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보 업계 1위 삼성화재, 21면 만에 방카슈랑스 철수IFRS17 도입으로 저축성 보험 불리···GA 강화 영향도생명보험 업계는 사정 달라···규모 크고 유동성 확보 이점
방카슈랑스는 은행(Banque)과 보험(Assurance)의 합성어로 보험사가 은행과 제휴해 보험상품을 위탁 판매하는 제도를 의미한다. 한국에서는 2003년 9월부터 방카슈랑스가 도입돼 소비자가 은행에서도 보험에 가입할 수 있게 됐다. 은행에서 판매되는 만큼 연금보험과 같은 저축성 보험이 전체 판매의 70~80%를 차지한다.
손해보험사들의 주 상품인 보장성 보험은 상품 구조가 복잡하고 까다롭다. 은행원이 판매 자격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보험 설계사보다 판매하기 어려운 상품이다. 이 때문에 방카슈랑스 판매 상품은 저축성 보험이 대부분이었다. 새 회계제도(IFRS17)에서는 저축성 보험보다 보장성 보험이 보험계약마진(CSM) 확보에 유리하다는 점도 손해보험사들의 방카슈랑스 채널 이탈의 요인으로 꼽힌다.
다만 생명 보험사들은 원래 저축성 보험이 주력상품이었던 만큼 사정이 조금 다르다. 매출 규모를 유지하거나 늘리는 데 도움이 되고 저축성 보험은 일시납이 많아 유동성 확보 측면에서도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손보사는 방카 이탈하는데···생보사는 여전히 성업
11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삼성화재는 지난 1월부터 방카슈랑스 신규 판매를 중단하고 기존 상품만 관리하기로 했다. 방카슈랑스는 보험사가 은행과 제휴를 맺어 상품을 판매하는 것이다. 삼성화재가 방카슈랑스 영업을 중단하는 것은 지난 2003년 영업을 시작한 이후 21년 만이다.
삼성화재는 앞서 2016년 방카슈랑스 판매 제휴 은행을 줄이는 등 방카슈랑스 비중을 축소했다. 당시 삼성화재는 KB국민·우리·NH농협·IBK기업·경남·대구은행을 제외한 다른 은행에서 방카슈랑스 판매를 접었다.
당시 삼성화재는 방카슈랑스 제휴 유지 은행에서 저축성보험 대신 보장성보험 위주로 판매하도록 전략을 선회했다. 중소형 저축은행에서는 방카슈랑스 상품 중 개인보험의 판매를 중단했다. 그러다 결국 판매가 줄고 수익성에도 크게 도움이 되지 않자 전체 상품의 신규 판매를 중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메리츠화재의 경우도 2016년 6월부터 방카슈랑스 채널에서 장기손해보험상품 판매를 중단했다. 메리츠화재는 방카슈랑스 채널에서 일반손해보험상품의 판매는 유지했으나, 실적 대부분을 차지하던 장기보험 판매를 중단해 방카슈랑스 영업을 중단한 셈이 됐다. 흥국화재는 공식적으로 방카슈랑스 채널 영업을 중단하지는 않았으나, 지난해 말부터 장기손해보험상품의 판매는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손해보험협회에 따르면 모집 형태별 원수보험료에서 방카슈랑스 채널에서 거둬들인 보험료는 지속해서 감소하는 추세다. 방카슈랑스 채널에서 손해보험사가 거둔 보험료는 2017년만 해도 7조원에 달했다. 그러나 2018년 6조원대로 감소했고 다음 해인 2019년에는 5조원대 후반으로 줄었다. 이후 2022년에는 5조3000억원까지 떨어졌다.
전체 모집 채널에서 방카슈랑스 채널이 차지하는 비중도 줄었다. 2017년 8%였던 방카슈랑스 채널 비중은 2022년 4.4%로 5년 만에 반 토막이 났다. 장기손해보험 가입 경로에서 방카슈랑스를 통한 가입 비중은 2.3%에서 1.9%로 감소했다. 가뜩이나 얼마 되지 않는 비중이 더욱 줄어든 것이다.
다만 생명보험업계는 손해보험업계와는 조금 차이가 있다. 최근 들어 방카슈랑스 채널의 수입보험료가 줄어드는 추세를 보이고 있지만, 여전히 해당 채널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생명보험협회 월간생명보험통계를 살펴보면 올해 1~2월 저축성 상품의 판매 건수는 8만1373건으로 전년 동기(9만2660건) 대비 12.2%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수입보험료는 450억300만원으로 전년 동기(593억3600만원) 대비 24.1% 감소했다.
저축성 보험 판매가 줄며 방카슈랑스 채널에서의 상품 판매도 감소했다. 올해 1~2월 방카슈랑스 채널을 통해 판매된 보험은 총 2만3106건으로 전년 동기(3만8125건) 대비 39.4%나 감소했다. 수입보험료는 259억9700만원으로 전년 동기(426억2600만원) 대비 39% 줄었다.
2022년과 지난해를 비교해 보면 2022년 저축성 상품 판매 건수는 42만6066건이었으나, 지난해는 40만3998건으로 5.2% 감소했다. 이 기간 수입보험료는 3076억5500만원에서 2301억5800만원으로 25.2% 줄었다. 방카슈랑스 채널을 통해 판매된 보험 건수는 12만2150건에서 13만3220억원으로 9.1% 늘었지만, 수입보험료는 1992억200만원에서 1383억원으로 30.6%나 줄었다.
지난 2022년 전체 모집 채널에서 거둔 초회 수입보험료에서 방카슈랑스 채널이 차지하는 비중은 70.2%로 나타났다. 최근 6년(2017년~2022년)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이나, 여전히 상당 수준을 방카슈랑스 채널을 통해 판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개인생명보험 가입경로에서 방카슈랑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2년 말 10.8%에서 지난해 6월 23.2%로 13.6%포인트 늘었다.
