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수술대 오르는 '잔인한 금융'···건전성·포용금융 충돌 빠진 은행권

금융 금융일반 In Depth

수술대 오르는 '잔인한 금융'···건전성·포용금융 충돌 빠진 은행권

등록 2026.05.14 11:02

김다정

,  

문성주

  기자

"준공공기관 역할론" 칼 뽑아든 정부···'담보·고신용' 관행에 작심 비판가계대출 제 속 포용금융 확대 '이중고'···금리 인상기에 '진퇴양난''상생 성적표'에 비상 걸린 금융권···비금융 데이터·AI 심사로 '돌파구

그래픽=이찬희 기자그래픽=이찬희 기자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의 한마디가 금융가를 뒤흔들고 있다. "금융기관은 준공공기관"이라는 발언 이후 금융권은 거대한 변화의 소용돌이에 직면했다.

이른바 '잔인한 금융'이라 불리는 기존의 보수적 여신 관행이 강력한 개선 요구 속에서 수술대에 오른 것이다. 정부는 단순한 중금리대출 확대를 넘어 신용평가 시스템(CSS) 자체를 완전히 재설계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달 출범할 '포용금융추진단(가칭)'은 그 신호탄이다. 금융위원회는 이재명 대통령이 강조한 금융의 '공적 역할'을 본격적으로 공론화하고, 중저신용자와 취약계층에 대한 금융 공급망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데 화력을 집중할 전망이다.

금융위는 ▲대안 신용평가 확대 ▲가산금리 체계 점검 ▲중저신용자 대출 실적 반영 등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통신요금 납부 내역과 배달앱 매출, 공공요금 기록 같은 비금융 데이터를 신용평가에 반영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이는 금융권을 향해 단순한 포용금융 권고를 넘어 '준공공기관 역할론'의 실질적인 압박 수위를 높이는 분위기다. 특히 "포용금융을 얼마나 실현했는지 평가해서 이익이나 불이익을 주거나, 제도적으로 강제할 방법은 없냐"는 이 대통령의 발언은 금융사의 성적표에 '상생'의 비중을 대폭 늘리겠다는 경고장으로 해석된다.

총량 규제에 가로막힌 '상생 금융'


정부가 비판하는 방향은 명확하다. 1·2금융권에서 고신용자 대출을 위주로 취급하는 사이, 정작 자금이 절실한 서민들은 높은 금리를 감수하고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대부업·사채업의 문을 두드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가계대출 총량 규제와 금융권의 건전성 관리 강화가 맞물리면서 최근 중·저신용자를 위한 중금리대출 공급이 빠르게 위축되고 있다. 시중은행에 이어 저축은행까지 대출 문턱을 높이면서 중저신용자의 자금조달 통로가 좁아졌기 때문이다.

금융위에 따르면 지난해 은행·저축은행·상호금융·여신전문금융업권의 중금리대출 공급 규모는 27조8100억원으로, 전년(30조9100억원) 대비 3조1000억원 감소했다.

은행권의 공급 규모가 총 8조6900억원으로 전년 대비 12.7%(1조2600억원) 축소된 데 이어 저축은행(-10.1%)·상호금융(-34.3%)·여신전문금융업권(-4.9%) 등 전 업권에서 중금리대출 규모가 줄어들었다.

이는 지난해부터 시작된 가계대출 총량 규제 강화로 전체 대출 성장세가 둔화한 영향이다. 민간 중금리대출 공급 규모는 제도 도입 초기인 지난 2016년 900억원 수준에서 2024년 9조9500억원까지 꾸준히 증가하다가 지난해 감소세로 돌아섰다.

올해 1분기에도 5대 은행의 중금리대출 신규 취급액은 7960억원으로, 1년 전(1조1228억원)과 비교해 29.1% 축소했다. 같은 기간 저축은행의 취급액도 전년(2조7467억원)보다 37.3% 감소한 1조7235억원에 그쳤다.

그래픽=이찬희 기자그래픽=이찬희 기자

통상 연초에는 연간 가계대출 총량 한도에 여유가 있어 대출 공급을 늘리는 경향이 있지만, 올해는 더욱 강력해진 가계대출 규제 기조 속에서 1분기까지 감소세가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올해 금융당국이 주문한 가계부채 총량관리 목표는 전년 증가율(1.7%)보다 강화된 1.5%다. 은행 입장에서는 민간 중금리대출 역시 일반 가계신용대출로 분류돼 총량 규제에 포함되기 때문에 확대할 유인이 크게 없는 것이 사실이다.

'체리피킹' 직격탄 맞은 인뱅···무너진 설립 초심


그동안 시중은행들은 금리 변동기나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질 때마다 부동산 등 확실한 담보를 잡거나 신용점수가 최상위권인 고객에게만 대출을 내어주는 보수적인 영업을 펼쳐왔다.

