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골프와 술은 천생연분? 위험한 동거?

전문가 칼럼 정현권 정현권의 싱글벙글

골프와 술은 천생연분? 위험한 동거?

등록 2026.03.05 10:27

professional
#1. 동반자들이 모여 차 한대로 골프장에 간다. 모두 들뜬 분위기다. 그동안 못다한 얘기들을 나누다 보면 어느새 골프장에 도착한다. 골프를 끝내고도 운전자 한 명만 빼고는 부담 없이 술을 마신다.

#2. 아침 일찍 골프장에 도착해 옷을 갈아입고 클럽하우스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한다. 옆 테이블을 보고 사뭇 놀란다. 벌써 소주 두 병을 비우고 나가는 일행이 있다.

사진=기고자 제공사진=기고자 제공

골프만큼 술과 궁합이 맞는 종목도 드물다. 야구, 축구, 테니스 경기 도중이나 휴식시간에 술을 마시지 않는다. 아마추어 골프는 가능하다.

골프와 위스키 본산이 같은 스코틀랜드라는 점도 흥미롭다. '골프 해방구'로 불리는 미국의 피닉스오픈이 열리는 날에는 갤러리들이 아예 홀 근처에서 술 파티를 벌인다.

골프 삼락(三樂)이 있다. 경기 후에 비가 오고(나는 웃고 다른 사람은 운다), 사우나 욕조에 몸을 담그고, 시원한 생맥주를 들이키는 일이다.

하지만 프로골퍼들은 술에 관해 무척 신중하다. 아예 대회 며칠 전부터 술을 자제한다.

술로 일세를 풍미하는 사람은 단연코 존 댈리(58)이다. 알코올 중독 치료까지 받은 댈리는 말 그대로 필드의 풍운아.

2003년 한국오픈에서도 우승한 그는 PGA투어 5승에다 처음 300야드 장타 시대를 열었지만 결국 과음으로 골프 수명을 단축시켰다.

우즈(50)도 전처와 이혼 후 슬럼프에 빠져 음주운전으로 체포되고 큰 교통사고를 당해 전성기에서 내리막길로 치달았다.

국내에서도 유명 선수들은 대부분 술을 멀리한다. 한국 골프 간판스타 최상호(70), 최경주(55), 양용은(53)은 가벼운 와인 정도에 그친다.

"술은 긴장과 불안을 해소하지만 골프 전이나 도중에 마시면 소뇌의 조절·균형기능을 방해해 집중력과 판단력을 흐리게 합니다. 특히 드라이브 샷 방향성과 퍼트 집중력에 지장을 초래하죠."

오재근 한국체대 운동건강관리학과 교수의 말이다. PGA 선수 절반 정도가 대회 전날 술을 마신다는 비공식 통계도 있다.

프로골프대회에서 음주를 금한다는 별도 규정은 없다. PGA투어는 2017년부터 혈액검사를 의무화하면서 엄격한 도핑방지 프로그램을 적용하지만 알코올을 금지 약물 리스트에 올려놓지 않았다.

아마추어는 다르다. 술을 잘 못하는 골퍼에게도 18홀을 돌고 샤워 후 들이키는 맥주 한 잔은 달콤하고 유혹적이다. 골프 후에 동반자들이 술과 음식을 나누면서 입으로 하는 라운드 복기를 19홀이라고 한다.

사진=기고자 제공사진=기고자 제공

핸디캡(Handicap)이란 용어도 술자리에서 나왔다는 설이 있다. 술자리가 파할 무렵 모자를 벗어 든 사람이 멤버들로 하여금 돈을 쥔 주먹을 모자에 넣게 하면서 비롯됐다.

"핸드 인 드 캡(Hand in the cap)!" 하고 외치면 모자 안에서 주먹을 편다. 주머니 사정에 따라 넣는 돈이 얼마인지 모르게 하려는 배려다.

"5시간 동안 몸과 마음을 집중해 경쟁하려면 많은 에너지가 소모됩니다. 무장해제하고 서로 해방감을 만끽하는 데에 술이 최고죠."

현정신과의원 김기현 원장은 체질적으로 술을 못 하는 사람을 빼곤 골프와 술은 천생연분이라고 말한다. 유달리 한국에선 골프 도중 술이 빠지지 않는다.

