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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크 리 ‘올드보이’, 분명 다른 힘과 맛이 느껴진다

[무비게이션] 스파이크 리 ‘올드보이’, 분명 다른 힘과 맛이 느껴진다

등록 2014.01.10 15:51

김재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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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파이크 리 ‘올드보이’, 분명 다른 힘과 맛이 느껴진다 기사의 사진

할리우드 버전 Brand New ‘올드보이’가 10일 국내 언론에 첫 공개됐다. ‘인사이드 맨’ ‘25시’ ‘말콤X’ ‘모베터 블루스’ ‘똑바로 살아라’ 등 걸출한 작품들을 만들어 낸 할리우드의 대표 흑인 스타 감독 스파이크 리가 메가폰을 잡았다. 조쉬 브롤린, 샬토 코플리 두 걸출한 성격파 배우가 두 톱으로 등장한다. 무엇보다 이 영화의 핵심 포인트는 박찬욱 감독의 2003년 개봉작 ‘올드보이’의 리메이크 버전이란 사실이다. 박 감독 역시 일본 동명 만화를 리메이크했다. 박 감독의 ‘올드보이’는 개봉 이듬해 제 57회 프랑스 칸 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다. 여러 ‘올드보이’ 마니아는 지금도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벌떡 일어나 “올드보이!”를 외치는 장면을 잊지 힘들 것이다. 벅찬 감정을 억누르고 무대에 오른 박찬욱 감독의 모습까지도.

‘올드보이’의 매력은 ‘가둔자와 갇힌자의 상호복수 혹은 이중복수극’이란 좀처럼 보기 힘든 설정에서 온다. ‘복수’ 코드는 인물들 간 감정의 결을 기승전결의 구분점으로 분명하게 나눌 수 있는 매력이 있다. 이는 하고자 하는 얘기를 분명히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 준다. 관객들에게 일종의 대리만족을 주는 쾌감에서도 만족감이 크다. 대리폭력을 즐길 수 있는 유일한 영화적 장치라고 봐도 무방하다. 더욱이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는 원작 만화에선 없는 ‘근친상간’이란 ‘충격’이 더해져 ‘반전’의 의미를 분명하게 담아냈다.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가해자로 변화되는 상상 밖의 반전이 ‘올드보이’가 가진 충격의 실체였다.

 스파이크 리 ‘올드보이’, 분명 다른 힘과 맛이 느껴진다 기사의 사진

스파이크 리 감독의 ‘올드보이’가 박찬욱의 ‘올드보이’와 다른 점은 감금의 세월이 15년에서 20년으로 늘어난 점이다. 원작 만화에선 10년이다. 시간의 증가는 가둔자가 숨기고 싶고 들키기 싫던 치부의 크기와 비례한다. 그 크기와 함께 시간도 증가했다. 그렇다면 스파이크 리의 ‘올드보이’는 박찬욱의 ‘올드보이’에 비해 그 복수의 강도 그리고 의미가 더 쎄진 결과물일까.

‘올드보이’가 가진 복수극의 기본 명제는 ‘모래알이든 바윗덩어리든 물이 가라앉기는 마찬가지’란 유명한 대사에 모두 담겨 있다. 이미 ‘올드보이’의 결말을 모두가 알고 있기에 이 말에 의미는 관객들에게 특별하지만 특별하지 않은 이중성을 가진다. 생각없이 내 뱉은 말 한 마디가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알 수 없는 사실을 말하고 한다. 다시 말해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결과는 마찬가지며 그 결과가 지금의 과정을 만들어 냈다’는 다소 철학적인 주제를 담는다.

‘오대수’의 ‘올드보이’나 ‘조 두셋’의 ‘올드보이’ 모두 ‘모래알’과 ‘바윗덩어리’가 결국 물에 가라앉기에 15년 그리고 20년이란 감금의 복수로 이어졌다고 말한다. 여기서 원작(?)과 리메이크의 차이를 보자. 박찬욱 감독은 ‘15년’이란 세월의 흐름을 건조의 미학으로 건드린다. 감금방 속 오대수의 모습을 상체 이상의 클로즈업, 얼굴 이상의 익스트림 클로즈업을 번갈아 사용한다. 15년 간 감금된 오대수의 상황과 심정의 변화를 교차적으로 관객들에게 전달하고자 선택한 방식 같다. 인물에만 집중시키기 위한 방법이 아닌 갇힌 상황에 대한 설명과 갇힌 자의 심정이 시간의 흐름 속에 번갈아 전달된다.

