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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바이오 조용히 한국 떠나는 글로벌 제약사 왜?

유통·바이오 제약·바이오

조용히 한국 떠나는 글로벌 제약사 왜?

등록 2024.10.31 17:19

이병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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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디파마 사업 축소 이어 쿄와기린 시장 철수올해 글로벌제약사 품목허가 취하 62건환자 단체 "치료 공백 우려" 목소리도

그래픽=홍연택 기자그래픽=홍연택 기자

글로벌 제약사가 한국 시장에서 철수하고 있다. 사업 부문 전체를 철수하는가 하면 제네릭(복제약) 경쟁에 밀려 허가 취하를 하는 경우도 늘었다. 환자 단체는 치료 공백을 우려하며 제도 개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31일 제약·바이오 업계에 따르면 일본계 글로벌 제약사 한국쿄와기린은 최근 한국에서 전문의약품 사업 부문을 철수했다. 지난 4월 한국먼디파마가 마약성 진통제 사업을 정리한 이후 두 번째 대규모 철수다.

한국쿄와기린 전문의약품의 아시아태평양 전역 영업·마케팅·학술·유통·허가권은 시장 확장 서비스 제공 업체인 DKSH코리아에 양도됐다. 한국쿄와기린 법인은 유지되고 있는 상태지만, 희귀질환 치료제 사업을 영위하게 위한 10여명을 제외한 나머지 직원은 희망퇴직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초 LG화학과 공동 판매 협약을 맺었던 고인산혈증 치료제 '네폭실' 역시 DKSH코리아 측에서 협약을 이어받은 것으로 보인다. 협약에 따라 LG화학은 의원 및 병원급 그리고 일부 종합병원에서, 한국쿄와기린에게 판매권을 인도 받은 DKSH코리아는 종합병원급에서 해당 제품을 영업할 것으로 전망된다.

LG화학 관계자는 "기존의 쿄와기린 신장제품 판매 그대로 이어간다"고 말했다.

글로벌 제약사가 기존 사업을 대폭 축소하거나 아예 한국 법인을 해체하는 경우는 최근 몇 년 간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앞서 한국산도스는 삼일제약에 제품 유통권을 양도한 후 지난해 6월 한국 시장을 철수했다.

지난해 한국MSD는 블록버스터 당뇨약 '자누비아' 국내 판권을 종근당에 이전하면서 이를 담당하던 GM 사업부를 폐지했다. 약 100명에 달하는 GM 사업부 직원을 포함해 전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고, 타 부서에서 GM 사업부 잔류 인원보다 더 많은 수가 퇴직을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글로벌 제약사의 한국 사업 철수는 단순히 본사 사정에 따른 고강도 구조조정으로만 볼 수 없다. 한국에서 꾸준히 사업을 영위하는 제약사 중에서도 조용히 품목허가를 자진 취하하는 경우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 품목허가 목록 조사 결과 올해 10월 31일까지 글로벌제약사의 품목허가 취소는 약 62건이다.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이 9건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한국아스트라제네카 8건, 알보젠코리아와 한국화이자제약이 5건, 비브라운코리아 4건 순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 117건과 비교하면 47% 감소한 수준이다. 다만 이는 지난해 한국산도스가 철수하며 품목 35건을 취하했고, 품목갱신제 시행에 따라 화이자 등에서 대량 취하가 발생했기 때문으로 이를 제외하면 전년 동기 66건으로 올해와 엇비슷한 수준이다. 또 지난해 품목허가가 취소된 글로벌 제약사가 13곳에 그쳤지만, 올해는 이미 26곳에 달한다. 따라서 올해는 여러 다국적 제약사에서 다양한 품목을 자진 취하한 것으로 풀이된다.

올해 초 아스트라제네카가 당뇨병 치료제 '포시가'(성분명 다파글리플로진)에 대해 품목허가를 취소한 것을 시작으로 비소세포폐암 치료제 '가브레토캡슐'(성분명 프랄세티닙), 항암제 아바스틴(성분명 베바시주맙) 바이오시밀러 '자이라베브', 천식치료제 '세레타이드(플루티카손·살메테롤)' 등이 품목허가를 취하했다.

포시가는 지난 2013년 국내 허가된 이후 지난해 매출 550억원을 돌파한 의약품으로 아스트라제네카는 공급 중단을 넘어서 허가와 급여를 모두 철회한다는 강수를 뒀다. 업계에서는 특허 만료로 인한 약가인하가 주요 원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포시가는 지난해 특허소송에서 속속 패배하며 현재까지 제네릭 단일제 및 복합제를 합쳐 190개가 넘는 품목이 출시됐다.

