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공급망 재건 사례로 고려아연 직접 언급11개 핵심광물·온산 통합제련 기술력 주목프로젝트 크루서블, 한미 경제안보 협력 모델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앞에서 '고려아연(Korea Zinc)'을 직접 언급했다. 미국의 핵심광물 공급망 재건 전략을 설명하면서다.
러트닉 장관은 "핵심광물은 단순한 경제 문제가 아니라 국가안보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미국에서 채굴하고, 가공하고, 정제하고, 제조하는 공급망을 구축하겠다는 구상도 밝혔다. 이 과정에서 미국 내 핵심광물 제련 투자 사례로 고려아연을 거론했다.
미국이 주목하는 것은 고려아연의 투자 규모만이 아니다. 미국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제련·정제 분야에서 고려아연이 수십 년간 쌓아온 기술과 운영 경험을 갖고 있다는 점이 핵심이다. 여기에 미국 내 기존 광산과 제련소, 인력까지 활용할 수 있어 공급망 재건 속도를 높일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의 제련 기술과 미국의 자원·산업 기반을 결합하는 프로젝트 크루서블(Project Crucible)이 한·미 경제안보 협력의 대표 사례로 떠오르는 이유다.
트럼프 앞에서 나온 'Korea Zinc'
미국 의회 전문 매체 롤콜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일(현지 시각) 워싱턴DC 국무부에서 광업계 관계자 200여 명과 원탁회의를 열고 핵심광물 공급망 강화 방안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러트닉 장관은 "첨단 제조업과 인공지능(AI), 반도체, 에너지, 국방 분야에서 주도권을 가지려면 산업의 기반이 되는 원료를 해외 적대국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 정부의 목표를 "미국에서 채굴하고, 미국에서 가공하고, 미국에서 정제하고, 미국에서 제조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광산 개발에 그치지 않고 원료에서 완제품까지 이어지는 공급망을 미국 안에 구축하겠다는 의미다.
러트닉 장관은 이 과정에서 고려아연의 74억달러 규모 미국 핵심광물 제련소 프로젝트를 미국의 주요 공급망 투자 사례로 직접 언급했다. 아이펄스(I-Pulse) 등 관련 투자 사례도 함께 소개했다.
동맹국과의 협력 필요성도 강조했다. 러트닉 장관은 "신뢰할 수 있는 공급을 확보하고 글로벌 파트너십을 강화하겠다"며 "전 세계 동맹국들과 협력 범위를 확대해 함께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밝혔다. 동맹국의 기술과 생산 역량을 미국의 자원·산업 기반과 결합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11개 핵심광물 한곳에서···美가 원하는 '멀티메탈'
미국이 고려아연에 주목하는 첫 번째 이유는 다양한 핵심광물을 하나의 통합공정에서 생산·회수할 수 있는 '멀티메탈' 경쟁력이다.
고려아연의 미국 통합제련소에서는 아연·연·동·은을 비롯해 안티모니·인듐·비스무트·텔루륨·팔라듐·갈륨·게르마늄 등 미국 정부가 지정한 60개 핵심광물 가운데 11종과 반도체급 황산을 생산할 계획이다.
갈륨·게르마늄·인듐·안티모니 등은 반도체와 방위산업, 통신·에너지 등에 쓰이는 전략 광물이다. 하나의 제련소에서 여러 핵심광물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미국 입장에서는 공급망 구축 효율을 높일 수 있다.
한국에도 의미가 있다. 반도체·배터리·자동차 등 첨단 제조업 중심으로 이뤄져 온 한·미 산업협력이 핵심광물과 제련·정제라는 공급망의 앞단까지 확대될 수 있기 때문이다.
美 자원에 韓 제련기술 결합···'속도'도 강점
고려아연의 또 다른 경쟁력은 미국이 필요로 하는 제련·정제 기술과 친환경 사업 모델이다.
미국은 상당한 광물자원을 보유하고 있지만 제련·정제 산업 기반은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광석을 확보하더라도 이를 반도체와 배터리, 방산 등에 사용할 수 있는 고순도 금속과 소재로 만드는 기술이 없으면 공급망을 완성하기 어렵다.
고려아연은 울산 온산제련소에서 수십 년간 아연·연·동 등을 생산하며 복잡한 저품위 원료를 처리하고, 제련 부산물에서 희소금속과 유가금속을 회수하는 통합공정 기술을 쌓아왔다.
한 종류의 금속을 생산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양한 원료에서 여러 금속을 회수하는 것이 강점이다. 폐기·적치될 수 있는 제련 부산물과 스크랩도 원료로 재활용한다. 자원 활용도를 높이는 동시에 폐기물을 다시 자원으로 돌리는 자원순환형 사업 모델이기도 하다.
미국의 자원·산업 기반과 정책 지원에 한국의 제련 기술을 결합할 수 있다는 점에서 프로젝트 크루서블은 단순한 한국 기업의 미국 진출을 넘어 상호보완적 공급망 협력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실행 가능성과 사업 속도도 강점으로 꼽힌다.
고려아연은 미국 내 기존 아연제련소와 관련 광산 등을 확보해 '크루서블 징크(Crucible Zinc)'를 출범시켰다. 신규 제련소는 부지 선정부터 인허가, 원료망 구축, 숙련 인력 확보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기존 산업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다.
현지 제련소 폰드장 5곳에 쌓인 약 62만t의 부산물에서 핵심광물을 회수하는 사업도 추진한다. 온산제련소에서 쌓은 자원순환 기술을 적용하면 신규 원료뿐 아니라 산업 부산물과 스크랩까지 활용할 수 있다.
기존 자산과 인력, 원료망에 검증된 제련 기술을 결합하는 만큼 처음부터 모든 기반을 구축해야 하는 신규 프로젝트보다 사업 위험을 낮추고 상업생산 시점을 앞당길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한·미 핵심광물 '경제안보 프로젝트'로
미국 정부의 적극적인 참여는 프로젝트 크루서블의 전략적 성격을 보여준다.
미 연방정부가 프로젝트의 주요 투자자로 참여한 데 이어 프로젝트 크루서블은 한국 기업이 주도하는 사업으로는 처음으로 미국의 대형 인프라 인허가 신속처리 제도인 'FAST-41' 대상으로 지정됐다.
미국이 이 사업을 단순한 해외 기업의 투자 프로젝트가 아니라 핵심광물 공급망 재건과 직결된 산업 인프라로 보고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한국에도 의미가 작지 않다. 고려아연의 제련·정제 기술이 미국 경제안보 전략에서 중요한 공급망 역량으로 평가받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기술과 운영 노하우에 미국의 자원과 산업 인프라, 정부의 정책·금융 지원을 결합하는 구조다.
미국이 모든 것을 독자적으로 만드는 '자국 완결형 공급망'이 아니라 신뢰할 수 있는 동맹국의 핵심 역량을 결합하는 '동맹형 공급망'의 사례로 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은 광물자원을 보유하고 있지만 실제 산업에 사용할 소재를 만드는 제련·정제 역량은 상대적으로 부족해 검증된 기술을 가진 동맹국 기업과의 협력이 중요하다"며 "프로젝트 크루서블은 한국의 제련 기술과 미국의 자원·시장·정책 역량을 결합한다는 점에서 단순한 현지 생산시설 투자를 넘어 한·미 경제안보 협력 프로젝트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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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웨이 이승용 기자
lsy2665@newsw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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