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상장기업 기업 거버넌스는 '기울어진 터'와 같다. 상장기업은 의당 퍼블릭기업(public company)인데 상당수 지배주주 일가가 개인기업(private company)처럼 간주하며 의사결정을 한다. 대다수 이사는 지배주주 이익 강화를 위해 복무한다. 여기서 일반주주 이익은 보이지 않는다. 법의 울타리 내에서 합법으로 위장된 불공정한 일반주주 이익 훼손 행위가 자주 눈에 띄기 때문이다. 이런 일들이 방치되는 한, 지능지수 순서대로 '국장' 떠나 '미장'으로 가는 대탈주 행렬을 막을 수 없다.
사례 하나를 들어보자. 최근 두산 그룹에서 공시를 냈다. 투자에너빌리티의 투자 부문과 두산로보틱스가 합병하고, 그룹의 알짜회사인 두산밥캣이 두산로보틱스의 100% 자회사가 된다는 내용의 공시다. 두산밥캣은 미국 건설기계 회사로 지주사 두산의 연결 실적에 포함된다. 지난 2023년 두산의 영업이익은 1조 4362억원, 밥캣은 1조 3899억원이니 두산 영업이익의 대부분을 밥캣이 책임진 셈이다.
위 공시에 따른 프로세스, 즉 '인적 분할-합병-포괄적 주식교환'이 완료되면, 지주회사 두산의 밥캣에 대한 실질 지분율이 현재 13.8%에서 42%로 약 28%포인트나 껑충 뛴다. 두산 지배주주들은 추가적인 출자 없이 그룹의 노른자위 회사의 지배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게 된다. 그만큼 일반주주들의 지분율은 희석된다는 의미다. 이런 일들이 자꾸 벌어지면 한국 주식에 긴 안목으로 장기투자 하라는 말은 도덕 선생님 말씀보다 더 공허하게 들린다. 이 판에 밸류업 운운은 연목구어다.
진정한 밸류업을 하려면
기업의 밸류업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이뤄져야 한다. 첫째, 기업 가치를 제고하는 것, 즉 명실상부한 '밸류업(Value Up)'이다. 둘째 본질가치 대비 저평가된 주가를 제 가치에 수렴시키는 것, 즉 '프라이스업(Price Up)'이다. 한국 주식시장은 첫 번째 '밸류'인 기업의 수익성 및 성장성 측면과 두 번째 '프라이스' 측면의 주가 디스카운트 둘다 '업(up)'되어야 한다.
그런데 투자자들(주로 행동주의 투자자들)은 프라이스업과 밸류업을 동일한 개념으로 보거나 양자를 인과관계로 보는 경향이 있다. 즉 저평가된 프라이스가 업되면 밸류업된다고 판단하거나, 주가 저평가의 주요한 요인인 기업 거버넌스 문제만 풀면 밸류업된다고 단선적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대표적인 예를 들어 보자. 투자자들은 프라이스업을 위해 주주환원율 제고를 요청한다. 한국 주식시장 주주환원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것은 맞다. 더 올려야 한다. 하지만 프라이스업이 밸류업의 충분조건은 아니다. 즉 주주환원율 제고는 일시적 프라이스업에 도움이 될지 모르나 그것이 지속 가능한 찐 밸류업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찐 밸류업을 제약하는 근본 원인이 다른 곳에 많기 때문이다. 예컨대 국내 기업들의 매니지먼트 역량 후진성, 20세기형에 멈춰 서 있는 산업구조, 기업 적대적 제도 및 정책, 불공정한 산업생태계, 글로벌 경쟁력 저하, 단기투자성향, 원화 변동성, 낮은 기관투자자 비중, 총요소생산성 저하, 노동시장 경직성, 열악한 사회적 자본 등 무수히 많다. 이런 측면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개선해야 찐 밸류업이 가능하다.
평평한 터 위에 메가 스타디움을 세워야
지배주주와 일반주주 간 '기울어진 터'를 '평평한 터'로 만드는 일이 중요하지만, 그 자체가 기업 경영의 목적은 아니다. '평평한 터'를 닦아 그 터를 어떻게 활용하거나 그 위에 무엇을 세울 것인가가 경영의 궁극적 목적이다. 부연하자면 지배주주와 일반주주 간 평등한 권리를 갖게 하는 기업거버넌스의 평평한 터를 만들어, 그 위에 달랑 배드민턴 코드 하나를 세우고 그칠 수도 있고, 대형 메가 스타디움을 건설할 수도 있다. 무엇을 택하겠는가.
