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캐시리스 사회와 금융소외

등록 2026.04.20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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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 이용은 줄고 디지털 결제는 빠르게 일상화되고 있다. 한국은행 조사에 따르면 대면거래에서 현금 이용 비중은 2024년 기준 15.9%까지 낮아진 반면 간편지급서비스 이용 규모는 2025년 기준 일평균 3,557만건, 1조 1,053억원에 이르렀다. 이제 캐시리스 사회는 더 이상 미래의 가능성이 아니라 이미 진행 중인 현실이다. 이 변화가 모두에게 같은 속도로 편리함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익숙한 사람에게는 효율과 편의의 확대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금융 접근의 문턱이 높아지는 변화일 수 있다.

캐시리스 사회는 분명 많은 장점을 갖는다. 소비자는 더 빠르고 간편하게 결제할 수 있고 사업자는 현금 보관과 정산 부담을 줄일 수 있다. 거래 기록이 남는다는 점에서 투명성과 관리 가능성도 높아진다. 그러나 소비자보호의 관점에서 중요한 것은 평균적인 편리함이 아니라 누가 이 변화에 쉽게 적응할 수 있고 누가 그렇지 못한가이다. 디지털 전환은 모든 소비자에게 같은 출발선을 제공하지 않는다. 고령층, 장애인, 저소득층, 외국인, 비도시 지역 거주자처럼 디지털 기기 사용이나 비대면 인증 절차에 익숙하지 않은 계층에게 금융은 여전히 설명과 도움, 물리적 접근을 필요로 한다. 이들에게 캐시리스 사회는 단순한 기술 변화가 아니라 금융 접근의 조건 자체를 바꾸는 일이다.

금융소외는 거창한 장면이 아니라 일상적인 불편에서 시작된다. 앱 설치와 본인인증이 익숙하지 않아 거래를 중단하고 작은 글씨와 복잡한 화면 때문에 안내를 끝까지 따라가지 못하며 비대면 설명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상품에 가입하는 일이 그렇다. 표면적으로는 같은 서비스가 열려 있어 보여도 실제로는 어떤 소비자는 쉽게 접근하고 어떤 소비자는 반복해서 배제된다. 디지털 환경에서는 이 차이가 곧바로 불이익으로 이어질 수 있다. 우대금리를 놓치거나 필요한 정보를 제때 얻지 못하고 금융사기나 불완전판매에 더 취약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금융소외의 문제는 단순한 편의의 차이가 아니라 거래의 공정성과 접근권의 문제다.

그래서 소비자보호의 기준도 달라져야 한다. 보호의 출발점은 연령이나 형식적인 취약계층 구분에만 있어서는 안 된다. 소비자가 실제로 디지털 환경에서 상품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지, 인증 절차를 감당할 수 있는지, 문제가 생겼을 때 적절한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를 중심으로 보아야 한다. 소비자보호는 취약한 소비자가 변화에 적응하기를 기다리는 일이 아니라 금융회사가 애초에 접근 가능한 거래 환경을 설계하도록 요구하는 일이어야 한다.

먼저 금융회사는 상품과 서비스의 설계 단계부터 접근성을 소비자보호의 핵심 요소로 반영해야 한다. 쉬운 화면 구성, 큰 글씨, 단순한 인증 절차, 반복 확인 장치, 이해하기 쉬운 설명 체계는 부수적인 배려가 아니라 기본적인 보호 장치가 되어야 한다. 설명을 했다는 사실만으로 책임을 다했다고 볼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소비자가 실제로 이해하고 이용할 수 있는가이다.

또한 판매와 이용 과정에서는 인적 개입이 가능한 보조채널을 충분히 확보할 필요가 있다. 디지털 전환이 확대될수록 오히려 대면창구, 전화상담, 현장지원 같은 장치는 더 중요해질 수 있다. 금융위원회가 2026년부터 점포폐쇄 대응방안을 강화하고 1km 내 점포 간 통폐합에도 절차를 적용하며 점포폐쇄 지역의 현금 접근성 제고를 위해 공동 ATM 확대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점포와 ATM의 축소를 단순한 비용 효율성의 문제로 볼 것이 아니라 금융 접근권의 문제로 다루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아울러 소비자보호의 무게중심은 사후 구제보다 사전 예방에 놓여야 한다. 취약한 소비자가 손해를 입은 뒤 분쟁을 처리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상품 가입 이전에 이해 가능성을 확인하고 이용 과정에서 이탈하거나 혼란을 겪지 않도록 지원하며 사고 발생 시에는 책임과 구제 절차가 신속하게 작동하도록 해야 한다. 최근 디지털금융안전법 제정을 추진하며 보안과 책임 체계를 강화하려는 것도 이러한 흐름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캐시리스 사회에서 소비자보호는 더 이상 부수적인 규제가 아니라 디지털 금융의 신뢰를 유지하는 핵심 조건이다.

캐시리스 사회의 성숙도는 현금을 얼마나 빨리 줄였는가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 더 중요한 것은 디지털 전환 속에서도 누구도 금융시장에서 밀려나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일부 소비자의 편의를 기준으로 금융을 설계하면 효율은 높일 수 있어도 공정성과 신뢰는 약해질 수 있다. 캐시리스 사회가 지속가능하려면 속도보다 포용, 기술보다 접근성, 혁신보다 소비자보호의 원칙이 먼저 서야 한다. 금융소외를 줄이는 일은 선택적인 배려가 아니라 캐시리스 사회의 정당성을 지탱하는 조건이다.

최미수 서울디지털대학교 세무회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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