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정용진 회장, 광주 찾아 진정성 보여야

오피니언 데스크 칼럼 서승범의 유통기안

정용진 회장, 광주 찾아 진정성 보여야

등록 2026.05.20 14:10

서승범

  기자

reporter

정용진 회장의 사과문은 나왔다. 관련 대표 해임도 이뤄졌다. 그러나 국민의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스타벅스의 이른바 '탱크데이' 논란이 단순한 마케팅 실패를 넘어 역사 인식과 진정성의 문제로 번졌기 때문이다. 이제 국민이 기다리는 것은 또 다른 입장문이 아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의 '광주행'이다.

논란의 시작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경솔했다.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을 전후해 스타벅스가 사용한 '탱크데이', '책상을 탁!'이라는 문구는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광주를 짓밟았던 계엄군의 탱크를 떠올리게 했고,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 당시의 왜곡된 해명을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의도가 있었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역사적 비극과 국가폭력의 상징을 상업적 홍보에 끌어들였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의 본질이다.

여론은 즉각 반응했다. 정치권과 노동계, 시민사회에서는 "역사 인식이 처참한 수준"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소비자들의 분노도 거셌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스타벅스 머그잔과 텀블러를 부수는 영상과 불매 선언이 잇따라 올라왔다. 일부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스타벅스를 넘어 신세계그룹 계열사 전체로 불매 움직임이 확산하는 분위기마저 감지된다. 브랜드 신뢰를 자산으로 삼아온 신세계그룹으로서는 뼈아픈 위기다.

정용진 회장과 신세계그룹의 대응은 빨랐다. 정 회장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며 공개 사과했고, 스타벅스 대표와 관련 임원을 즉각 해임했다. 재발 방지를 위한 역사·윤리 교육 강화 방침도 내놓았다. 통상 대기업의 위기 대응과 비교하면 상당히 신속한 조치였다.

하지만 국민 여론은 여전히 싸늘하다. 이유는 분명하다. 이번 논란이 단순한 광고 사고가 아니라 한국 현대사의 상처와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5·18은 누군가에게 교과서 속 사건이 아니다. 희생자 유가족과 민주화운동 당사자들에게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아픔이다. 그렇기에 국민은 형식적 사과보다 기업 총수의 태도와 진정성을 본다.

아쉬운 점도 바로 여기에 있다. 정 회장은 입장문을 통해 사과했지만, 정작 가장 상처받았을 광주 시민과 5·18 유공자들 앞에는 직접 서지 않았다. 해외 일정이라는 현실적 이유가 있었다고 해도 국민 눈높이에서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소한 언제까지 광주를 찾아 직접 사과하겠다는 약속만이라도 밝혔어야 했다.

위기관리에서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진심이다. 사과문의 문장보다 더 강한 것은 행동이다. 지금 정 회장에게 필요한 것도 추가 입장문이나 인사 조치가 아니다. 직접 광주 5·18 국립묘지를 찾아 고개 숙이고 유가족과 시민들 앞에서 사죄하는 일이다. 그것이야말로 무너진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첫걸음이다.

기업은 단순히 상품을 판매하는 조직이 아니다. 사회적 신뢰 위에 존재하는 공동체의 일원이다. 특히 역사적 비극과 민주주의의 희생 앞에서는 더욱 무거운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역사를 가볍게 소비한 기업에 대해 소비자들이 단호하게 반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번 '탱크데이' 논란은 신세계그룹에 뼈아픈 교훈을 남겼다. 역사를 잊은 마케팅은 결코 소비자의 선택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제 남은 것은 정용진 회장의 선택이다. 국민은 그의 말이 아니라, 광주를 향한 발걸음을 기다리고 있다.

ad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