단일 국가보험을 운영하는 한국의 약가제도 특성상 당국은 재정절감을 위해 사후관리기전을 적용해 지속적인 약가인하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제네릭이 출시되면 오리지널 의약품 약가가 제네릭보다 낮아지는 일명 '약가 역전 현상'이 종종 일어나게 된다. 지난해부터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KRPIA)가 실시한 대회원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사 대상이 된 14개 질환 치료제 중 30%에서 오리지널 의약품과 제네릭 의약품 간 약가 역전 현상이 벌어졌다.

약가 역전 현상이 발생하는 원인은 다양하다. 시장 경쟁력 유지를 위해 약가를 자진 인하하는 제약사도 있지만, 약가인하 압력으로 인해 타의적으로 제네릭보다 낮추는 제약사도 있다. 포시가는 후자의 경우로, 판매사인 아스트라제네카는 아예 약가인하에 반발해 행정소송과 약가인하 고시 효력 집행정지 가처분을 신청하기도 했다. 결국 가처분이 인용되며 판매가 종료될 때까지 약가 방어에 성공할 수 있었다.

보험급여 미등재로 출시가 불발된 자이라베브나 비급여 판정을 받은 후 철수를 결정한 가브레토캡슐도 약가인하 압력 때문에 시장에서 철수한 경우다. 출시 후, 혹은 출시 전부터 경쟁 품목이 등장해 더 낮은 가격으로 시장을 공략했고 그 과정에서 급여등재까지 실패하며 완전히 경쟁력을 잃게 된 것이다.

의약품 특성상 품목허가 취하의 여파는 단순히 한 회사 매출 하락에 그치지 않는다. 실제로 의약품을 처방받는 환자에게도 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약물 선택권이 제한적이고 수입의약품에 대한 의존도가 심한 희귀의약품은 시장 철수에 대한 반발이 심한 편이다.

지난해 한국에서 대량으로 철수한 파킨슨병 오리지널 치료제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지난해 국내 파킨슨병 환자가 가장 많이 복용하던 치료제인 로슈의 '마도파'정은 수익성 감소를 이유로 한국에서 철수했다. 당시 로슈는 제네릭이 출시되면서 오리지널 약 가격이 인하되자 사업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한국베링거인겔하임의 '미라펙스'서방정도 공급을 중단하기로 했다.

마도파정은 지난 2021년 철수한 MSD의 '시네메트'정과 같은 레보도파 계열 약물이다. 마도파정이 철수하며 국내에는 레보도파 계열 약물은 제네릭만 남게 됐다. 문제는 현재 유일한 레보도파제 약물인 제네릭 '명도파정'에 대해 부작용을 호소하는 환자가 많았다는 것이다.

대한파킨슨병협회를 비롯한 파킨슨병 환자 단체는 지난해 국민동의 청원에 글을 올리고 '마도파정 재공급 촉구'를 요청했다. 같은 해 10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식약처나 보건복지부를 비롯한 행정부 측에서는 "미도파정에 대한 수요가 있다는 걸 알고 있다"면서 "제약사나 관련 부처, 환자 협회와 함께 논의하겠다"고 답변했지만, 아직까지 구체적인 재공급 계획은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일부 환자는 공급 중단 후에도 여전히 오리지널 제품을 '직구'해 복용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파킨슨병협회 관계자는 "제네릭이 똑같은 약이라고 얘기하는데, 제대로 효과를 보는 사람은 보지만 환자에 따라 국내 제네릭 약이 '받지 않는' 경우도 있다"면서 "아직까지 재공급은 안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미도파정 공급 이후 꾸준히 재공급 요청을 하고 있지만, 제약사 입장도 있고 식약처 입장도 있어 난관이 많다"며 "최근에도 국회 보건복지위원장과 면담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식약처 관계자는 "지난해 국감 이후 특별히 상황이 달라진 건 없고, 환자 단체 등에서도 강한 요청이 들어오진 않았다"면서 "당시 노바티스에서도 들어온다고 하다가 약가 탓에 더 이상 추진하지 않는 걸로 알고 있다. 한국처럼 작은 한 국가를 위해서 큰 글로벌 기업이 움직이는 경우는 드문 걸로 안다"고 했다.

글로벌 제약사 포시가 철수와 재도입 포기를 선언하는 것을 보며 업계에서는 '코리아 패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장기적으로 글로벌 제약사가 국내 임상을 배제하고 R&D 투자를 줄이는 등 업계 전반에 부정적 영향이 가해질 수 있어서다. 따라서 약가인하 정책에 대해서는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김동숙 공주대학교 연구원은 "오리지널 의약품 대비 제네릭 약가 비율은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0.5 이하를 차지하고 있는 반면, 한국에서 오리지널 의약품 대비 제네릭 약가는 1에 가까운 상태"라면서 "특허는 만료되었으나 경쟁이 없는 의약품 가격 모니터링 및 사후관리는 필요하지만 시장 크기가 적어 판매액이 낮고 이로 인한 채산성이 떨어지는 필수의약품에 대한 별도의 보완대책 마련도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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