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의대정원 확대가 이슈다. 정부는 2000명을 증원하겠다는 방침을 밝혔고, 의협과 전공의 단체는 반대를 표하며 단체행동을 예고했다. 2020년의 전공의 파업이 재연될 수 있는 형국이다. 의협과 전공의 단체는 2020년 9월의 합의서를 백지화했다고 비토한다. 정부는 강행 의지를 밝히는 중이다. 지역에 의료 인력이 부족하고, 대학병원에 '바이탈' 전공(내과, 외과, 흉부외과, 응급의학과,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자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강대강 대치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정원을 확대하면 지역 의료 인력이 확보되고, 바이탈 전공자가 늘어날까? 낙관론은 어쩌면 앞서 언급한 '균등화'의 함정에 빠진 사고일 수 있다. 지역의료원의 보건 환경을 고려한 적정한 배치, 지역 의료여건 불비에 따른 서울 Top 5 대학 병원 선호, 대학병원과 지방 근무 의사들에 대한 적정한 처우, 소송 리스크에 비례하지 않은 처우 책정 등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선 아무리 정원을 확대해도 구멍 난 독에 물 붓기에 그치고 만다. 고교 이공계 수험생들의 의대 선호는 바이탈 전공 선호와 지방 근무 선호의 신호가 아니다.
물론 이 지점에 '형평성' 논란이나 '국민 정서' 문제가 함께 자리 잡고 있다. 이미 상대적 초고소득 직군인 의사집단의 누군가의 처우를 수가 체계를 통해 개선하는 것에 대한 심리적 저항, 환자의 의료소송할 권리를 사람의 목숨에 직면한 바이탈 전공 의사들의 공포 경감과 함께 논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정치사회적 질문이 따라온다.
그럼에도 지금의 어려움이 문제에 대한 직면보다는 회피에서 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결국 전 국민이 의사가 되어 스스로를 돌보지 않는 이상 틈새 공간의 묘수나 의사들의 헌신에 기대는 방책보다는 이해당사자들이 지난한 논의 끝에 합의할 수 있는 해답을 찾아 나서야 하는 '진실의 순간'에 직면해야 하는 상황이다. 건보재정의 고갈이 우려되는 지금이 골든타임이다.
의료계의 사정은 최근 1~2년간 인력난에 허덕거리는 조선업의 용접공 양성과 고용 문제와도 크게 양상이 달라 보이지 않는다. 업계에 따르면 최근 2년간 용접공의 임금은 가파르게 올랐지만, 용접공 구하기는 여전히 어렵다. 내국인으로 구하기 어려우니 아시아 전체를 돌아다니며 E7 전문가 비자로 용접공을 모셔 오고, 외국인 비율 20%로 부족해 30%까지 법무부의 협조하에 쿼터를 확대했다.
어렵고 더럽고 힘들다는 3D 업종의 성격은 본격적으로 근대 조선업을 시작한 1970년대와 지금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는 오고 지금도 오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다른 산업의 노동수요가 있다는 것 외에도, 조선업의 고용 형태에 구조적 문제가 있다는 데 있다. 현재 고용되는 '임금이 오른' 용접공들이 대부분 사내하청 업체의 일당제 혹은 시급제 비정규직 노동자 지위에 있다는 것이다.
사내하청 업체들은 직고용(본공)이 어렵다고 하는데, 용접공 관점에서는 어차피 사내하청 업체의 본공을 하더라도 고용불안이 해소되지 않으니 그냥 일감이 많을 때 몸값을 올리는 '프리랜서'로서의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현재의 고용난은 사내하청 용접공의 고용난이다. 유연한 노동시장에서 구태여 반쯤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하는 것보다는 하루의 벌이를 높이는 것이 어쩌면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는 것이다. 같은 시점 원청 정규직 생산직을 모집할 때는 뽑는 인원보다 지원하는 인원이 훨씬 많다. 원청 정규직 일자리라면 여전히 메리트가 있는 셈이다. 이 문제를 회피한다면, 결국 조선소의 용접공 숙련의 문제는 궁극적으로 풀기가 어렵다. 마찬가지로 '진실의 순간'에 직면해야 하는 문제가 남는다. 누군가 '킹산직'(임금과 정년 모두를 보장받은 대기업 생산직)이라고 질시하더라도 결국 적정 수준의 원청 고용에 대해서 합의를 어떤 주체든 만들어야만 한다. 개별 기업 수준의 의사결정을 떠나 산업 자체의 장기 지속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방기할 경우 현재의 호황 국면은 물론 향후의 다운 턴에서 업계의 존속과 지역사회 일자리 문제가 시한폭탄처럼 다가올 수 있다.
지금까지 한국이 제조업을 비롯해 다양한 분야의 '퍼포먼스'(성과) 측면에서 선진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많은 경우 충분한 논의를 거쳐 단단해지는 제도화보다는 헌신과 단기간 집중에 따른 임기응변에 의존했다. 사람의 가치 평가를 제대로 할 여력이 부족했을 수는 있다. 그럼에도 모든 일하는 주체들은 보람 있게 책무를 수행하기 위한 조건에 대해 묻는다. 이제 더 미룰 수 있을까? 정석대로 풀어야 할 때다.
뉴스웨이 차재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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