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움직이는 궁전' 레인지로버···럭셔리 SUV 왕좌 지킨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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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는 궁전' 레인지로버···럭셔리 SUV 왕좌 지킨 비결

등록 2026.03.16 17:46

권지용

  기자

최고급 세단 못지않은 안락함과 첨단 기술진흙탕도 두렵지 않은 전천후 퍼포먼스고요한 성소 같은 실내와 압도적 효율성

랜드로버 레인지로버. 사진=권지용 기자랜드로버 레인지로버. 사진=권지용 기자

어느덧 계절의 결이 바뀌고 바람의 온도도 사뭇 달라진 요즘입니다. 이런 날이면 문득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어지곤 하죠. 오늘 만난 주인공은 여정 자체를 황홀한 휴식으로 바꾸는 마법 같은 존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바로 랜드로버의 자존심이자 럭셔리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의 정점, '레인지로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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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ick Point!

레인지로버는 럭셔리 SUV의 상징이자 오랜 전통과 혁신을 결합한 모델

영국 왕실의 선택을 받은 차량으로 '사막의 롤스로이스'라는 별명 보유

5세대 레인지로버 P530 LWB는 530마력의 성능과 최상급 안락함 제공

전천후 품격의 뿌리

1970년대 '어디서든 품위를 유지하는 차'라는 꿈에서 시작

오프로드 강점과 고급 세단의 안락함을 동시에 구현

영국 왕실과 귀족들이 선택한 이유는 전천후 품격과 존재감

자세히 읽기

실내는 최고급 가죽과 향기로 심리적 풍요로움 제공

디지털 계기판, 조향감, 에어 서스펜션 등 세심한 배려

소음·진동 억제와 액티브 노이즈 캔슬링으로 고요한 실내 구현

숫자 읽기

530마력, 2.8t 무게에도 가뿐한 가속력

연비는 정속 주행 시 리터당 12.8km 기록

90리터 대용량 연료탱크, 고급유 기준 20만원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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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좌석은 비행기 1등석 수준의 공간과 럭셔리 제공

전동식 기능, 마사지 시트, 4인승 궁전 같은 활용 가능

7가지 오프로드 주행 모드로 본연의 SUV 성능도 충실

반세기 전통과 기술력, 독보적 아우라로 경쟁자들과 차별화

이 차가 왜 SUV의 왕이라 불리는지, 왜 '사막의 롤스로이스'라 불렸는지 그 뿌리를 살짝 들여다볼까요. 1970년대 당시 랜드로버의 엔지니어들은 이런 꿈을 꿨다고 합니다. "진흙탕을 거칠게 헤치고 나온 다음 곧장 런던의 최고급 호텔 정문 앞에 세워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차를 만들 수 없을까?" 무모한 도전처럼 보이던 상상을 현실로 구현한 모델이 바로 1세대 레인지로버였습니다.

대체 무엇이 그렇게 좋았길래 까다롭기로 소문난 영국 왕실이 이 차를 전용차로 낙점했을까요? 비결은 바로 '전천후 품격'에 있었습니다. 당시의 다른 오프로드 차들은 투박한 철판과 먼지투성이 실내를 견뎌야 하는 장비에 가까웠습니다. 반면 레인지로버는 달랐죠. 험준한 산맥을 넘고 깊은 강물을 건너는 야수 같은 능력을 갖췄으면서도 그 속살은 최고급 세단 못지않게 안락하고 화려했으니까요.

폭풍우가 몰아치는 사냥터에서 사냥을 마친 왕실 귀족들이 젖은 옷을 입고 올라타도 전혀 상관없었습니다. 레인지로버는 세상에서 가장 평온한 응접실로 맞아주었거든요. 어떤 길 위에서도 운전자의 품위를 잃지 않게 해 주는 존재감이야말로 레인지로버를 진정한 럭셔리 SUV로 격상시킨 힘이었습니다.

랜드로버 레인지로버. 사진=권지용 기자랜드로버 레인지로버. 사진=권지용 기자

반 세기 넘는 시간 동안 레인지로버는 영국 왕실이 사랑하는 차로 자리 잡았고(생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레인지로버를 직접 운전하는 모습이 종종 포착되었죠), '사막의 롤스로이스(롤스로이스 컬리넌이 등장하기 전까지는요. 이 별명의 유래는 조금 뒤에서 다루겠습니다)'라는 수식어를 독점하며 럭셔리 SUV라는 길을 묵묵히 닦아왔습니다.

