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형 SUV 시장에 도전장 던진 볼보의 전략차세대 플랫폼으로 완성한 실속형 전기차파격적 인터페이스와 미니멀한 실내 공간
극단적인 미니멀리즘, 혹은 '낯선 불편함'과의 조우
EX30은 볼보 역사상 가장 작은 SUV이자, 차세대 전기차 전용 플랫폼인 'SEA'를 기반으로 태어난 첫 번째 모델입니다. 덩치는 작지만 속은 꽉 찼습니다. 전장은 4.2m 남짓으로 국산 소형 SUV보다도 짧지만, 전기차 특유의 긴 휠베이스 덕분에 실내 거주성은 차급을 뛰어넘습니다. 작은 차체 바닥에는 66kWh 배터리가 자리합니다. 언뜻 배터리 용량이 작아 보이지만, 차급을 생각하면 준수한 편입니다. 주행거리 이야기는 글 뒤에서 다뤄보겠습니다.문을 열고 실내로 들어서면 잠시 멍해지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운전석 앞이 텅 비어 있기 때문입니다. 계기판조차 없습니다. 속도를 확인하려면 시선을 오른쪽으로 돌려 중앙의 12.3인치 디스플레이 상단을 훑어야 합니다. 마치 스마트폰 하나로 모든 것을 통제하는 세상에 던져진 기분이랄까요. 테슬라가 비슷한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아직 정통 브랜드가 익숙한 소비자들에겐 낯설기만 한 구성입니다.
이를 두고 극단적 미니멀리즘이라 평가할지, 아니면 새로운 시대의 표준으로 볼지는 결국 소비자의 몫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실내가 북유럽 툰드라만큼이나 단정하게 정리돼 있다는 점입니다. 재활용 소재와 플라스틱을 활용했음에도 마감은 기대 이상으로 정갈하고, 전반적인 분위기도 차급보다는 확실히 고급스럽게 연출됐습니다.
하지만 사용성은 전혀 다른 문제죠. 윈도우 스위치는 문짝이 아닌 센터 콘솔로 옮겨갔는데, 뒷 창문을 조작하려면 'REAR' 버튼을 눌러야 합니다. 모든 창문을 열어 환기하려면 내림→REAR→내림→올림→REAR→올림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하죠. 또 사이드미러 각도를 조절하려면 화면 속 메뉴를 서너 번 터치한 뒤 스티어링 휠 버튼을 눌러야 합니다.
무엇보다 주행 중 에어컨 온도를 조절할 때 시선이 필연적으로 중앙 화면으로 향하게 되는 점은 못내 아쉽습니다. 볼보가 그간 고집스럽게 지켜온 안전이라는 대명제가 미래지향적인 인터페이스에서 다소 도전적인 숙제로 다가온 느낌입니다. 미니멀리즘이라는 미학적 성취를 위해 운전자의 동선을 잠시 양보해야 하는 셈이죠.
"익숙해지면 괜찮지 않나요?"라고 묻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맞습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니까요. 하지만 그것은 '편해진 것'이 아니라 '불편함에 익숙해진 것'에 가깝습니다. 깔끔하지만 불편한 옷을 입고 격식을 차려야 하는 파티장에 온 느낌이라고 할까요.
하지만 어쩌겠어요. 예쁩니다. 파티장에 걸치고 가는 근사한 드레스나 턱시도는 사실 편안함과는 거리가 멀지만, 거울 속 내 모습이 예쁘면 그만인 법이죠. 입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옷처럼, EX30의 인테리어는 타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게 하는 마법을 부립니다.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곁에 두고 싶은 '예쁜 물건'이 주는 위로랄까요.
한 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부분은 바로 오디오입니다. 도어에 여러 개의 스피커를 배치하는 정석적인 방법 대신 대시보드 상단에 가늘고 긴 사운드바 하나를 떡하니 배치하는 파격을 선보였습니다. 처음엔 트위터가 빠져 소리의 입체감이나 공간감이 부족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웬걸요. 차가 크지 않기에 가능한 영리한 설계였습니다. 좁은 실내 공간 자체가 거대한 울림통 역할을 해주면서, 소리가 한곳으로 뭉치지 않고 귓가로 자연스레 날아듭니다. 트위터가 빠진 구성임에도 고음이 부드럽게 뻗어 나가 장시간 청취에도 귀가 피로하지 않았습니다.
