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트폴리오 다변화가 퇴직연금 시장 관건머니무브 영향, 증권사 실적배당형 강세보험업계 DB형 쏠림, 성장 한계 지적
주식시장 활황에 힘입어 퇴직연금 적립액이 처음으로 500조 원을 넘어선 가운데 보험사의 퇴직연금은 되레 감소했다. 투자 수요가 확대되는 흐름 속에서 확정급여(DB)형에 치우친 구조가 이어질 경우 '100조 시대' 지속이 쉽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21일 금융감독원 통합연금포털에 따르면 지난 1분기 금융권의 퇴직연금 적립액은 508조7343억 원으로 전년 말 496조7952억 원 대비 2.4%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퇴직연금 적립액이 500조 원을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가운데 퇴직연금을 취급하는 보험사 16곳의 적립액은 102조9339억 원으로 전년 말 104조7415억 원 대비 1.7% 감소했다.
지난해 말 보험업권의 퇴직연금 적립액이 처음으로 100조 원을 넘어서며 은행·증권업권 중심 구도에서 변화가 생길 것이란 기대가 커졌지만, 1개 분기 만에 약 1조8000억 원이 감소한 것이다.
보험사 DB형 76% 쏠림···연말·연초 유동성 리스크 취약
이렇게 보험업권의 퇴직연금 적립액이 감소한 배경에는 증권사로 자금이 이동하는 머니무브의 영향이 크다.
실제 1분기 증권사 14곳의 퇴직연금 적립액은 141조6797억 원으로 전년 말 131조5026억 원 대비 7.7% 증가했다. 증시 활황으로 소비자들의 투자 관심이 커지면서 증권사가 실적배당형(원리금 비보장형) 상품 투자에 유리한 구조를 갖고 있는 점이 자금 유입을 이끈 것으로 풀이된다.
증권사의 경우 확정급여(DB)형뿐 아니라 확정기여(DC)형, 개인형퇴직연금(IRP) 등 포트폴리오가 다양하고 유형 간 자산 분배도 비교적 균형 잡혀 있다는 평가다. DB형은 기업이 운용 책임을 지고 안정성을 중시하는 구조라면 가입자가 직접 운용하는 DC·IRP형은 상품 선택 폭이 넓어 최근 증시 상황에서 수익률이 높은 곳으로 자금이 쏠리는 경향이 뚜렷하다.
실제 1분기 기준 증권사의 퇴직연금 적립액 가운데 각 유형의 비중은 DB형 31.4%, DC형 30.7%, IRP 37.9%다.
반면 보험사는 1분기 기준 DB형의 비중이 76.1% 수준으로 쏠려 있다. DC형은 17.7%, IRP형은 6.1%에 그친다. DB형에 비중이 치우치게 되면 연말·연초 퇴직금 지급이 늘어나는 시기에 한 번에 거액이 움직이기 때문에 자금 감소 현상이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지난 1분기에 보험업권의 퇴직연금 적립액이 감소한 핵심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기간 증권업과 보험업의 DB형 적립액은 각각 44조5222억 원, 78조3749억 원으로 전년 말 대비 4.7%, 2.5%씩 동반 감소했다. 하지만 실적배당형 상품 투자가 용이한 DC형과 IRP에서 자금을 대거 흡수한 증권업은 총액 기준 성장세를 이어간 반면, DB형 의존도가 높은 보험업은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DB형 수익률, 보험-증권 격차 미미···포트폴리오 다변화 과제
보험사의 DB형 수익률이 증권사와 비교해 큰 격차를 보이지 않는 점 또한 경쟁력 약화 요인으로 꼽힌다.
1분기 예금성 원리금 보장 DB형 기준 증권사 수익률 상위 3개사는 현대차증권(3.96%), 대신증권(3.52%), 삼성증권(3.49%) 순이다.
보험업권에서는 교보생명(3.92%), 한화생명(3.72%), IBK연금보험(3.70%) 등이 상위권을 기록했다. 이들 3곳은 대신증권과 삼성증권보다는 수익률이 높았지만 현대차증권보다는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교보생명을 제외할 경우 두 업권 간 수익률 격차는 최대 0.23%포인트에 그쳐 대체로 유사한 수준이라는 평가다.
이에 따라 보험업권이 머니무브에 대응하기 위해 포트폴리오 다변화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증시 활황으로 투자 선호 수요가 확대되면서 당분간 DC형과 IRP로의 자금 이동은 계속될 것으로 관측되는 가운데, 현재와 같은 DB형 편중 구조가 개선되지 않을 경우 퇴직연금 100조 시대를 지속하기 어렵다는 우려가 나온다.
일부 보험사는 DC형과 IRP 상품 출시와 조직 개편 등을 통해 포트폴리오 다변화에 나서고 있다. 지난 3월 미래에셋생명은 IRP 가입자를 위한 '보증형 실적배당보험'을 업계 최초로 출시했다. 삼성생명은 연초 조직 개편을 통해 DC형·IRP를 전담하는 영업 부서를 신설했다.
다만 상당수 보험사는 업권 특성상 안정성을 선호하는 수요가 유입되는 경향이 큰 만큼, 퇴직연금이 DB형에 쏠릴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설명한다. 이와 함께 최근 증시 환경을 고려할 때 DC형이나 IRP로의 포트폴리오 다변화 필요성을 체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지난해 증시 활황 이후 DB형에 있던 자금을 인출해 다른 유형으로 이동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며 "이 같은 추세가 이어질 경우 보험사의 퇴직연금 적립액이 가파른 성장보다는 100조 원 안팎에서 등락하는 흐름을 보일 것으로 관측된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보험업계 관계자는 "최근 1년 사이 증시가 호황을 보이기 전까지는 안정적인 운용 선호도가 높아 보험업권이 DB형에 치우친 경향이 있었다"며 "다만 최근의 흐름을 고려할 때 실적배당형 상품으로의 다변화를 위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설명했다.
뉴스웨이 이은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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