오늘 제가 마주한 5세대 모델은 기나긴 서사의 정수를 꾹꾹 눌러 담아낸 결정체라 할 수 있습니다. 정확한 이름은 '랜드로버 레인지로버 P530 LWB'. 530마력을 내는 롱바디 모델이라고 생각하면 쉽습니다.

차 문을 열기 위해 도어 핸들에 손을 가까이 대는 순간부터 대접받는 기분이 듭니다. 매끄럽게 튀어나오는 손잡이를 잡고 육중한 문을 열면 코끝을 스치는 향기부터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단순히 '새 차 냄새'라고 치부하기엔 너무나 우아하고 깊이가 있습니다. 마치 백화점 명품관에 들어선 듯한 착각에 빠지거든요. 엄선된 최고급 가죽이 천장부터 바닥 부근 등 생각지도 못한 곳까지 아낌없이 씌워져 있습니다. 공간이 주는 심리적 풍요로움이 이런 것이구나 싶어 한동안 향기를 음미하게 되더군요.

향기로운 시트에 몸을 깊숙이 파묻고 시동을 걸면 디지털 계기판이 부드럽게 깨어납니다. 요즘 차들은 현란한 그래픽으로 운전자의 눈을 피로하게 만들기 일쑤인데, 레인지로버의 계기판은 눈이 피곤하지 않도록 조율한 색상 조합을 보여줍니다. 채도가 너무 높지도, 낮지도 않은 그 절묘한 경계선에서 운전자에게 필요한 정보만을 차분하게 전달해 주는데, 이 세심한 배려 덕분에 장거리 운전도, 야간 운전도 마치 내 집 거실 소파에 앉아 쉬는 것처럼 편안하게 느껴집니다.

랜드로버 레인지로버 실내. 사진=권지용 기자랜드로버 레인지로버 실내. 사진=권지용 기자

유독 만족스러운 부분이 하나 더 있습니다. 조향감이 정말 물건입니다. 스티어링휠을 좌우로 돌리는 가볍고 매끄러운 손맛이 단순히 기계 장치를 조작하는 느낌을 넘어섭니다. 마치 잘 가공된 대리석 위를 미끄러지는 듯한 조향감 자체부터 럭셔리 그 자체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주행을 시작하면 감탄은 확신으로 바뀝니다. 이 차의 심장은 BMW의 고성능 V8 S58 엔진입니다. 최고출력 530마력의 강력한 힘을 품고 있어 이름 뒤에 'P530'이라는 훈장 같은 이름이 붙었죠. 2.8t에 육박하는 거구가 가속 페달에 살짝만 힘을 줘도 마치 중력을 거스르는 듯 가뿐하게 전진합니다. 그 힘의 전개가 어찌나 여유로운지, 마치 "언제든 달려 나갈 수 있지만 굳이 서두르지는 않습니다"라고 외치는 듯한 귀족의 뒷모습을 닮았습니다.

그 승차감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부유하는 요트'와 같습니다. 비결은 하체에 숨어 있습니다. 아주 부드럽게 세팅된 에어 서스펜션과 소파처럼 두툼한 시트가 협공을 펼치며, 노면의 자잘한 요철이나 큼지막한 방지턱의 충격을 꿀떡꿀떡 삼켜 버립니다. 운전자에겐 그저 노면 상태를 살짝 알려주는 기분 좋은 피드백이 전달될 뿐이죠.

레인지로버의 외관을 보면 다소 각진 전면 유리와 거대한 사이드미러 때문에 공기역학적으로는 소음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하지만 풍절음은 거의 들려오지 않습니다. 실내 정숙함은 도심은 물론, 거센 바람이 부는 고속도로에서도 흐트러짐 없이 이어집니다.

랜드로버 레인지로버. 사진=권지용 기자랜드로버 레인지로버. 사진=권지용 기자

전반적인 소음 및 진동(NVH) 억제 능력은 정말 두말하면 입 아픈 수준입니다. 고속 주행 중에도 옆 사람과 속삭이듯 대화가 가능할 정도인데, 이는 두꺼운 이중접합유리와 차체 곳곳에 아낌없이 투입된 흡·차음재가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외부 소음을 실시간으로 분석해 반대 파형의 신호를 발생시켜 소음을 지워버리는 액티브 노이즈 캔슬링 시스템까지 활약하니 실내는 마치 세상과 단절된 고요한 성소처럼 느껴집니다. 럭셔리 SUV 시장에서 레인지로버가 롱런할 수 있는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더군요.