매출 유지·유동성 확보 '이점', IFRS17·GA 확대 '이탈 요인'
방카슈랑스 채널은 매출 규모를 유지하거나 늘리는 데는 도움이 된다. 특히 저축성보험은 일시납인 경우가 많아 판매 물량 대비 손쉽게 초회보험료를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생명보험사 상품 중에는 종신보험이나 연금보험과 같이 보험료를 오랫동안 내고 만기 때 목돈을 환급받는 상품이 많아 유동성 관리가 필수적이다. 이 때문에 초회보험료를 당겨와 유동성을 확보하고 본업 외 투자 부문에서 실적을 올릴 수 있는 방카슈랑스 채널이 필요하기도 하다. 생명 보험사들은 이미 방카슈랑스 채널에서 어느 정도 시장 규모를 유지해 왔기 때문에 아예 팔지 않기도 어렵다.
그러나 보장성 보험의 경우 남는 것이 거의 없고 불완전 판매에 대한 우려도 존재한다. 저축성 보험은 상품 구조가 크게 복잡하지 않지만, 보장성 보험은 상품이 복잡해 가입자에게 충분한 설명이 필요하다. 불완전 판매가 발생하면 은행과 보험사 중 책임소재도 고민거리다. 이렇다 보니 보장성 상품 위주인 손해보험사의 경우 방카슈랑스 채널에 큰 힘을 주기도 애매하다.
아울러 손해보험사들의 방카슈랑스 채널 축소는 IFRS17 도입으로 이미 예견된 수순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IFRS17에서는 저축성보다 보장성 보험이 CSM 확보에 유리하다. CSM은 보험사의 성장 가능성을 가늠하기 위한 지표로 IFRS17 도입 이후 중요도가 높아졌다. CSM은 미래예상이익을 계약 시점에 부채로 인식하고, 이를 보험계약 기간에 상각해 당기순이익으로 인식한다.
저축성 보험은 고객에게 받은 보험료를 나중에 보험금으로 돌려줘야 하는 데 반해, 보장성 보험은 고객에게 보험금을 지급할 수도 있고, 지급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저축성보험이 책임준비금 부담도 더욱 크다.
방카슈랑스를 통해 판매하는 저축성 보험은 보험사 입장에선 은행에 수수료도 지불해야 한다. CSM 확보에 도움 크지 않은 저축성 보험을 수수료까지 내면서 파는 것은 실익이 없다는 것이다.
법인보험대리점(GA) 채널이 확대되면서 방카슈랑스 채널의 시장 규모가 줄어든 것도 원인으로 꼽힌다. 보험사들이 방카슈랑스 채널에 진출했던 이유는 판매 채널의 확대였다. 보험업계는 전속 채널이나 텔레마케팅(TM) 채널 영업으로는 한계에 봉착하자 다른 업종과의 제휴로 활로를 모색하려 했다.
그러나 GA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졌고 굳이 우량물건이 많지 않은 방카슈랑스 채널을 강화할 이유도 사라졌다. 실제 한국보험대리점협회가 발표한 '2023년 하반기 경영공시'를 보면 대형 GA는 2022년 63개에서 지난해 70개로 7개(11.1%) 증가했다. 설계사는 17만8766명에서 19만8517명으로 1만9751명(11.0%)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대형 GA 신계약 건수 경우 생명보험은 2022년 250만건에서 지난해 327만건으로 77만건(30.6%)증가했으며 같은 기간 손해보험은 1120만건에서 1304만건으로 184만건(16.5%) 늘어났다.
한편 일부에서는 손해보험사들의 방카슈랑스 이탈로 은행권이 특정 보험사 상품 판매 비중을 25% 이내로 제한하는 25%룰을 지키기 어려워질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25%룰은 개별 은행에서 한 보험사 상품의 판매 비율이 25%를 넘지 않도록 한 것으로 대형 보험사가 방카슈랑스 시장을 독점하거나 은행의 계열 보험사 밀어주기를 막기 위해 도입됐다.
25%룰은 생명보험사와 손해보험사를 각각 구분해서 비중을 정한다. 올해 삼성화재가 방카슈랑스를 철수하기로 하며 손해보험사에서 방카슈랑스 채널을 보유한 곳은 DB손해보험, 현대해상, KB손해보험, 하나손해보험 등 5곳으로 줄었다. 다만 하나손보는 하나은행에만 방카슈랑스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25%룰을 지키려면 나머지 4개 사가 동일하게 25%의 점유율을 가져가야 한다는 이야기다.
다만 손보업계는 일부 회사가 이탈했다 하더라도 25% 규정 준수는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은행권은 25%룰을 맞추면서 금융소비자 선택권도 보호하기 위해 방카슈랑스 4단계(실손보험·자동차보험·변액보험·종신보험 등 판매 상품 허용 확대)를 풀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왔다. 지난해 은행연합회 '방카슈랑스 20주년 세미나'에서도 방카슈랑스 판매 비율을 손·생보 통합으로 적용하는 방식 등으로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방카슈랑스 4단계는 2008년 4월 시행이 추진됐다가 은행업계의 반발로 무산된 바 있다. 은행만 혜택을 보는 불균형 구조가 심화하고 불완전 판매 가능성 등 금융소비자들의 피해가 우려된다는 이유에서다. 최근 들어 GA 영향력 확대로 설계사들의 입지가 더욱 강화돼 4단계 완화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뉴스웨이 김민지 기자
kmj@newsway.co.kr
저작권자 © 온라인 경제미디어 뉴스웨이 ·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