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시민단체, 약가 제도 혁신과 공급 구조 논의성분명 처방·참조가격제···처방·유통까지 변화되나
11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건강보험 중심 약가제도 개편을 통한 재정 지속가능성 확보' 토론회에서는 제네릭 약가 인하와 성분명 처방, 건보공단 중심 약가 관리 강화 필요성 등 각종 제도 개편 요구가 잇따라 제기됐다. 수익성 악화와 공급 기반 약화를 우려하며 속도 조절을 요구하는 산업계와 확연한 온도차가 나타난 모양새다.
한편 노동계 측은 약가 제도 개편과 관련해 인력 축소를 비롯한 현장 우려가 있다면서도 다른 문제에 대해서는 대체로 수긍하는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날 토론회는 남인순·이수진·서영석·김윤·장종태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무상의료운동본부, 좋은공공병원만들기운동본부가 공동주최했고 국민건강보험노동조합이 주관했다. 발제는 나영균 배재대학교 교수와 정형준 원진녹색병원장·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이 맡았다.
제네릭 약가 인하 넘어선 제도개편 논의
이번 토론회는 제약업계가 이미 정부 약가 인하안에 대한 집단 대응 직후 열렸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는 지난달 말 '산업 발전을 위한 약가제도 개편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렸고, 전날에는 업계가 감내 가능한 제네릭 약가 하한선으로 '48.2%'를 제시하며 민관 공동연구를 요구했다.
현장 분위기는 여당과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산업계를 향해 제네릭 시장 구조를 둘러싼 압박이 커지고 있음을 보여줬다.
서영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제네릭의 난립을 막고 또 혁신 신약의 성장을 돕기 위해서 이상적인 형태는 성분명 처방으로 가는 것이 맞다"고 했고, 김윤 의원은 "높은 제네릭 약가를 고착화시키고 있는 것이 경쟁을 유발하지 않는 현재 약가 제도"라고 말했다. 건보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약가 체계와 처방 구조를 함께 손봐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정치권에서 본격화한 셈이다.
발제에서는 제네릭 가격 자체가 산업 구조 왜곡의 출발점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나영균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는 (오리지널 대비 제네릭 약가 수준이)53.55%에 달하고 있다"면서 "이는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높은 수치"라며 오리지널 대비 제네릭 약가 수준을 문제 삼았다. 제네릭은 많은데 약값은 충분히 떨어지지 않고, 그 결과 의료비의 상당 부분이 약제비로 남는 구조라는 진단이다.
이 논리가 현실화하면 동일 성분 품목을 다수 보유한 제약사들에는 단순 약가 인하를 넘어 포트폴리오 재정비 압박이 커질 수 있다. 참조가격제나 경쟁입찰까지 논의가 확장될 경우 제품 수가 많은 업체일수록 타격 폭을 가늠해야 하는 국면이다.
특히 산업계가 민감하게 볼 대목은 성분명 처방이 단순한 조제 방식 변화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노수진 대한약사회 총무·홍보이사는 "상품명 처방 체계에서는 특정 회사 제품을 선택하는 권한이 처방권자에게 집중된다"며 "제약사는 동일 성분 의약품 중 자사 제품을 병·의원에 먼저 진입시키는 데 집중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약국 조사 결과를 언급하며 "93.3%가 경합을 한다"고도 했다. 상품명 중심의 제네릭 영업이 유지되는 한 가격 경쟁보다 처방 확보 경쟁이 강화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이는 제약사 입장에서는 익숙한 영업 모델로, 성분명 처방 도입 시 그 기반이 직접 흔들릴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정형준 원장은 더 직설적이었다. 그는 "제네릭은 상품명 출시를 지양해야 된다"고 했고, "비대면 진료는 당연히 성분명 처방해야 되는 거 아닌가"라고 물었다. 비대면 진료 확산 국면에서 상품명 처방이 유지되면 플랫폼, 도매, 약국을 둘러싼 새로운 유통 왜곡이 생길 수 있다는 문제 제기다.
토론회에서 CSO 중심 유통 구조와 처방약 영업 경쟁이 함께 거론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건보 절감 논의가 이제 단순한 약가표 조정에 머무는 게 아니라 제약사의 판매관리비 구조와 영업 방식까지 겨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정부, 빠른 제도 개편에 선그어
한편 정부는 제기된 문제에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급격한 전환에는 선을 그었다.
김한숙 보건복지부 보험정책과장은 "건보재정 지속안정성"을 위해 "불합리한 지출과 관련해 약가 제도를 개선하려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약가 제도 개편은 단순히 비용 절감 차원이 아니"라며 "건보재정으로 제약산업을 투자하겠다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성분명 처방에 대해서도 "오랜 시간 이해관계가 대립해왔다"며 수급 불안과 안전성, 유효성 확보 방안을 함께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업계로서는 당장 급격한 제도 변화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정부가 약가 지출 효율화와 구조 개선을 명확한 방향으로 잡았다는 점은 부담이다.
산업계 "우리는 '카르텔' 아냐"

이 부회장은 "산업계를 건보 재정을 좀먹는 카르텔처럼 이야기한다"며 불편함을 숨기지 않았다. 이어 "제약회사가 불량품을 만드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며 논의의 출발점은 산업 비난이 아니라 국민 건강권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코로나19 팬데믹 당시를 거론하며 미국·유럽 등 주요국조차 자국 내 제네릭 생산 기반이 취약한 상황에서 국내 제약사가 제조시설을 기반으로 필수 의약품 공급을 지탱했다고 강조했다. 또 "2011년 전체 의료비에서 약제비 비중이 29%까지 갔지만, 지금은 20% 중반대로 내려왔다"는 취지로 말하며, 약제비 비중이 무조건 악화 일로만 간 것은 아니라는 점도 부각했다.
그는 "적어도 팩트에 기반한 논의가 됐으면 좋겠다"면서 "국민의 건강권이라는 관점에서 이해주체가 신뢰를 갖고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약가 인하 필요성 자체를 부정하진 않으면서도, 제약회사를 건보 재정 누수의 일방적 원인처럼 보는 구도에는 거리를 둔 것이다. 특히 일률적인 제네릭 가격 인하가 현실화할 경우 중소 제약사의 채산성 저하, 원료 조달 부담, 필수의약품 공급 기반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현장에서는 적지 않다는 점을 짚었다.
현장에서는 다시 반박과 재반박이 오가며 짧게 논쟁이 벌어졌다.
나영균 배재대 교수는 이 부회장의 문제 제기 직후 "원가가 얼마인지 모르지 않냐"라고 받아쳤다. 그는 제네릭 약가를 어디까지 낮추는 것이 합리적인지 논의하려면, 우선 제조원가와 유통 구조가 어느 정도 투명하게 공개돼야 한다는 취지로 말하며 산업계에 공을 돌렸다. 그러자 이 부회장은 다시 마이크를 잡고 "원가를 더 다운시키라면 중국이나 인도에서 더 싼 원료를 가져오면 된다"며 국내 원료의약품 자급률이 20% 수준에 불과하다는 점을 거론했다. 약가를 과도하게 누르면 국내 제조 기반을 지키기보다 해외 저가 원료 의존을 더 키우게 될 수 있다는 반론이었다.
이날 토론회에서 정부가 선을 그었지만, 성분명 처방, 참조가격제, 경쟁입찰, 비대면 진료 성분명 처방 의무화 같은 제안이 현실 정책으로 이어질 경우 국내 제약업계는 약가 인하 이상의 변화를 맞게 될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향후 약가제도 개편이 일단락되더라도 업계의 고민은 더 길어질 거란 분석이다.
뉴스웨이 이병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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