숫자가 증명하는 반전의 묘미, "작지만 매운 고추"
도로 위를 달리는 EX30은 겉모습만 예쁜 게 아니라, 달리기 실력도 제법이라는 사실을 몸소 증명해 보이기 시작합니다. 참고로 이번에 시승한 모델은 EX30 크로스컨트리(CC)입니다. EX30에 오프로드의 향기를 살짝 추가한 모델인데요. 뒤차축에 272마력 전기모터 한 개를 장착한 기본형과 달리, 앞·뒤로 전기모터 두 개를 달아 무려 428마력을 냅니다. 그 대가로 1회 충전 주행가능거리는 351km에서 329km로 소폭 줄었는데요. 역시나 기우였습니다. 실제 주행 거리는 훨씬 월등했거든요.
서울에서 출발해 교외 도로를 아울러 약 230km를 주행한 후 확인한 전비는 15.0kWh/100km. 이를 우리가 더 익숙한 단위로 환산하면 약 6.7km/kWh입니다. 공인 전비 4.7~4.9km/kWh를 감안하면, 공인 수치를 무려 30% 이상 웃도는 성적입니다. 더 놀라운 건 배터리 잔량입니다. 230km를 꽤 거칠게 달리고도 배터리는 여전히 50%나 남아 있었습니다. 단순 산술로도 완충 시 460km 이상 주행이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작은 차라 배터리 걱정이 크겠다"는 선입견을 단숨에 깨부수는 실력입니다.
작은 차체는 도심에서 축복과 같습니다. 좁은 골목을 빠져나가거나 주차할 때의 경쾌함은 대형 SUV가 줄 수 없는 해방감을 선사합니다. 만듦새 좋은 섀시와 두 개의 강력한 모터가 만나 안정성과 민첩함을 동시에 챙겼습니다. 요철을 넘을 때의 느낌은 볼보 특유의 단단하면서도 쫄깃한 맛이 살아 있죠. 급은 낮아도 '볼보는 볼보'라는 신뢰를 줍니다.
여기에 한 가지 더 고민거리가 생길지도 모릅니다. EX30 기본 모델과 거친 매력의 크로스컨트리 사이 갈등이죠. 저는 개인적으로 기본형을 추천합니다. 이처럼 작은 차체에 420마력이라는 폭발적인 힘은 조금 과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기본형의 272마력만으로도 도심과 고속도로를 누비기엔 이미 차고 넘치는 여유를 자랑하니까요. 오히려 힘을 조금 빼고 살살 달래가며 탄다면 1회 충전으로 500km 이상의 긴 여정도 거뜬히 소화해낼 수 있습니다. 소형 SUV라는 차급과 도심형 SUV라는 쓰임새, 그리고 가격을 생각하면 여러모로 기본형이 합리적이고 영리한 선택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당신은 도발을 받아들일 준비를 마쳤는가
볼보 EX30은 모든 이를 만족시키려 애쓰는 욕심쟁이가 아닙니다. 확실한 장점을 위해 과감한 포기를 선택한 전략가에 가깝죠. 애플 아이폰이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 사람들은 물리 키보드가 없다는 사실에 당혹스러워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그 불편함을 혁신이라 부르며 살아가고 있죠. EX30 역시 비슷한 도발을 던지고 있습니다.이 차는 '과거의 익숙함'과 '미래의 미니멀리즘' 사이에서 고민하는 우리에게 던지는 기분 좋은 초대장일지도 모릅니다. 처음에는 조금 낯설고 서툴지라도, 텅 빈 대시보드 위로 비치는 오후의 햇살과 사운드바에서 흘러나오는 선명한 선율에 몸을 맡기다 보면 어느새 비움의 미학에 설득당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실용성과 감성, 그 사이의 절묘한 교집합을 찾고 있는 당신에게 EX30은 꽤 매력적인 선택지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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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웨이 권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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