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트렌드·K컬처 효과 '톡톡'생태계 변화 주인공 'ODM'브랜드·유통·기술로 경쟁축 이동
K뷰티가 글로벌 시장에서 사상 최대 호황을 이어가면서 화장품 사업이 국내 기업들의 대표 신사업으로 부상하고 있다. 패션·제약·유통 대기업은 물론 본업과 화장품의 연관성이 크지 않은 기업들까지 뷰티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과거 막대한 투자와 생산시설이 필요했던 화장품 산업이 제조자개발생산(ODM) 산업의 발전으로 진입 장벽이 크게 낮아진 영향이다.
그러나 산업 성장의 과실이 모든 기업에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제품 개발과 생산은 쉬워졌지만 브랜드를 알리고 글로벌 유통망에 안착시키는 일은 오히려 더 어려워졌다. K뷰티 열풍 속에서도 기업별 성과 격차가 확대되면서 시장은 본격적인 '옥석 가리기'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수출 사상 최대···K뷰티 전성시대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화장품 수출액은 114억달러로 전년 대비 12.3% 증가하며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2022년 80억달러 수준과 비교하면 3년 만에 40% 이상 성장한 규모다.
수출 지역도 빠르게 다변화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수요가 확대되는 가운데 중동과 유럽에서도 한국 화장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미국에서는 한국산 화장품이 프랑스산을 제치고 수입 화장품 시장 점유율 1위에 오르며 존재감을 키웠다.
글로벌 유통망에서의 입지도 확대되고 있다. 티르티르, 달바, 토리든, 조선미녀 등 인디 브랜드들은 세포라, 울타뷰티, 타깃, 코스트코 등 주요 유통 채널에 입점하며 해외 판매망을 넓히고 있다. 국내 최대 H&B스토어인 올리브영 역시 미국 시장 진출에 나서며 K뷰티 해외 확산의 교두보 역할을 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K뷰티 성장의 배경으로 K컬처의 글로벌 확산을 꼽는다. K팝과 K드라마를 통해 형성된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화장품 소비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실제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 사이에서 올리브영은 필수 방문 코스로 자리 잡았다.
ODM이 키운 시장···진입도 폐업도 함께 늘었다
K뷰티 시장 확대의 배경에는 국내 ODM 산업의 발전이 자리하고 있다.
과거 화장품 사업은 연구개발과 생산설비, 브랜드 육성에 상당한 자본과 시간이 필요한 산업으로 인식됐다. 하지만 현재는 코스맥스와 한국콜마, 코스메카코리아, 씨앤씨인터내셔널 등 전문 제조기업들이 제품 개발과 생산을 담당하면서 브랜드사는 기획과 마케팅에 집중할 수 있는 구조가 정착됐다.
이 같은 변화는 기업들의 화장품 시장 진출을 크게 늘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식약처에 따르면 화장품 책임판매업체 수는 2019년 1만5707개에서 지난해 2만7932개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화장품 제조업체는 2911개에서 4439개로 늘었다.
패션업계가 대표적인 사례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은 비디비치와 연작, 뽀아레를 육성하며 뷰티 사업을 확대했고 LF는 아떼, 한섬은 오에라를 선보였다. 현대백화점그룹은 SK바이오랜드를 인수하며 화장품 원료 사업까지 확보했다. 의류보다 반복 구매 주기가 짧고 브랜드 확장성이 높은 화장품 사업이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주목받은 결과다.
제약업계 역시 더마코스메틱 시장을 중심으로 사업 다각화에 나서고 있다. 동국제약은 센텔리안24, 대웅제약은 이지듀를 앞세워 성과를 내고 있다. 피부과학 기반 연구개발 역량이 소비자 신뢰 확보로 이어졌다는 평가다.
화장품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크지 않은 기업들도 시장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문구업체 모나미는 펜 타입 색조 화장품을 앞세워 모나미코스메틱을 설립하며 사업 영역 확장에 나섰다.
너도나도 화장품 진출···생각보다 높은 벽
진입 장벽이 낮아진 만큼 경쟁 강도도 높아지고 있다.
