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트렌드 책이 많이 출간되는 이유에 대해서는 많이 언급됐다. 그 가운데 불확실성의 시대에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서라는 지적이 있다. 불안 심리가 작동하고 있고 이에 대한 준비 행동이 트렌드 서적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트렌드는 미래가 아니라 현재의 추세를 말하는 것인데 이미 트렌드가 된 것은 이미 경쟁력을 갖지 못한다. 이미 책으로 출간이 될 정도라면 다른 이들은 모두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즉, 고급 정보라고 할 수 없다. 비록 내년도 트렌드를 말하지만, 새해가 밝게 되면 트렌드는 가치가 없다.
오히려 한국 사회에서는 집단주의 문화 때문에 뒤처지거나 배제 소외되는 현상을 피하기 위한 나름의 조처일 수 있다. 개인주의 문화에서는 다른 이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행동하거나 자신의 판단과 선택이 중요할 뿐이다. 트렌드를 오히려 스스로 만들어 가는 데 관심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과 같은 집단주의 문화가 일반인 나라에서는 추세를 따라가는 행태가 더욱더 두드러지기 때문에 트렌드 분석에 대한 선호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최소한 세상의 흐름을 알고 낙오되지 않기를 바란다. 때문에 트렌드 서적이 오히려 트렌드를 이룰 수 있다.
그런데 트렌드 서적의 주 대상층은 개인이라기보다는 기업과 언론이라고 할 수 있다. 출간 시일이 빨라지는 것도 사실상 기업과 언론에 눈에 들기 위해서다. 특히, 언론매체는 항상 새로운 이슈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트렌드 서적들은 항상 어떤 새로운 용어들을 사용한다. 이런 용어들은 새로운 개념을 선호하는 뉴스 매체를 통해 퍼진다. 그 시작점을 따라가면 책으로 연결된다. 일종의 스피커, 확성기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거의 대다수 트렌드 책이 기업의 상품이나 서비스의 개발이나 마케팅에 관련된다. 기업은 소비자의 취향이나 심리를 파악해서 상품 기획과 판매에 반영하려 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강연이나 컨설팅이 요청된다. 꼭 기업이 아니어도 집단이나 조직, 단체에서 관련 요구가 있게 되면서 트렌드 비즈니스와 이코노미가 형성되는 것이다. 일반 개인의 책 구매와는 비교할 수 없는 수익을 낳게 되므로 트렌드 서적들은 여기에 도전한다. 따라서 개별 개인들을 위한 트렌드 분석이나 미래 예측과는 거리가 있다. 기업이나 마케팅, 소비에 초점을 맞춘다면 사실의 왜곡이나 치우침이 항상 발생할 수 있다. 더구나 개인의 미래에는 도움이 되지 않게 된다.
무엇보다 많은 트렌드 서적이 주장하는 내용이 트렌드가 아닌 경우가 많다. 언론매체를 비롯해 세간의 주목을 끌어야 하므로 단어를 만들어 내는 경우가 잦다. 그런데 단어가 의미하는 내용은 거의 대동소이하다. 비슷한 의미나 현상을 말만 바꾸어 표현한다. 특히 해마다 트렌드 서적을 내는 경우 이런 일이 빈번하다. 차라리 몇 년 동안 일정한 트렌드가 지속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정직할 것이다. 매해 새롭게 트렌드 현상이 생길 리 만무하다. 트렌드는 새해를 의식하지 않고 관심도 없다. 이런 용어의 조어 방식은 트렌드를 반영하거나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차원이 강하다.
한편 이렇게 만들어진 트렌드 용어들은 트렌드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 시그널이거나 이머징 이슈가 대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시그널은 아주 미세한 신호라고 할 수 있고, 이머징 이슈는 아직 본격적으로 세상에 드러나지 않는 상태의 이슈들이다. 이머징 상태는 시그널보다는 이를 인지하고 공유하는 이들이 늘어난 상태지만 큰 흐름은 아니다.
수용 주기 모델에 따라 설명할 수 있는데 대부분의 트렌드라고 주장된 것들은 크리에이티브와 얼리 어답터가 공유하고 있는 내용이다. 맨 처음에 시도하거나 만든 이들 그리고 일부 소수의 전문가만이 공유하는 것이나 바람직하다고 보는 아이템들이다. 정말 트렌드가 되려면 캐즘(협곡)을 넘어 전기 다수 수용자(Early Majority)에 수용이 되어 확산하고 있어야 한다. 이들은 일반인들 가운데 수용력이 좀 빠른 이들로 더구나 트렌드의 미래의 예측이라면 이들에게 확산할 가능성을 언급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트렌드 서적에서는 이들의 움직임과는 관계없이 새롭게 형성되는 현상에 대해서 트렌드라고 확신한다.
이런 상황이라면 자칫 전문가들이 생각하는 추세 분석에 불과해진다. 거의 캐즘의 협곡을 통과하지 못하고 마는데 트렌드 서적은 이를 언급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일반 시민 그리고 소비자 사이에서 나타나고 있는 대체적인 추세이어야 한다. 그것도 막 확산이 될 여지가 인사이트 되거나 관찰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좀 더 나은 정보를 남보다 더 먼저 얻으려고 트렌드 정보를 취하려 하면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 오히려 시그널이나 이머징 이슈(emerging issue)를 먼저 선점해야 한다. 즉 미래의 시그널, 이머징 이슈에 관련한 책을 출간하거나 독서하는 것이 더 바람직할 수 있다. 물론 반드시 그것들이 대세 트렌드가 된다는 보장이 없다.
더구나 트렌드는 유행이나 패드(fad)처럼 단기가 형성되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2~3년은 일정하게 지속하는 현상이다. 따라서 매번 새롭게 바뀐다고 생각할 수 없다. 그것은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인간의 현상, 사회과학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트렌드 서적이나 담론보다는 주변 사람에 더 관심을 두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어차피 트렌드 담론의 관심사는 개인이 아니라 자본과 기업이기 때문이다. 물론 다행인지 이미 많은 독자는 트렌드 서적을 애지중지하지 않는다. 읽어도 하나의 참고 거리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도 있게 되었다. 이런 대중심리를 볼 때 트렌드 서적의 미래도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올바로 트렌드를 보고 현명하게 판단하는 독자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우리는 기업이나 상품의 트렌드보다 각 개인이나 개인이 속한 사람들의 트렌드가 미칠 영향 그리고 미래를 가늠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그 앞의 시그널이나 이머징 이슈에 더 주목해야 하지만 트렌드라고 우기거나 집착하면 곤란하다. 또한, 그러한 서적이나 담론을 선별하고 필터링해서 취할 수밖에 없다.
뉴스웨이 안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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