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무슨 일일까? 제품개발 단계에서 당장 수익을 내지 못하는 HBM 제작을 잠시 중단했다가 후발주자로 시작해 아직 준비가 부족하다는 주장이 있다. 그런데 문제가 수율에 있다면, 제품 설계 분야의 문제라고 보기에는 어렵다. 외려 공정 설계나 양산 단계에서 발생한 설비 문제라고 보는 게 타당해 보인다. 나노 단위 자릿수의 숫자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점차 미세공정의 난이도가 올라가고, 예전에는 조금 넉넉하게 잡을 수 있었던 오차 범위를 낮추는 것 자체가 도전적인 것이 사실이다. 높은 수준의 제품 설계만큼 제조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은 자명하다. 엔지니어들의 전공 관점에서 보자면 전자공학의 중요성만큼 기계공학의 영역으로 많은 문제가 진입했음을 뜻한다.
제조업체에서 특정한 전공의 엔지니어들이 많은 경우는 흔하다. 자동차 회사에는 기계공학 엔지니어가 많고, 석유화학 회사에는 화학공학과 화학과가, 조선소에는 조선공학과 기계공학 엔지니어가 많다. 이전까지 한국의 제조업체들이 공과대학의 모든 전공을 두루 뽑을 이유가 적었으나, 이제는 그래야만 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자동차 회사에서 배터리 자동차를 만들기 위해 전기화학 전공자를 뽑거나, SDV 플랫폼을 만들기 위해 전산학과 전공자를 뽑고 있다. 조선소에서는 해양 플랜트 프로세스와 배관 설계를 위해 화학공학 전공자를 뽑아야 한다.
사실 뽑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같은 현상을 달리 이해할 수밖에 없는 다양한 전공의 엔지니어들이 어떻게 협업을 잘할 수 있게 조직을 설계하고 공통의 언어를 구축하느냐가 핵심이라 볼 수 있다. 기존까지 '패권'을 쥐고 있던 전공의 관점 뿐 아니라, 새로이 필요가 늘어나 조직에 유입된 다른 전공 엔지니어들의 관점을 조직에 스며들게 하는 게 큰 쟁점이 된다. 이를 위해 현대자동차는 한편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한 신입사원들로 하여금 자동차 분해결합을 기계공학과 출신 선배와 시켰고, 다른 한 편 같은 현상에 대한 각 전공들의 서로 다른 언어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사전(dictionary) 제작을 하기도 했다. 조선소에서는 조선공학을 전공한 엔지니어들을 화학공학과 대학원에 진학시키기도 했다.
이런 작업은 때때로 실패하기도 하고 지지부진하기도 하지만, 결국 엔지니어 간 협업을 촉진시키는 것이 생각보다 훨씬 중요한 일임을 드러낸다. 늘 베일 속에 싸여 있는 삼성전자의 일하는 방식은 위기의 상황에서 더욱 외부의 불안을 키우는데, 이참에 허리띠를 바짝 졸라맨다는 선언 말고 새로운 삼성만의 엔지니어링 엑설런스를 구축할 방법을 천명하고 좀 더 합리적인 혁신을 이끌었으면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핵심에 다양한 전공의 엔지니어들이 어떻게 함께 좋은 '케미'를 만들지에 대한 고민이 담겼으면 좋겠다.
뉴스웨이 차재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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