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전태일과 평화시장, 그리고 87년 울산에서 시작된 '노동자 대투쟁' 이렇게 익숙한 풍경 속 주인공은 대체로 생산직 노동자였다. '귀족노조'라는 말 역시 즉 소득이 중산층 이상이 되어버린 생산직 노동자들을 향해 있었다.
그런데 최근의 노동조합 운동은 다양한 변화가 있었지만, 주인공이 생산직에서 사무직으로 바뀌었다는 점도 분명하다. 2018년 네이버를 필두로 SK하이닉스, 넥슨이 민주노총 산하 화섬(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산별노조에 참여했다. 2021년 현대자동차는 'MZ세대'가 주축이라는 사무직·연구직 노동조합이 설립된 적이 있다. IT 산업 종사자들이 민주노총에 가입한 것도 특기할 만하지만, 제조업체의 사무직·기술직·연구직에 해당하는 엔지니어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한 것도 특기할 만한 사항이다. 최근에는 삼성전자의 최대 노조인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이 2018년 출범한 첫 번째 노조인 삼성전자사무직노조를 합병하고, 총파업에 돌입했다. 삼성반도체 산재 문제를 지속해서 지적해 온 반올림과의 협약도 체결했다.
과거 노사관계 연구나 산업사회학 연구들은 연구직을 포함한 엔지니어나 사무직들을 '중간관리자' 계층으로 부르며, 사측과 노동자 사이의 '제3의 영역'을 대표하거나 사측의 특성을 많이 지닌다고 했었다. 경제학자 앨버트 허시만을 따르자면, 조직내 구성원들은 항의하는 목소리를 내거나(voice), 이탈하는(exit) 행위를 통해서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할 수 있다. 생산직들이 조직화해서 목소리를 내는 전략을 썼다면, 엔지니어들은 사무직들은 조직에서 해볼 수 있는 데까지 해보다가 안 되면 이직하는 전략을 썼기에 노동조합을 조직할 필요성이 작았다. 그리고 제조 대기업들은 항상 뽑을 수 있는 가용한 인재가 많았기 때문에, 이탈하는 엔지니어들에 크게 미련을 두지 않았다. 달리 말해 이탈을 전제로 엔지니어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했을 때 적극적으로 예방하는 조치를 구사할 여지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제조 대기업 엔지니어 노동시장 관점에서 보면 학령인구도 줄고 '좋은 인재풀'도 구직 경쟁 못지않게 구인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이다. 엔지니어들이 이직해서 비슷한 대우를 받아서 이동해 갈 곳이 생각만큼 많지 않을 수 있지만, 동시에 회사들도 엔지니어들이 조직화했을 때 예전만큼 강경하게 막기가 쉽지 않아진 셈이다. 최근의 사무직 노사관계 문제는 균형상태에서 '중간관리자' 계층인 엔지니어들을 포함한 노사교섭이 시험단계에 돌입한 상황이라 이해할 수 있다.
제조 대기업들 관점에서 자동화, 모듈화, 생산의 하도급화로 인해 생산직 노동자들에 대한 '아쉬움'이 줄어들었다면, 엔지니어에 대한 '아쉬움'은 점점 더 커지는 상황이고 노동조합 자체를 막기에는 예전보다 쉽지 않아 보인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노사 간에 '새로운 상생 협약'을 잘 맺고, 더 높은 생산성과 혁신을 임금·복리후생·민주적인 소통과 교환할 수밖에 없다.
얼마 전에 만났던 한 제조 대기업의 인사담당자는 노조가 가진 경영상의 이점이 적어도 하나는 있다고 한다. 노동조합원들은 비조합원보다 회사를 떠나려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심지어 엔지니어라도 그렇다고 한다. 막을 수 없다면, 공생의 길을 찾는 게 지금 단계에 필요한 일 아닌가 싶다. 그리고 시행착오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
뉴스웨이 차재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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