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좋은 증자와 나쁜 증자: 한화솔루션 사태가 남긴 교훈

전문가 칼럼 류영재 류영재의 지속가능 경제

좋은 증자와 나쁜 증자: 한화솔루션 사태가 남긴 교훈

등록 2026.04.22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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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증자는 본질적으로 선도 악도 아니다. 기업이 손실을 흡수하고, 성장 투자 기회를 지속하며, 훼손된 자본구조를 정상화하기 위한 재무수단이다. 그럼에도 한국 시장에서는 "유상증자는 곧 악재"라는 투자자의 즉각적 반응과 "회사가 자금이 필요하니 주주는 따라오라"는 기업의 일방통행이 대립적으로 공존한다. 그러나 둘 다 프레임에 갇힌 사고다. 핵심 쟁점은 자본조달이라는 행위 자체가 아니라, 그 필요성과 구조를 시장에 얼마나 설득력 있게 제시할 수 있느냐에 있다.

최근 한화솔루션 유상증자 논란은 이 쟁점을 집약적으로 드러낸 전형적 사례다. 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한 배경에는 단순히 '유상증자'라는 형식 자체보다, 대규모 주식 희석 가능성, 조달 자금의 상당 부분을 차입금 상환에 투입하는 구조, 그리고 이를 뒷받침할 설득력 있는 내러티브의 부재가 한꺼번에 드러났다는 점이 자리했다. 회사는 당초 약 2조4천억 원 규모의 자본 조달을 목표로 보통주 7,200만 주 신주 발행 계획을 공시했고, 발표 직후 주가는 즉각적으로 급락했다. 공시에 따르면 조달 자금 중 약 1조5천억 원은 채무 상환에, 약 9천억 원은 설비투자에 투입할 계획이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이를 성장 투자 재원 확보라기보다 재무적 스트레스를 완화하기 위한 긴급한 재자본화로 인식할 유인이 컸고, "장기 성장 가치 제고를 위한 증자"라는 설명 역시 충분한 설득력을 얻지 못했다.

이후 전개는 더욱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금융감독원은 증권신고서에 대해 중요사항 기재가 불분명하거나 미흡하다고 보고 정정신고서 제출을 요구했다. 소수주주와 기관투자자의 반발도 거세졌다. 결국 회사는 이사회를 다시 열어 유상증자 규모를 약 2조4천억 원에서 1조8천억 원으로 줄이고, 채무상환 자금도 당초 1조5천억 원에서 약 9천억 원 수준으로 낮추는 수정안을 내놓았다. 아울러 2030년까지 추가 유상증자는 없다고 밝히고, 향후 순이익의 10%를 배당 또는 자사주 매입·소각 등 주주환원 재원으로 활용하겠다는 방침도 제시했다. 하지만 이런 사후 조정과 약속이 초기 설계의 미흡함을 온전히 치유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왜 처음부터 이렇게 설계하지 않았는가"라는 질문을 더 키웠을 뿐이다.

부연하자면 이 사건의 본질은 "증자를 했느냐, 하지 않았느냐"가 아니다. 왜 주식 발행이라는 수단이 다른 선택지들보다 우월한 해법이었는지를 이사회가 설득력 있게 입증했느냐에 있다. 부채 재조정, 자산 매각, 투자 속도 조절, 배당 축소, 경영진 보상 감액, 대주주의 명시적 위험 분담 같은 옵션들도 존재하는 상황에서 기존 주주에게 대규모 희석을 부담케 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수치와 시나리오도 함께 제시되었어야 했다. 어떤 자본조달 방식에도 비용은 존재한다. 따라서 이번 논란의 핵심 질문은 "왜 손실 흡수의 부담이 채권자, 경영진, 대주주보다 일반주주에게 먼저 배분되어야 하는가"이다.

"미래를 완벽하게 예측할 수 없는데 결과만 보고 실패라고 단정하는 것은 결과론"이라는 반론은 절반만 옳다. 자본시장은 기업에 예언 능력을 요구하지 않는다. 대신 불확실성을 어떤 절차와 숫자로 관리했는지를 묻는다. 한화솔루션의 최근 재무지표를 보면 시장의 반응이 단순한 과민반응만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회사는 2025년 연결 기준 매출 13조3천억 원대, 영업손실 3천억 원대 중반, 순손실 6천억 원대의 부진한 실적을 기록했다. 공격적인 투자와 낮은 수익성으로 인해 현금흐름과 재무건전성 모두 압박을 받았고, 순차입금은 약 12조2천억 원, 순차입금/EBITDA 비율은 약 29배까지 치솟았다. 일부 외화대출에서는 차입약정 위반에 따라 기한이익상실(EOD) 사유가 발생했고, 회사는 금융기관으로부터 유예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정도라면 대규모 재자본화의 필요성 자체는 충분히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왜 지금인가, 왜 이 규모인가, 왜 이 수단인가, 그리고 증자 이후 무엇이 구조적으로 달라지는가'에 대해 회사와 이사회가 훨씬 더 구체적인 답을 내놓았어야 했다.

