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여년 시대정신의 키워드는 단연 FAANG(미국 거대 플랫폼 기업인 Facebook, Apple, Amazon, Netflix, Google을 통칭)이었다. 국내에서는 네이버나 엔씨소프트 등과 기업들로 대표될 수 있었다. 21세기 초입에 들어서서 앞선 주식들을 집중 매입하여 시장 변동성이나 단기성과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인내심을 갖고 장기 보유한 투자자들은 소위 대박을 치고 이미 경제적 풍요와 자유를 얻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미래의 시대정신은 무엇일까? 나는 미래 20여년의 키워드는 ESG, 넷제로, 밸류업에 따른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라고 믿는다. 이것이 한국경제와 산업, 그리고 자본시장의 지도를 다시 그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것이 곧 한국 경제 미래의 시대정신이 아닐까. 참고로 2021년 다보스포럼에 따르면 향후 15년 동안 탄소중립을 위해 전 세계적으로 약 90조 달러의 투자가 필요하고, 2022년 맥킨지는 2050 탄소중립을 위해 약 275조 달러의 투자가 요구된다고도 말했다. 이를 연평균으로 환산하면 9.2조 달러로서 우리나라 GDP의 약 6배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규모다. 인류 역사상 최대 장(場)이 서는 것이다. 한국경제와 기업들도 이 천문학적인 글로벌시장에서 적극으로 기회를 모색해야 마땅하다.
어느 투자자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이 '시대정신'에 집중하고 그것을 견인해야 할 투자자는 국민연금 기금이다. 참고로 올해 4월 말 기준으로 이 기금규모는 1169조원이고, 이는 전세계적으로 노르웨이국부펀드(NBIM) 1987조원('23년 말 기준), 일본 공적연금(GPIF) 1588조원('23년 말 기준)에 이어 세계 3위 수준이다. 국민연금 기금의 투자원칙에도 다음 여섯 가지가 명문화되어 있다. 수익성, 안정성, 공공성, 유동성, 독립성, 지속가능성(ESG)이 그것이다.
이른바 여의도 민간 펀드들이라면 공공성과 지속가능성을 도외시하고, 오로지 수익성 위주로만 투자해도 무방하나, 국민연금 기금은 생래적으로 원칙적으로 그럴 수 없는 제약이 있다. 따라서 국민연금 기금이 여느 여의도 기관투자자들처럼 단기 수익성의 관점에서만 투자한다면 그것은 원칙에 반하는 것이다. 합목적적이지 않다. 따라서 장기적 관점에서 그 투자원칙을 지키며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투자를 하고, 또한 그것을 이끄는 것이 국민연금 기금 투자의 본령이자 본분이다.
최근 국민연금의 중기자산배분에 따르면 2020년 21%에 달했던 국내주식 투자비중을 2025년 14.9%로 약 6% 포인트 줄이고, 2029년에는 13%까지 더 줄여 나간다고 한다. 반면 내년 말까지 해외주식 목표 비중은 36%까지 늘리는 것을 감안하면 국내주식과 해외주식간 절대적 비중 차이가 23% 포인트 가량 벌어진다. 물론 국민연금이 비중을 줄인다고 하더라도 당분간은 전체 운용자산 규모(AUM) 증가하는 폭이 더 크기 때문에 국내주식 절대규모는 늘어난다.
하지만 그 규모는 완만하게 증가할 것이다. 이 국내주식 비중감소에는 중단기 수익률 극대화 논리가 자리잡고 있는데, 이는 앞서 언급했듯 공적 연금의 '공공성', 유니버셜 오너로서의 '지속 가능성' 원칙에 반한다. 또한 겉으로 남는 듯 보이나, 뒤로는 밑지는 투자다.