시장 반응이 좋은 성분이나 카테고리가 등장하면 유사 제품이 단기간에 쏟아져 나오는 구조가 형성되면서 제품 자체만으로 차별화를 유지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소비자 선택지는 넓어졌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마케팅과 광고, 유통 비용 부담이 커지고 있다는 의미다.
실제 시장에서 퇴장하는 기업도 빠르게 늘고 있다. 화장품 책임판매업체 폐업 건수는 2019년 707건에서 지난해 8831건으로 급증했다. 신규 브랜드가 쏟아지는 만큼 경쟁에서 밀려 시장을 떠나는 기업도 늘고 있는 셈이다.
사업 다각화가 기대만큼 성과를 내지 못한 사례도 적지 않다. 비보존제약은 인수했던 화장품 제조업체 스피어테크를 청산했고, 대원제약이 인수한 에스디생명공학 역시 정상화 작업이 진행 중이다. 한때 중국 마스크팩 시장 호황의 수혜를 누렸던 에스디생명공학은 이후 실적 부진이 이어지며 부담 요인으로 남았다.
반면 성공 사례도 뚜렷하다. 삼정KPMG에 따르면 개별 재무제표 기준 매출 1000억원 이상 화장품 기업은 2023년 29개에서 2024년 36개로 증가했고 지난해에는 42개 이상으로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시장 성장의 수혜가 특정 기업에 집중되고 있다는 의미다.
승자는 결국 제품력·유통망·브랜드
최근 고성장을 이어가는 기업들은 공통적으로 제품력, 브랜드, 유통 전략을 동시에 확보하고 있다는 특징을 보인다.
에이피알은 메디큐브와 에이지알을 중심으로 화장품과 뷰티 디바이스를 결합한 사업 모델을 구축했다. 단순히 화장품을 판매하는 데 그치지 않고 디바이스와 연계한 사용 경험을 제공하면서 소비자 충성도를 높였다.
달바글로벌은 미스트와 선케어를 중심으로 브랜드 정체성을 구축했고 해외 매출 비중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조선미녀를 운영하는 구다이글로벌 역시 브랜드 운영 역량과 글로벌 유통 전략을 결합하며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더파운더즈의 아누아, 브이티, 클리오, 티르티르 등도 미국과 일본 시장을 중심으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이들 기업의 공통점은 대표 상품을 확보한 뒤 이를 기반으로 글로벌 유통망을 확장했다는 점이다. 단순히 제품을 출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브랜드 자산을 축적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반면 상당수 인디 브랜드는 특정 히트 상품에 의존하는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진정·미백·선케어 등 특정 카테고리에서 성공 제품이 등장하면 유사 제품이 빠르게 출시되며, 소비자는 다른 브랜드로 이동하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K뷰티에 대한 선호도는 높아졌지만 개별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는 아직 제한적이라고 평가한다. 글로벌 소비자들이 K뷰티를 하나의 카테고리로 인식하는 경우는 늘고 있지만 샤넬, 로레알, 에스티로더처럼 장기간 축적된 브랜드 자산을 구축한 사례는 많지 않다는 것이다.
제조 경쟁 넘어 브랜드·기술 경쟁 시대로
최근에는 기술 경쟁도 본격화되고 있다. 삼일PwC경영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뷰티 디바이스 시장 규모는 2013년 800억원에서 2022년 1조6000억원 규모로 성장했다. 단순 화장품 판매를 넘어 디바이스와 데이터, 서비스가 결합된 새로운 경쟁 구도가 형성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업계는 K뷰티 경쟁의 무대가 제조에서 브랜드와 유통, 기술로 이동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과거처럼 ODM 제품에 브랜드만 부착하는 방식으로는 차별화가 쉽지 않다는 의미다.
미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K뷰티 수요는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다만 산업 전체의 성장성이 개별 기업의 성공을 보장하는 시대는 점차 끝나가고 있다. 제품을 만드는 능력보다 브랜드를 유지하며 소비자와 장기적인 관계를 구축하는 능력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진단이다.
뉴스웨이 양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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