기업거버넌스 관점에서 보면, 이번 사안의 핵심은 자금조달 필요성 자체보다 그 과정에서 절차적 신뢰가 훼손된 방식에 가깝다. OECD 기업거버넌스 원칙은 신주 발행과 관련한 기존주주의 신주인수권을 소수주주 보호를 위한 중요한 장치로 규정한다. 이 원칙에 비추어 볼 때 쟁점은 단순히 기존 주주에게 참여 기회를 형식적으로 부여했는지가 아니라, 상당한 수준의 희석을 정당화할 만큼 충분한 정보와 설명이 사전에 제공되었는가에 있다. 한화솔루션 사례에서는 정기 주주총회 직후 대규모 유상증자 계획이 발표되었고, 그 이전에 시장과 기존 주주를 상대로 충분한 소통과 설득이 있었는지에 대해 강한 의문이 제기됐다. 자본시장에서 신뢰는 사후 해명이나 기술적 정정만으로 회복되기 어렵다. 대안 검토의 내용, 부담 배분의 원칙, 공시와 소통의 수준이 사전에 축적될 때 비로소 형성된다.

그렇다면 "좋은 유상증자"의 기준은 무엇일까. 핵심은 목적의 명료성, 대안 대비 우월성, 부담 구조의 공정성이다. 우선 조달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 이번 자금이 생존을 위한 유동성 방어인지, 재무구조 복원인지, 성장투자인지, 각각 얼마 규모인지가 구체적으로 제시돼야 한다. 다음으로 왜 지금, 왜 이 규모로, 왜 부채 조정·자산 매각·투자 이연·배당 조정보다 주식 발행이 나은 선택인지가 숫자와 시나리오로 비교돼야 한다. 그래야 "이 정도 희석은 불가피한 최선"이라는 설명이 힘을 얻는다. 희석의 정당성도 중요하다. 누가 얼마만큼의 손실과 위험을 나누어 부담하는지, 채권자·기존 주주·신규 투자자 사이의 손익 구조가 공정한지, 대주주와 경영진이 실제로 경제적 고통을 분담하는지가 구조와 조건에 드러나야 한다. 발행 전후의 핵심 KPI와 부채 지표, 투자 회수 전망에 대한 중기 로드맵이 함께 제시되고, 이후 이행 상황이 정기적으로 공시되는 것도 필요하다. 이번 조치가 일회성인지, 아니면 추가 증자가 이어질 수 있는 구조인지에 대해 시장이 납득할 수 있는 가이던스 역시 빠질 수 없다. 한화솔루션이 뒤늦게 추가 유상증자 자제와 주주환원 확대를 약속한 것은 결과적으로 이런 기준을 의식한 대응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기준이 충족될 때에만 유상증자는 기존 주주의 몫을 희석해 채권자와 경영진을 구제하는 수단을 넘어, 기업의 회복 가능성과 성장 잠재력을 함께 복원하는 장치가 된다. 이번 논란이 남긴 교훈은 분명하다. 한국 자본시장의 문제는 "유상증자가 많다"는 데 있지 않다. 문제는 "신뢰하기 어려운 방식의 유상증자가 많다"는 데 있다. 시장은 자본조달 그 자체를 거부해서는 안 된다. 다만 유상증자가 기존 주주의 지분을 희석하는 대가로 지배주주와 채권자, 경영진의 위험을 우선적으로 덜어주는 방향으로 설계될 때, 그리고 그 결정이 충분한 설명 없이 기습적으로 제시될 때, 그 거래를 정당한 자본조달 행위가 아니라 경영 실패의 비용을 주주에게 전가하는 행위로 평가한다.

이제 버려야 할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유상증자는 언제나 악재"라는 투자자의 즉각적 반응이고, 다른 하나는 "회사가 필요하면 주주는 따라올 수밖에 없다"는 기업의 오만이다. 성숙한 자본시장은 자본조달을 무조건 막지 않는다. 오히려 절차와 구조가 투명한 "좋은 증자"에는 합리적인 비용으로 길을 열어주고, 신뢰를 훼손하는 "나쁜 증자"에는 높은 자본비용과 평판 비용으로 응답한다. 그 차이를 가르는 것은 조달 규모나 형식이 아니라, 의사결정의 품질과 위험·부담의 배분 방식이 얼마나 공정하게 설계되어 있는가 하는 점이다.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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