겨울엔 그늘집에서 따끈한 정종, 여름엔 시원한 생맥주나 막걸리가 안성맞춤이다. 돈을 아끼려고 아예 막걸리를 싸들고 오는 사람도 있다.

주류업체들은 술과 골프의 환상 궁합을 이용해 골프대회 타이틀 스폰서나 선수 후원으로 많이 나섰다. 단일 업종으로 주류 업체가 골프대회에 가장 많은 이름을 걸었다.

발렌타인 챔피언십, 조니 워커 클래식, 미켈롭 챔피언십, 기린오픈, 하이트 진로배 등 많은 골프대회가 열렸다. 고진영(하이트 진로)과 안시현(골든블루) 같은 스타 골퍼도 주류회사가 후원했다.

일류 선수 출신들은 아예 주류 사업에 뛰어들었다. 작고한 아널드 파머는 자기 농장 포도로 만든 와인에 '아널드 파머'란 브랜드를 새겼다.

호주 출신 그렉 노먼(70)도 와이너리 사업에 투자했다. 캘리포니아 포도 농장 사이에 골프 코스를 설계할 정도로 와인 애정이 깊다.

어니 엘스(56)는 남아공 와인을 전 세계에 알렸다. 프랑스와 칠레산만 알던 우리에게 남아공 와인을 소개했다.

와인 가운데 1865라는 브랜드가 있는데 18홀에 65타라는 소문을 타고 골퍼들 사이에 인기가 뜨거웠다. 골프 후에 마시거나 상품으로 사용된다. 이 숫자는 칠레 와인 생산업체인 산 페드로의 설립연도이다.

사진=기고자 제공사진=기고자 제공

골프와 술은 일란성 쌍둥이다. 우선 최적 멤버가 똑같이 4명이다. 술자리에서 3명은 뭔가 허전하고 5명 이상이면 대화 초점이 흐려진다.

골프 멤버도 4명이 베스트다. 적당하게 보험 역할을 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위험이 분산돼 흥미진진하다.

둘 다 처음 배울 때가 매우 중요하다. 어른 앞에서 술을 배워야 한다는 말도 있듯, 잘못 배우면 술버릇으로 평생 고생한다.

"골퍼 스타일은 좋건 나쁘건 골프를 시작한 일주일 안에 굳어진다"는 해리 바든의 말처럼 스윙자세, 진행속도, 매너도 평생 그대로 간다.

끝나봐야 실력(핸디)과 인격이 드러나는 점에서도 둘은 유사하다. 골프 18홀을 돌고 나면 인품과 실력이 저절로 나온다.

술자리에서도 5시간 함께 하면 상대방 인성을 알게 된다. "얼굴은 거울에 비치고 인격은 술에 비친다"는 말이 있다.

접대 수단으로도 이만한 게 없다. 요즘은 덜하지만 골프와 술은 김영란법 이전까지만 해도 최고 접대 수단이었다. 골프와 술이 어우러질 때 접대 상승 효과는 가공할 만하다.

단기간에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데에도 둘은 효과만점이다. 술안주로도 골프만 한 게 없다.

한두 번 피하면 잘 부르지 않는다는 점도 공통적이다. 사람들이 골프와 술 약속을 웬만하면 어기지 않으려는 이유다.

술은 골프에서 양날의 칼이다. 전날 과음하면 다음날 혹독한 대가를 치른다. 술냄새 풍기며 예정 시간에 늦으면 그 자체로 민폐다. 골프가 맘대로 안 되면 본인은 물론이고 지켜보는 동반자도 괴롭다.

사진=기고자 제공사진=기고자 제공

또 그늘집에서 가볍게 한잔 하면 무방하지만 원하는 샷이 안 나온다고 라운드를 술판으로 몰아가면 곤란하다.

무엇보다 술 마시고 카트 운전이나 스윙에 따른 안전사고에 유의해야 한다. 노캐디 골프장이 늘어가는 요즘 음주 카트 운전은 금기사항이다.

술과 골프는 사람을 시험하지 않는다. 둘 다 그 사람의 원래 모습을 드러나게 할 뿐이다.

정현권 대한변리사회 미디어 전문위원 겸 지식재산뉴스 주필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