한편 우리나라에서 '밸류업 정책'이 도입 시행되었듯이 일본에서도 2014년부터 이와 유사한 일본 자본시장 재흥(再興) 정책이 실시되었다. 국내의 밸류업 정책은 앞선 일본의 정책을 벤치마크한 것이다. GPIF는 공적연금의 투자 본령과 그 위상에 걸맞게 당시 자본시장 재흥정책을 시대정신으로 파악하고 이에 적극 호응하였다.
2014년 10월 당시 GPIF의 일본 국내주식 비중 12%를 현재 25%로 두 배 가까이 늘리면서 최근 니케이지수 사상최고치 갱신의 불쏘시개 역할을 한 것도 자본시장 재흥정책에 협력한 결과다. 아울러 GPIF는 니케이 지속상승의 과실과 재팬 디스카운트 해소 과정에서의 업사이드를 고스란히 투자수익으로 돌릴 수도 있었다. 참고로 2014년 니케이 16000p에서 올해 41000p로 156% 상승했으나, 코스피는 동기간 47% 상승에 불과했다. 소위 "꿩 먹고, 알 먹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의 투자를 한 셈이다.
아울러 2015년부터 GPIF는 당시 투자 총괄인 히로 미즈노씨의 리더십하에서 ESG투자의 글로벌 리더로 확고히 포지셔닝했다. 심지어 일본의 구인난과 경제활동인구 감소에 기여하기 위해 GPIF는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양성평등 및 성 다양성 성과가 좋은 기업'만으로 구성된 Index를 런칭해 우리 돈으로 수십조 원을 투자하기도 했다.
또한 범용 ESG인덱스를 만들어 대규모 투자를 감행했다. 일본기업들의 거버넌스 개혁을 위해 투자자와 기업들간의 플랫폼을 만들어 접점을 모색하는데 있어서의 조정자 역할을 자임했다. GPIF가 민간펀드처럼 펀드 수익률 개선에만 몰두한 것이 아니라, 경제와 산업의 시대정신에 포커싱하고 그것을 주도해 나감으로써 그것의 선진화를 견인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모름지기 공적 연기금 규모는 단순히 기금운용수익률이라는 변수뿐만 아니라, 국민경제의 지속가능한 성장, 산업 및 패러다임 대전환에 따른 경쟁력 강화, 그에 따른 일자리 및 고용 확대, 그로 인한 연금 가입자 및 연금수입 증대에 의해서도 결정된다. 전자 못지않게 후자의 측면들도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연금은 그 투자 및 기금운용 행위를 통해 이러한 국민경제의 거시적 체질 개선과 선진화에도 관심을 갖고 기여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근본적으로 여의도 민간투자들의 방식과의 큰 차이점이다. 네덜란드 APG 기금도 최근 자국 투자 비중을 21년 5.7%에서 2022년 6.6%로 늘렸다. 이들은 ESG투자에 있어서도 전 세계적 베스트 프랙티스를 제시한다. 그 이유는 공적연금인 만큼 단순 수익률 제고뿐만 아니라 기금 투자 행위가 국가 번영에 도움이 되어야 하는 까닭이라고 밝혔다.
현재 1100조가 넘는 국민연금 기금은 결코 1,2년 단기수익률에 일희일비하는 '투기'를 하면 안 된다. 정부는 그것을 조장하거나 독려해서도 안 된다. 장기투자를 할 수 있도록 그 여건을 조성해 줘야 한다. 그 투자 행위 내에 시대정신을 반영하고, 투자행위를 통해 또 다시 시대정신을 견인해 내는 공적 연기금으로서의 선순환적 소임을 다해야 한다.
한편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인정한다면 그것은 한국 주식이 싸다는 것의 반증이고 그렇다면 그 바겐세일에 참여해 긴 호흡으로 디스카운트 유발 요인들을 국민연금이 갖고 있는 주주권을 활용하여 풀어 나가고, 저탄소 경제 대전환의 액셀러레이터 역할도 자임함으로써 더 큰 업사이드 수익률을 향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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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웨이 임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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