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주
- ‘창업자로부터 온 편지’는 한국 경제계의 거목으로 불리는 대기업 창업자들부터 미래를 짊어진 스타트업 CEO까지를 고루 조망합니다. 이들의 삶과 철학이 현직 기업인은 물론 창업을 준비하는 젊은 세대에게도 좋은 길잡이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여기 ‘바깥’ 이상으로 ‘안’에 신경 쓴 기업가가 있습니다. 바로 한일시멘트의 창업자, 우덕(友德) 허채경 명예회장입니다.
안에 신경 썼다는 말, 무슨 뜻일까요?
허 회장은 1919년 개성에서 태어났습니다. 중학교 졸업 후부터 광산에 들어가 갱목을 납품하는 등 일찍이 사업에 투신했는데요. 석회석을 통해 전도유망한 청년사업가로 이름을 알린 것도 잠시,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맙니다.
전쟁 통에 혈혈단신 월남한 허 회장은 부산에서 수산물 판매로 돈을 다시 모았습니다. 휴전 이후 이곳저곳에서 복구사업이 벌어졌고, 이는 석회석 사업을 다시 한 번 일으키는 계기가 됩니다.
1961년엔 20여 명의 공동출자를 견인, 한일시멘트를 세웠습니다. 이후 내실을 꾸준히 다지다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큰 도약의 기회를 잡습니다. 과천에 조성되기로 한 놀이공원을 허 회장과 한일시멘트가 맡은 것이지요.
허 회장은 재임 기간 내내 공장 규모를 차근차근 늘리며 입지를 넓혀갔는데요. 그럼에도 사업이 ‘시멘트’의 범주를 벗어나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모험보단 지금 선 길을 올곧게 걸어가는 정도경영이 그의 스타일이었던 것.
외연을 넓히는 데 에너지를 쏟는 대신, 허 회장은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습니다. 바로 회사 내부, 직원, 즉 ‘사람들’로 말입니다. 인간 존중이라는 기본 없인 기업도 빛이 바랜다고 판단한 셈입니다.
“가장 두려워해야 하는 건 ‘글 무식’이 아니라 ‘인(人) 무식’”
허 회장의 이런 마음가짐은 업계 최고 수준의 복리후생제도로 이어졌습니다. 대표적인 것으로 사내 근로복지기금을 꼽을 수 있는데요.
기금을 통해 주택자금이나 생활안정자금 명목으로 대출을 제공하는 한편, 자녀 두 명까지 대학 학자금 등을 전액 지원하기 시작한 것. 이 제도는 기업들 돈이 말랐던 외환위기 당시에도 축소나 폐지되지 않았습니다.
허 회장의 복지 지도엔 새 일자리를 만들고자 함께 노력하는 등 일을 그만두는 직원을 위한 것도 있었습니다. 시킬 때만 ‘가족 같이’를 내세우는, 일방향적인 희생을 요구하는 일부 기업과는 확실히 달랐지요.
이밖에 직원 목소리에 늘 귀 기울인다는 취지로 운영 중인 지금의 제안제도 또한 허 회장이 손수 만들었습니다. 물론 좋은 의견엔 그에 걸맞은 보상도 잊지 않았다고 합니다.
직원을 향한 이 같은 물심양면의 지원, 노사 간 신뢰를 두텁게 쌓아올리는 밑거름이 됐다고 할 수 있는데요. 실제로 1965년 노조 설립 이래 한일시멘트에선 지금껏 단 한 차례의 파업도 없었습니다.
한일시멘트는 현재 단양공장을 비롯해 25개의 레미탈·레미콘·슬레그시멘트 공장과 유통기지를 보유한 국가대표 시멘트 회사가 됐습니다. 업계에선 허 회장을 통해 자리 잡은 연대감과 내실이 이 같은 발전의 토대가 됐다고 말합니다.
한일시멘트 홈페이지에선 ‘한일人 이야기’라는, 직원 스토리가 연재 중입니다. 허 회장이 봤다면 꽤 좋아했을 법한데요.
사업이든 무엇이든, 바깥으로 뻗어나가기 위해선 먼저 ‘우리’ 안에 따뜻함을 불어넣을 줄 알아야 한다는 가르침. 그가 남긴 유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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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웨이 이성인 기자
silee@newsw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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