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수십조원 풀면 주주친화?···'환원 경쟁'이 만든 착시

오피니언 기자수첩

수십조원 풀면 주주친화?···'환원 경쟁'이 만든 착시

등록 2026.08.28 13:54

문혜진

  기자

고환원 종목, 저환원 종목보다 이듬해 수익률 3.7%p 낮아규모보다 기대 격차·소각 여부·현금흐름 지속성이 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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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내 증시에서 주주환원을 말할 때 따라붙는 숫자의 단위가 점점 커지고 있다. 삼성전자가 올해 90조~110조원 규모의 주주환원을 예고했고, SK하이닉스는 40조원어치 자사주를 사들여 전량 소각하기로 했다. 코스피 상장사의 자사주 매입 결정 금액도 올해 들어 지난 24일까지 77조원으로 불어났다. '대환원 시대'가 열린 셈이다.

숫자만 보면 환원액이 클수록 주주친화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최근 증시 흐름은 이런 단순한 셈법에 물음표를 던진다. 삼성전자는 약 30조원의 현금배당을 제외한 나머지 환원 규모와 방식이 확정되지 않은 가운데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21일 공시 후 첫 거래일인 24일 주가는 8.7% 급락했다. 반면 SK하이닉스는 40조원 규모 자사주 매입의 주식 수와 기간, 전량 소각 방침을 구체적으로 정했다. 19일 공시 직후인 20일 주가는 12.73% 상승했다.

과거 데이터를 봐도 '많이 환원하면 수익률이 높아진다'는 공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SK증권이 국내 대형 주주환원 이벤트 23건을 분석한 결과, 공시 다음 날 평균 초과수익률은 3.98%포인트였지만 약 5건 중 1건은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장기 성과도 달랐다. 2017~2025년 코스피200의 고환원 종목은 저환원 종목보다 이듬해 수익률이 연평균 3.7%포인트 낮았다. 자사주 매입 공시 다음 날 초과수익률도 주가순자산비율(PBR) 0.5배 미만 기업은 4.8%포인트로, 2배 이상 기업의 2.3%포인트를 웃돌았다.

대규모 환원이 곧바로 기업가치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은 사례도 있다. 크래프톤과 POSCO홀딩스는 과거 자사주 매입·소각을 진행했지만 각각 성장 동력이 뒷받침되지 않거나 업황이 부진한 가운데 주가 재평가로 이어지지 못했다. 시장 기대와 실제 결정 사이의 차이인 '기대 격차(Expectation Gap)', 실질적인 주식 수 감소, 잉여현금흐름(FCF)의 지속 가능성 등에 따라 환원 효과도 달라졌다.

그렇다고 주주환원 확대의 의미가 작아지는 것은 아니다. 2025년에는 국내 상장사의 자사주 소각액이 취득액을 처음 넘어섰고, 실제 발행주식수가 감소한 코스피200 기업도 2017년 4곳에서 2025년 36곳으로 늘었다. 이제는 기업이 주주환원을 하느냐보다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꾸준히 이어가느냐를 따져야 할 시점이다.

이익과 현금흐름이 엔진이라면 주주환원은 가속페달에 가깝다. '대환원 시대'에 필요한 것은 더 큰 숫자가 아니라 그 숫자를 계속 만들어낼 수 있는 기업의 체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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