금융권 관계자는 "담보와 고신용자 위주의 영업은 리스크 관리의 생존 전략이었다"며 "충분한 안전장치 없는 포용금융 확대는 추후 금융 시스템 전체의 부실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이자 장사치에 이어 금융 계급제의 주범으로 금융권을 바라보는 정부의 시각은 매섭다. 담보와 소득 중심의 구태의연한 신용평가가 서민들의 금융 접근성을 차단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체리피킹(유리한 것만 골라내는 행위)'이라는 저격을 받은 인터넷은행을 향한 칼날은 더욱 날카롭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체리피킹은 인뱅의 사명이 아니다"라며 "그들이 가진 데이터로 어떤 결과를 만들어냈는지 명확히 증명해야 한다"고 비판의 수위를 높였다.

카카오뱅크·케이뱅크·토스뱅크 등 인터넷은행 3사는 모두 '중저신용대 대출 비중 30%'라는 목표치는 충족한 상태다. 카카오뱅크의 출범 초기인 2020~2021년 10%대에 불과하던 중·저신용 대출 신규 취급 비중은 올해 1분기 45.6%로 목표를 상회했다.

케이뱅크도 1분기 기준 평균 잔액 비중(31.9%)과 신규 취급 비중(33.5%) 모두 기준선을 웃돌았다. 아직 1분기 실적발표 전인 토스뱅크의 중저신용자 대출 비중도 지난해 말 34.9%를 기록했다.

그래픽=박혜수 기자그래픽=박혜수 기자

하지만 목표치를 채운 인터넷은행이 설립 취지인 중·저신용자 포용은 충분히 구현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건전성 관리 차원에서 신용도가 높은 차주나 주택담보대출 위주의 영업이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이 크다.

실제로 카카오뱅크의 지난 3월 가계대출 차주 평균 신용점수는 943점으로 집계됐다. 토스뱅크와 케이뱅크 역시 각각 935점, 915점을 기록하며 가계대출 차주의 평균 신용점수가 900점을 웃돌았다. 4대 은행 평균(940.5점)과 비슷한 수준으로 시중은행과의 경계가 흐릿해진 모양새다.

금리 인상기에 '건전성 뇌관' 되나

은행들은 정부의 이중 압박 속에서 전체 가계대출 규모를 줄이는 동시에 리스크가 큰 중저신용자 비중은 늘려야 하는 모순적 상황에 놓이게 됐다. 연체율 상승 가능성은 커지고, 이는 곧 건전성 관리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고조되는 이유다.

실제로 중저신용자의 대출연체 증가세는 더 가파르다. 2021년 말 1.43%에 불과했던 연체율은 지난해 2.47%로 상승하다 올해 3월 말 2.57%로 치솟았다.

여기에 하반기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이 커지면서 시장금리가 상승 추세에 있다는 점은 큰 압박으로 다가온다. 금리가 오르면 취약계층의 상환 능력은 급격히 저하되며, 이는 고스란히 은행의 자산 건전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시장에서는 "이제 금리 인하를 멈추고 인상하는 것에 관한 고민을 해야 할 때"라는 유상대 한은 부총재의 발언에 따라 한은이 통화정책의 무게 중심을 다시 '긴축' 쪽으로 전환할 것이라는 전망이 커지고 있다.

예상보다 양호한 경제 성장세와 거세진 물가 상승 압력이 금리 인상의 근거로 작용하고 있다. 반도체 사이클 호황에 힘입어 수출 중심의 성장세가 이어지며 올해 경제성장률은 당초 한은의 예상치인 2.0%에서 크게 낮아지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반면, 지정학적 리스크에 따른 국제 유가 급등 등으로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기존 전망치인 2.2%를 상회할 상방 압력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처럼 중앙은행의 매파적(통화긴축 선호) 기류 변화로 조달금리가 오름세를 보이면서 은행권의 여신 건전성 관리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일각에서는 중금리대출 확대에 따른 배임 가능성까지 제기되는 상황이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중금리대출 확대로 인한 건전성 우려는 당연하다"며 "수익성과 직결되기 때문에 주주 동의를 받을 필요가 있다. 회장이 마음대로 확대할 경우 배임 우려도 있다"고 언급했다.

'데이터 칸막이' 허무는 AI···보수적 여신 관행 끝나나

한편 중금리대출 확대와 건전성 유지라는 숙제를 동시에 떠안게 된 금융권의 고민도 점점 더 깊어지고 있다. 더욱이 금융당국의 포용금융추진단 출범이 가시화된 만큼 앞으로 민간중금리 대출 확대 압박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이에 금융권 내부에서는 전통적 영업 방식에서 벗어나 '리스크 관리 역량'을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은행권은 인공지능(AI) 기술을 신용평가 모델에 적극 활용하며 돌파구 마련에 적극 나서는 모습이다.