민주주의에 빗대 한번 생각해 보자. 민주주의는 유권자들 모두에게 1인 1표를 부여한다. 하지만 이 평등선거의 원칙으로 인해 오늘날 '민주주의는 중우(衆愚) 정치'로 오염되고 결과적으로 민주주의 철학을 위협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민주주의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인 하버드대학 정치학과 교수인 스티븐 레비츠키(Steven Levitsky)와 다니엘 지브라트(Daneil Ziblatt)는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How Democracies die)'라는 역작에서 그 부분을 신랄하게 지적했다. 과거 '민주주의 실험실'로 칭송되었던 미국이 과거 포퓰리스트인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세운 바 있고, 그를 또다시 재선시키려고 한다. '민주주의 실험실'이 '중우적 전제주의 실험실'로 추락한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일들 모두 평평한 운동장이라고 일컫는 합법적 1인 1표의 민주적 선거제도와 절차를 거쳤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민주주의 이념을 오염시키고 훼손했다.
'1주 1표'의 주주자본주의도 민주주의가 걸어온 유사한 문제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 지배주주와 일반주주 간 '평평한 터(공정성)' 위에 주주들의 중우성(衆愚性)이 작동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로 인해 기업의 지속 가능한 발전이 좌초될 개연성도 충분히 존재한다. 지난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는 주주자본주의가 가장 발달했다는 미국 자본주의에서 발생한 대참사라는 점을 되새겨야 할 것이다. 미국은 사실상 부도 파산한 국가와 다름아니다.
대전환기의 지속 가능한 밸류업의 조건
한국 기업으로 와 보자. 오늘날 글로벌기업으로 성장한 한국 대기업들의 사업 철학은 단순히 주주 이익 강화와 제고가 아니었다. 삼성 이병철은 '사업보국'(사업으로 국가에 보답한다)과 '인재 제일주의'를, 현대 정주영은 '도전, 그리고 할 수 있다는 캔두이즘(Candoism)'을, LG 구인회는 '인화 화합 정신에 바탕을 둔 리더십'을 중요한 경영철학으로 내세우고 기업을 일궜다. 이병철 회장은 "훌륭한 인재를 채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재를 육성하는 것이야말로 중요하고, 인재 육성을 바탕으로 한 사업보국을 통해 후손에게 더 나은 조국을 물려줘야 한다"고 일관되게 강조했다. 반면 정주영 회장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도전 정신으로 '하면 된다'는 신념을 바탕으로 맨주먹으로 시작해, 우리 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자동차·조선·건설사업을 키워냈다. 구 회장은 '치가지도'(治家之道)를 실천했는데, 이 철학은 기업 가문의 사표로 지금까지도 우리나라 재계에서 높이 평가되고 있다.
오늘날 대기업들을 일군 바탕에는 이렇듯 창업자들의 그랜드 비전과 심오한 경영철학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들 창업자의 긴 안목의 장대한 시계(視界)가 자리 잡고 있었다. 기업가 정신의 통찰과 혜안도 자리 잡고 있었다. 만일 이들이 고작 3~5년의 NPV, IRR란 경영 판단의 잣대로 기업을 경영했다면 오늘날 삼성, 엘지, 현대라는 글로벌기업들은 결코 출현할 수 없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지금은 불확실성을 특징으로 하는 패러다임의 대전환기다. 이러한 대전환기에 분기 성과, 반기성과, 일 년 성과의 시계 하에서 경영 성과를 측정하고 자원을 배치하는 미국식 주주자본주의와 그에 근거한 미국식 기업거버넌스가 우리에게 과연 적실성이 있을지에 대해서도 깊이 논의해야 한다.
글을 맺겠다. 평평한 터는 장대한 건축물을 세울 수 있는 한 가지 조건에 불과하다. 또 다른 조건도 필요하다. '평평함' 못지않게 '견고함과 단단함'이다. 즉 '안정적이며 동시에 평평한 터' 위에서만 메가 스타디움을 세울 수 있다. 따라서 밸류업과 한국 기업 거버넌스 논의에서 '1주 1표의 평평함' 논의에만 매몰되면 안 된다. 어떠한 조건들이 종합적으로 구비되어야 사라져 버린 장기적 안목의 기업가 정신을 재소환할 수 있을지도 함께 검토되어야 한다. 그것이 한국 자본시장 주가의 프라이스업 뿐만 아니라 한국 산업과 기업들의 지속 가능한 밸류업의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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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웨이 임주희 기자
ljh@newsw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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