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반도체 호황의 그림자"···외신이 韓 집값 폭등을 주목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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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호황의 그림자"···외신이 韓 집값 폭등을 주목한 이유

등록 2026.09.08 17:01

수정 2026.09.08 17:48

김선민

  기자

경기도에 위치한 아파트 단지 모습. 사진=이재성 기자경기도에 위치한 아파트 단지 모습. 사진=이재성 기자


인공지능(AI) 열풍을 타고 한국 반도체 산업이 호황을 누리는 가운데, 그 온기가 뜻밖의 곳으로 번지고 있다는 외신 분석이 나왔다. 수출과 기업 실적을 끌어올린 반도체 호황이 수도권 자산시장에도 영향을 미치면서 서울 집값 상승과 청년층의 주거 부담을 키우는 요인 중 하나로 작용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8일 한국 주택시장을 다룬 기사에서 최근 서울과 수도권 집값 상승세를 집중 조명했다. FT는 특히 AI 산업 성장으로 반도체 관련 기업과 종사자들의 부가 늘어난 점에 주목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주요 반도체 기업이 자리 잡은 수도권 거점을 중심으로 늘어난 자산과 소득이 주변 주택 수요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FT가 바라본 핵심은 단순히 "반도체 때문에 집값이 올랐다"는 데 있지 않다. AI 붐으로 기업 실적과 주가가 오르고 관련 종사자들의 자산 여력이 커지는 과정에서 그 효과가 주택시장으로까지 퍼지고 있다는 점을 짚었다. 한국 경제의 대표적인 성장 동력인 반도체 호황이 자산가격 상승이라는 예상 밖의 경로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서울 집값은 이미 세계 주요 도시 가운데서도 높은 수준이다. FT는 도이체방크 자료를 인용해 서울 도심 주택 가격이 ㎡당 2만5545달러로 홍콩과 취리히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비싸다고 전했다. 최근 10년 사이 서울 도심 주택 가격이 두 배 이상 뛰었다는 점도 함께 소개했다.

가격 상승 속도도 가파르다. FT는 이재명 대통령 취임 이후 서울 아파트 가격이 약 14% 올랐다고 전했다. 정부가 주택시장 안정을 위해 대출 규제를 강화하고 공급 확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집값 상승세가 좀처럼 꺾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기사에 등장한 31세 직장인의 사례도 이런 분위기를 보여준다. 서울 외곽에 전세로 거주하는 이 직장인이 사는 아파트의 매매가격은 약 19억원으로, 2년 전보다 30%가량 뛰었다. 그는 결혼 당시 무리해서라도 집을 샀어야 했다고 후회했다. 집값이 계속 오르면서 지금 사지 않으면 더 멀어질 수 있다는 불안이 커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FT는 이 같은 현상이 청년층의 주거 부담을 더욱 키울 수 있다고 봤다. 이미 주택이나 주식을 보유한 사람은 자산가격 상승의 혜택을 누릴 수 있지만, 무주택자는 오히려 내 집 마련의 문턱이 높아지는 구조다. 가격 상승이 다시 매수 불안을 자극하는 '포모'(FOMO·소외 공포)로 이어질 가능성도 짚었다.

반도체 호황 자금이 부동산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우려는 국내에서도 앞서 제기됐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지난 6월 성과급 지급과 임금 인상, 수출 대금의 국내 유입이 본격화하면 과거처럼 자금이 부동산 시장으로 향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반도체가 벌어온 국부가 부동산에 흡수되고 성장의 과실이 일부에만 집중돼서는 안 된다는 취지였다.

정부는 수요 억제와 공급 확대를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FT는 정부가 기존 수도권 135만가구 공급 계획에 23만가구 이상을 추가해 2030년까지 총 158만가구 이상을 공급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대출 규제도 강화했지만 시장에서는 자금력이 부족한 청년층의 주택 구입을 더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고 소개했다.

정부 대책을 둘러싼 딜레마도 소개했다. 집값을 잡기 위해 대출 문턱을 높이면 투기 수요를 억제할 수 있지만, 동시에 현금 여력이 부족한 실수요자의 시장 진입도 어려워질 수 있다. 반대로 규제를 느슨하게 할 경우 풍부해진 유동성이 다시 주택시장으로 향할 수 있다. FT는 이런 상황에서 집을 가진 사람과 사려는 사람 모두 정책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반도체 호황이 장기화할수록 이런 흐름을 더 주의해서 볼 필요가 있다는 시각도 담겼다. 기업 실적 개선과 주가 상승, 성과급 확대가 소비와 투자로 이어지는 것은 경제에 긍정적이지만, 자금이 특정 자산시장에 과도하게 몰릴 경우 호황의 효과가 고르게 퍼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FT는 결국 한국의 집값 문제가 단순한 부동산 이슈에 그치지 않는다고 봤다. AI와 반도체가 만들어낸 부가 자산시장으로 확산되는 과정에서 집값 상승과 자산 격차, 청년층의 주거 부담이 함께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경제의 성장 엔진인 반도체 호황이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주택시장에까지 파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을 FT가 주목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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