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6월 8일 ESG기준원 주관 공청회에서 공개된 스튜어드십 코드 개정안은 제정 이후 10년 만에 처음으로 이뤄지는 전면 손질이라는 점에서 환영할 만하다. 적용 자산 범위를 기존 국내 상장주식 중심에서 채권, 부동산, 인프라, 비상장주식 등으로 넓히고, 수탁자 책임 활동의 범위도 의결권 행사에만 머물지 않고 주주제안, 협력적 관여활동, 그 결과를 반영한 투자 의사결정까지 포괄하려는 방향성에도 동의한다. ESG 등 지속가능성 요소를 명시하고, 이행점검과 보고 체계를 도입하겠다는 취지 역시 늦었지만 필요한 내용이다.
그러나 환영과 동의는 여기까지다. 제도는 방향성이 아니라 실제 어떻게 작동하느냐로 평가받기 때문이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기관투자자가 고객 자산의 수탁자로서 기업의 장기 가치와 수익자 이익을 위해 행동하라는 원칙이다. 문제는 그 원칙이 그동안 너무 손쉽게 '가입 여부'로 대체되었다는 데 있다. 참여기관 수는 꾸준히 늘었지만, 그들이 무엇을 했는지, 왜 그렇게 했는지, 기업가치 제고와 지배구조 개선에 있어서 어떤 성과를 냈는지는 여전히 불분명했다. 선언은 넘쳤지만 설명은 빈약했고, 보고는 있었지만 그에 대한 평가와 비교는 사실상 없었다. 그 결과 스튜어드십 코드는 시장을 바꾸는 규범이라기보다, 해당 기관들의 홍보 수단으로 소비된 측면이 적지 않았다.
따라서 이번 개정안의 핵심은 적용 범위 확대가 아니라 '이행점검의 실효성'에 있어야 한다. 개정안은 스튜어드십 코드 발전위원회가 참여기관의 이행 수준을 점검하고, 한국ESG기준원이 실무를 지원하며, 참여기관 보고서를 스튜어드십 코드 홈페이지 등에 모아 공개하겠다고 한다. 그 방향은 대체로 맞다. 하지만 어떤 기준으로 충실한 이행과 형식적 이행을 구분할 것인지, 미이행 사유가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지, 반복적으로 부실한 기관에 어떤 후속 조치를 취할 것인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자율규범은 말 그대로 자율에 맡기지만, 그럴수록 더욱 투명해야 시장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준수 또는 설명' 원칙이 '미준수의 변명'이 되어서도 안 된다.
평가기준의 설계 또한 훨씬 더 정교해야 한다. 자산소유자, 자산운용사, 의결권 자문기관, ESG 평가기관, 관여활동 서비스 제공기관은 역할과 책임이 다르다. 따라서 이들에게 동일한 체크리스트를 일괄 적용하는 방식으로는 비교 가능성과 책임성을 함께 확보하기 어렵다. 정책의 존재 여부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해당 정책이 실제 관여활동, 의결권 행사, 투자 판단, 위탁운용사 관리 등에 어떻게 연결되었는지다. 영국 스튜어드십 코드는 정책과 맥락에 관한 공시, 활동과 성과에 관한 보고를 구분하고, 자산소유자·자산운용사·서비스 제공자에 대해 서로 다른 구조를 두고 있다. 자율규범의 실효성 제고에 참고할 부분이 있다면 적극 벤치마크해야 한다.
특히 이행점검 결과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가 한층 더 분명해야 한다. 점검 결과가 내부 참고자료나 연례 통계 작성에만 머문다면 기관투자자의 행동은 결코 바뀌지 않는다. 시장 전반의 이행 수준, 주요 미흡 사항, 기관 유형별 공통의 약점, 개선 권고사항 등은 정기적으로 공개되어야 한다. 더 나아가 장기간 형식적 보고에 머물거나 핵심 원칙 이행이 현저히 부실한 기관에 대해서는 보완 요구, 재점검, 필요하면 참여기관 지위의 박탈 등 단계적인 페널티 장치가 마련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코드 참여 여부가 단순한 명패에 머물지 않고, 수탁자 책임을 얼마나 진정성 있게 수행하는지를 보여주는 신호이자 최소한의 검증장치가 될 수 있다.
점검 체계의 독립성도 피해 갈 수 없는 쟁점이다. 개정안은 한국ESG기준원 내 지원 조직을 의결권 자문 등 다른 부서와 분리하고, 인적·정보 교류를 차단하는 '차이니즈 월'을 두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국ESG기준원이 ESG 평가, 의결권 자문, 책임투자 지원 서비스를 함께 수행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내부통제 장치만으로 시장의 의구심이 해소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순진한 탁상공론이다. 이행점검은 참여기관의 평판과 시장 신뢰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절차다. 그렇다면 실제 독립성뿐 아니라 외형상 독립성까지 동시에 납득될 수 있어야 한다. 제도의 신뢰성이 생명인 만큼, '우리는 공정하다'는 자기 진술만으로는 부족하다. 객관적으로 공정한 구조, 적어도 시장이 공정하다고 인정할 수 있는 구조가 요구된다.
결국 이번 개정의 성패는 문구나 도입 여부가 아니라 그 집행 수준에 달려 있다. 지금 한국 자본시장에 필요한 것은 스튜어드십 코드 참여기관 수의 확대가 아니다. 고객의 돈을 맡은 기관투자자가 진정으로 고객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고 있는지, 기업의 장기 가치와 시장의 건전성을 위해 어떤 목소리를 내고 어떤 선택을 하고 있는지, 그 '책임의 밀도'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선언의 시대는 이제 끝내야 한다. 참여 여부가 아니라 이행 수준으로, 구호가 아니라 결과로 평가받는 구조로 전환되지 않는다면 이번 개정 역시 또 하나의 그럴듯한 문서작업에 그치고 말 것이다.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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