 스파이크 리 ‘올드보이’, 분명 다른 힘과 맛이 느껴진다 기사의 사진

반면 스파이크 리의 ‘올드보이’는 비슷한 방식을 취하지만 좀 더 단순화 시켰다. 감금방 시퀀스 러닝타임이 박찬욱의 ‘올드보이’에 비해 현저히 짧다. 영화적 시간으론 무려 5년이 늘어난 20년의 세월이지만 극단적으로 생략된 부분이 보인다. 그냥 “아마도 이럴 것이다”란 단순한 지문 형식의 풀이법에 불과할 정도다. 군살을 덜어냈다는 의미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올드보이’ 속 감금의 시간은 인물이 복수를 다짐하는 원동력이다. 그 원동력을 감소시킨 다소 의아스런 선택이다.

‘올드보이’ 최고 명장면 가운데 하나인 ‘장도리’ 시퀀스는 스파이크 리 감독 최고의 오점으로 남을 실패다. 원작 속 ‘올드보이’에선 2분 동안 수십명의 조직원들과 오대수가 처절한 사투를 벌인다. 원래 70~80컷 분량의 이 시퀀스는 박찬욱 감독이 고심 끝에 ‘원씬 원컷’으로 수정했단다. 오대수의 처절함과 외로움을 보여 주기 위해 선택한 이 장면에선 광각렌즈를 이용한 극단적인 클로즈업이 일자 형태의 폐소공포적 장소와 맞물려 묘한 이질감을 선사했다.

반면 스파이크 리 ‘올드보이’는 리드미컬한 액션에 치중했다. 계단식 구성으로 이뤄진 장면은 흡사 게임의 법칙이 적용된 듯 ‘판’을 깨고 나가는 방식이다. 20년이란 세월의 울분을 토해내는 조 두셋의 내면이 아닌 단순히 ‘멋들어진’ 몸 놀림을 보여주기 위한 디렉션에만 집중한 모양새다.

 스파이크 리 ‘올드보이’, 분명 다른 힘과 맛이 느껴진다 기사의 사진

이우진(유지태)과 에드리안 프라이스(샬토 코플리)의 매력 대결에선 에드리안에게 좀 더 점수를 주고 싶다. 독특한 악센트의 영어 발음부터 에드리안의 정체성을 상징시키는 듯하다. 극중 미국에서 유럽으로 이주한 가문의 후계자로 나오는 그는 엄청난 부를 바탕으로 이번 계획 전체를 설계한다. 이는 이우진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우진이 다소 정적인 이미지의 모습(요가 장면)을 고수한다면 에드리안은 감정 표현에 솔직한 모습을 보인다. 조와 마리의 모습이 담긴 CCTV를 보는 장면에서 알 수 없는 상실감의 표정은 에드리안의 숨겨진 과거가 무엇인지 더욱 궁금증을 자극시킨다. 그의 몸 한쪽을 뒤덮은 흉터가 이 궁금증의 해답이다.

전체적인 흐름은 원작이 건조한 시각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는 반면, 리메이크 ‘올드보이’는 순간의 스타일에 집중한다. 대부분이 전형적인 할리우드 무비 프레임의 반복이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리메이크 ‘올드보이’의 최고 미덕이라면 마지막 조 두셋의 선택이다. 원작이 한국적 선택의 이해도를 돕는다면, 리메이크 ‘올드보이’에서 유일한 진짜 리메이크의 의미가 그 한 컷에 담겨 있다.

 스파이크 리 ‘올드보이’, 분명 다른 힘과 맛이 느껴진다 기사의 사진

‘올드보이’는 박찬욱이란 희대의 ‘장르 장인’이 만들어 낸 회색 무취의 걸작이었다. 다양한 해석과 담론을 이끌어 내며 여러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한 작품이 10년이 지난 현재까지 마니아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올드보이’는 분명 걸작이다. 스파이크 리의 ‘올드보이’는 그 원작의 아우라를 최대한 재해석하기 위해 노력한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시각의 차이다. 한국적인 그리고 미국적인, 이 두 가지의 의미가 너무도 극명하게 다르기에 스파이크 리는 ‘올드보이’를 지금의 결과물로 만들어 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리메이크란 단어에 너무 집착한 듯 했다. 스파이크 리의 ‘올드보이’, 원작과 다른 맛과 힘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그 맛이 박찬욱의 ‘올드보이’에 길들여진 국내 관객들에게 어떻게 받아 들여 질지는 모르겠다. 개봉은 오는 16일.

김재범 기자 cine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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