물론 거대한 궁전에도 물리 법칙의 한계는 존재합니다. 530마력이라는 넘치는 힘을 가졌음에도 무거운 몸무게와 높은 키 때문에 급격한 고속 코너링에서는 다소 부담스러운 기색을 내비치기도 합니다. 롤링을 최대한 억제하려 노력하지만, 물리적인 질량 자체가 크다 보니 코너를 공략할 때는 스포츠카 같은 날카로움보다는 여유로운 리듬을 타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넘치는 힘은 때와 장소를 가려 사용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죠.

대신 효율성에서는 예상외의 반전을 보여주었습니다. 8기통 대형 SUV를 타면서 기름값을 걱정하는 게 조금 어색할 수도 있지만, 기술력을 확인하는 차원에서는 의미가 큽니다. 자유로에서 정속 주행을 하며 확인한 연비는 7.8L/100km, 우리 식대로 하면 리터당 12.8km를 넘나드는 놀라운 수치였습니다. 물론 막히는 시내 또는 가속 페달을 깊게 밟으면 연비가 시원하게 떨어지긴 합니다만, 대신 커다란 연료 탱크를 탑재해 주유소를 자주 들러야 하는 번거로움을 덜었죠(90리터, 고급유 가득 넣으면 20만원 정도 나옵니다).

랜드로버 레인지로버 2열. 사진=권지용 기자랜드로버 레인지로버 2열. 사진=권지용 기자

이 차의 진짜 감동은 뒷좌석에서 완성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롱 휠베이스 모델답게 광활하게 펼쳐진 2열 공간은 그 자체로 하나의 독립된 휴식처가 되어주는데요. 인상적인 점은 이 거대한 공간 안의 기능들이 손가락 끝의 가벼운 조작만으로 우아하게 통제된다는 사실입니다.

센터콘솔이 매끄럽게 내려오고 컵홀더가 모습을 드러내는 과정부터 좌우측 선블라인드의 움직임까지 모두 전동으로 작동해 귀빈 대접을 제대로 해줍니다. 열선과 통풍은 물론, 세심하게 설계된 마사지 시트에 몸을 맡기고 있으면 럭셔리 SUV가 지향하는 안락함이 어떤 높이에 와 있는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이런 '사치'야말로 럭셔리를 정의하는 장비가 아닐까 합니다.

조수석 의자를 최대한 앞으로 밀어내면 비행기 1등석 부럽지 않은 여유로운 공간이 나타나는데, 다리를 쭉 뻗고 몸을 깊숙이 파묻는 순간 일상의 피로는 차창 밖 풍경처럼 멀어집니다. 비록 5인승으로 등록된 모델이지만, 실질적으로는 2열 가운데 좌석을 비워두고 4인승 궁전처럼 활용하는 바가 이 차의 품격에 더 어울려 보입니다. 가운데 자리에 누군가 앉는 순간 레인지로버가 공들여 설계한 고요하고 호화로운 마법의 상당 부분을 내려놓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니면 진짜 4인승 모델을 골라도 좋고요(물론 더 비쌉니다).

랜드로버 레인지로버. 사진=권지용 기자랜드로버 레인지로버. 사진=권지용 기자

마지막으로 레인지로버의 고향은 거친 사막과 험지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SUV 명가 출신답게 각종 험로 보조 장치는 기본이고, 무려 7가지나 되는 주행 모드를 지원하죠. 심지어 도심형 SUV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저단 기어까지 들어갔습니다.

아마 이 차를 구매하는 분들 중 실제로 진흙탕에 차를 밀어넣을 분은 거의 없겠지만, 랜드로버는 만에 하나라도 그럴 일이 생길 이들을 위해 자신들이 가진 모든 오프로드 기술을 이 차에 쏟아부었습니다. "우리는 어디든 갈 수 있지만, 굳이 가지 않을 뿐이다"라는 은근한 오만함이 느껴지는 대목인데, 그게 또 이 차의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기도 합니다. '사막의 롤스로이스'였던 진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죠.

레인지로버는 단순히 비싼 차가 아닙니다. 50년 넘는 세월 동안 쌓아온 경험과 고집이 만들어낸 하나의 작품이죠. 다양한 브랜드들이 연이어 초호화 SUV를 선보이며 이 자리를 넘보고 있지만 레인지로버가 가진 특유의 아우라와 안락함의 깊이를 따라잡기엔 아직 부족한 모습입니다. 시간이 흐르고 경쟁자들이 무섭게 추격해 오더라도 레인지로버는 쉽게 왕좌를 내어주지 않겠죠. 이들은 반세기를 헛되이 보내지 않았습니다. 그 증거가 바로 여기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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