소 등 전력망 확보가 데이터센터 입지의 핵심 변수가 되고 있다.

최 교수는 "전력망은 기존 산업 수요를 기준으로 설계됐지만 AI 데이터센터라는 새로운 대규모 전력 수요가 등장하면서 전력 인프라를 새롭게 배분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데이터센터의 약 60%가 수도권에 집중돼 있고 민간 데이터센터 75% 이상이 수도권에 몰려 있다. 수도권 전력망 부담이 커지면서 지방 산업단지와 기존 산업용 전력 인프라 활용 방안이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는 배경이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도 전력 공급망 확보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메타는 원전 재가동 프로젝트와 장기 전력구매계약(PPA)을 통해 전력을 확보하고 있으며, 아마존과 마이크로소프트도 SMR과 차세대 에너지 프로젝트에 투자하고 있다. AI 산업 경쟁력이 반도체 확보를 넘어 안정적인 전력 조달 능력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내 기업들도 AI 시대 글로벌 전력 수요 증가를 새로운 사업 기회로 보고 있다. OCI홀딩스는 미국 텍사스를 중심으로 태양광 발전 사업과 데이터센터 연계 인프라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OCI에너지는 2030년까지 개발 자산 15GW, 운영 자산 2GW 이상 확보를 목표로 전력 수요 증가에 대응하고 있다.

AI 산업 경쟁의 무게 중심이 반도체와 소프트웨어에서 전력·냉각·부지 확보 등 물리적 인프라 영역으로 이동하면서, 한때 '굴뚝 산업'으로 불리던 전통 제조업이 다시 핵심 인프라 공급자로 부상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 교수는 "GPU 성능은 계속 높아지고 데이터센터 규모도 커질 수밖에 없다"며 "결국 AI 산업의 성장은 전력과 냉각 등 물리적 인프라의 한계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해결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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