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멀리건 받아 이겨 놓곤 동네방네 소문

전문가 칼럼 정현권 정현권의 싱글벙글

멀리건 받아 이겨 놓곤 동네방네 소문

등록 2026.08.0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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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 전면에 달린 패드에 기재된 스마트 스코어 카드를 쳐다보니 4홀 전성적이 1타 높게 기록돼 있었다.

롱 홀에서 공이 패널티 구역과 벙커에 빠지고 우여곡절 끝에 보기를 했는데 더블 보기로 적은 것이다. 좋은 성적도 아니어서 그냥 지나치려 했지만, 그날 전반적으로 난조였기에 평소 성적을 거두려면 1타가 아쉬운 처지였다.

하필 동반자들도 어렵게 경기를 펼쳐서 캐디가 그 당시 어수선한 상황을 정확하게 복기하지 못해 끙끙댔다. 안쓰럽게 쳐다보는 동반자들의 모습이 부담스러워 그냥 넘어갔다.

사진=기고자 제공사진=기고자 제공

경기 흐름에 누를 끼칠까 살짝 걱정됐다. 스코어에 너무 연연한다는 인상을 심어주고 싶지도 않았다.

"내 스코어는 고쳤는데 잘못 표기된 동반자 스코어를 내가 정정하는 기능은 없었어. 전체로는 동타였는데 한 타 뒤진 것으로 남아 좀 아쉬워." 캐디가 잘못 적은 스마트 스코어를 귀가해서 앱으로 직접 수정한 지인의 경험담이다.

집에 와서까지 정확한 자기 스코어를 되찾으려는 집념에 놀랐다. 잘못된 시험 성적을 바로 잡으려는 학창 시절 모습이 떠올랐다.

앱 기능상 본인 스코어는 수정할 수 있는데 동반자 스코어는 건드릴 수 없다. 그는 17번 홀까지 지인이 동반자에게 한 타 뒤졌는데 최종 합계로는 2타 뒤졌다는 사실을 귀가해서 알았다.

캐디가 마지막 홀 스코어를 기록하면서 기록을 바꿔 적었기 때문이다. 캐디가 파를 잡은 지인은 보기로, 보기를 범한 동반자의 성적은 파로 오기했다.

원래라면 둘이 동타로 끝났다. 최후의 수단으로 동반자나 캐디에게 연락해 수정을 요청할 수 있었지만, 집요함을 드러내기 싫어 포기했다고 한다.

사진=기고자 제공사진=기고자 제공

고수나 하수를 막론하고 골프 스코어에 민감하다. 겉으론 스코어에 무관심한 골퍼도 캐디가 자기 타수를 높여서 잘못 적으면 즉각 정정을 요청한다.

몇 홀 지나 이를 발견해도 소급해서 정확한 기재를 요구한다. 거꾸로 캐디가 한 타 적게 적으면 눈감고 지나간다.

모든 동반자들과 함께 높여 적으면 토를 달지 않는다. 첫 홀과 마지막 홀에서 일파만파나 무파만파, 혹은 한 명이 버디를 잡으면 동반자 모두 파를 허용한다. 함께 묻어가면 사이가 좋다.

프로 대회에선 같은 조에 속한 동반 선수가 상대 선수 성적을 적는다. 가령 A, B, C 세 선수가 같은 조라면 B는 A, C는 B, A는 C 성적을 기록한다.

이때 상대방 스코어를 적는 선수를 마커(Marker)라고 한다. 3명이 한 조를 이루기에 한 조에 마커는 3명인 셈이다.

경기 직후 마커와 해당 선수가 스코어 카드에 둘 다 서명해서 대회위원회에 제출한다. 스코어 카드 제출 전에 오기를 확인하면 수정으로 구제받는다.

하지만 자기 타수보다 낮춰 기록된 줄 모르고 사인해서 제출되면 실격이다. 높은 타수로 잘못 기록됐다면 그대로 인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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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코오롱 한국오픈에서 김민규는 3라운드를 마치고 스코어 카드 기록 과정에서 오류로 실격 처리됐다. 자신의 경기 내용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제출된 스코어 카드와 공식 기록이 일치하지 않았다.

김민규 선수의 마커(동반 경기자)가 기록한 홀별 스코어를 김민규 본인이 오류를 모른 채 최종 확인하고 사인했다. 16번 홀(파3)의 실제 성적은 보기(4타)였지만, 스코어카드에는 파(3타)로 적혀 있었다.

김 선수가 이를 발견하지 못하고 서명한 것이다. 눈길을 끈 부분은 그도 최종 합계가 74타(3오버파)라는 것은 정확히 알았다는 점이다.

그러나 홀별 스코어에서 16번 홀 성적이 보기 아닌 파로 잘못 적혀 있었다. 선수 본인뿐만 아니라 경기 위원과 스코어 접수 담당자도 제출 당시 이 오류를 발견하지 못했다.

나중에 대회 측이 홀 별 스코어를 재확인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드러나 골프 규칙에 따라 실격됐다. 김민규도 "스코어 카드를 제대로 읽지 않고 사인한 내 실수"라고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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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규칙에서는 마커가 기록한 점수를 최종적으로 확인하고 서명할 책임은 선수 본인에게 있다. 이에 따라 마커가 잘못 적었더라도 선수가 확인하고 서명해 제출하면 그 책임은 선수에게 있다.

1968년 마스터스에서는 더한 일이 일어났다. 당시 강력한 우승 후보 로베르토 빈센초는 마커였던 같은 조 선수가 기록한 스코어 카드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서명해 경쟁에서 탈락했다.

실제 65타를 쳤는데 스코어 카드에 적힌 66타가 그대로 인정돼 플레이오프(연장전) 진출에 실패했다. 그는 자기 책임을 인정하고 "What a stupid I am!(이런 얼간이)"이라며 한탄했다.

머리도 올려주면서(골프 입문) 데리고 다니던 사람이 조금씩 실력을 더하더니, 어느 날 멀리건과 컨시드를 몇 개 받고는 나를 이겼다. 모든 동반자가 보는 데서 요란하게 스코어 카드 사진을 찍어댔다.

그 정도야 그럴 수 있는데 막 동네방네 자랑하면 대략 난감하다. 급기야 동창들에게까지 알려져 전화가 걸려오면 해명도 못하고 머리 아프다.

정현권 대한변리사회 미디어 전문위원 겸 지식재산뉴스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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