주요 시중은행들은 최근 금융지주 내 계열사들이 보유한 방대한 '비금융 정보'를 활용해 여신 심사의 문턱을 낮추는 근본적인 체질 개선에 돌입했다. 과거 은행, 카드, 보험 등 각 계열사 내부에 갇혀 있던 데이터 칸막이(Silo)를 허물고 그룹 차원의 융합 데이터를 통해 차주의 상황을 입체적으로 평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금융거래 이력이 부족해 전통적인 신용평가에서는 저신용자로 분류되던 사회초년생, 주부, 소상공인 등 이른바 '씬파일(Thin Filer·금융이력부족자)'이 주요 타겟이다.

기존 심사 방식에서는 이들의 대출을 거절하거나 고금리를 적용할 수밖에 없었으나 이제는 카드 결제 패턴, 통신비 납부 내역, 보험료 성실 납부 이력, 심지어 가맹점 매출 데이터 등 다양한 비금융 대안정보를 결합해 숨은 우량 고객을 찾아내고 있다.

이를 통해 은행은 씬파일러를 포용하면서도 부실률(NPL)은 낮추고 대출 승인율은 높이는 고도화된 타겟팅 전략을 구사할 수 있게 됐다. 입체적 상황 능력 평가는 차주의 리스크를 더 세밀하게 분할해 금리 상승기에도 건전성을 훼손하지 않고 우량 자산을 늘리는 핵심 경쟁력으로 자리 잡고 있다.

김상봉 교수는 "대안신용평가시스템은 사각지대에 있던 저신용자들이 시장 내로 들어오는 동시에 금융사들의 연체율과 부실채권을 감소시키는 등의 양쪽 모두에 여러 가지 효과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래픽=이찬희 기자그래픽=이찬희 기자

실제로 주요 시중은행들은 비금융 데이터 결합과 인공지능(AI) 기술을 접목한 독자적인 신용평가 모델을 내놓으며 속속 성과를 보이고 있다.

신한은행은 신한금융그룹 차원의 통합 데이터 플랫폼을 기반으로 대안 신용평가 모형을 지속적으로 고도화해 왔다. 특히 신한카드가 보유한 가맹점 매출 데이터는 물론, 자사 배달 플랫폼인 '땡겨요'에 축적된 사업자 데이터 등 생활 밀착형 대안정보를 결합한 특화 모형을 통해 소상공인 대출 심사의 정확도를 대폭 끌어올렸다. 또 머신러닝 알고리즘을 적용한 AI 심사 시스템을 도입해 차주의 잠재적 연체 가능성을 사전에 예측하고, 기존에 대출이 거절되었던 씬파일러 중 상환 능력이 충분한 고객을 재평가해 금리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KB국민은행 역시 KB금융그룹 내 데이터 허브를 구축하고, KB국민카드의 결제 정보뿐만 아니라 이동통신사, 이커머스 플랫폼과의 제휴를 통한 비금융 데이터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특히 자체 개발한 기업 여신 자동심사 지원시스템 '빅스(Bics)'는 재무제표 위주의 과거 심사 관행에서 벗어나 기업의 비재무적 요소와 업황 데이터, 상권 분석 정보까지 실시간으로 반영한다. 개인 고객 대상으로는 통신비와 공과금 납부 이력 등을 분석하는 대안신용평가모형을 적용해 중저신용자 대상 여신 취급액을 안정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하나은행은 AI가 대출 심사부터 한도 산출까지 지원하는 자동화 시스템을 구축해 심사 속도와 정확성을 높였으며, 하나카드 및 외부 핀테크 기업의 동의된 데이터를 결합해 맞춤형 금리를 산출한다. 우리은행은 비금융 대안정보를 활용한 '개인사업자 특화 CSS'를 도입해 소득 증빙이 어려운 영세 소상공인들에게도 합리적인 한도와 금리를 제공하며 포용금융과 리스크 관리의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이러한 흐름이 단순한 시스템 개선을 넘어 수십 년간 이어져 온 국내 은행권의 보수적인 여신 문화에 거센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과거 은행 창구에서 서류 다발과 담보 가치에만 의존하던 여신 심사역의 역할이 이제는 고도화된 AI 알고리즘과 데이터 분석 결과를 종합적으로 해석하는 영역으로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리가 오르는 시기에는 무조건 대출 문턱을 높이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누가 진짜 상환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 정교하게 옥석을 가려내는 것이 진정한 리스크 관리"라며 "내부 데이터 융합과 AI 기술의 발전 덕분에 과거에는 보이지 않았던 차주의 신용도가 가시화되면서 여신 영업의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불법사금융 피해에 노출된 경우 금융감독원(1332)에 신고하여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며, 과다채무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경우에 서민금융진흥원(1397) 또는 신용회복위원회(1600-5500)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 연이율 60% 초과 대부계약은 원금과 이자 모두 무효입니다.
ad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