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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삼성의 유비무환(有備無患)?

전문가 칼럼 류영재 류영재의 ESG 전망대

삼성의 유비무환(有備無患)?

등록 2024.10.29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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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의 유비무환(有備無患)? 기사의 사진

'사후약방문'보다는 위기 징후를 감지하는 즉시 예방 태세를 갖춰야 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들 나간 소는 돌아오지 않는다. 호미로 막을 건 반드시 호미로 막아야 한다. 따라서 '유비무환(有備無患)'은 세상사에 널리 적용가능한 일반원리가 아닐까. 그렇다면 한국 사회에 유비무환의 유전인자가 내재하고, 그것이 적절하게 작동해 왔을까?

우리 역사를 복기해 보자. 우선 구한말을 돌아볼 때 뼈 아프다. 당시 제국주의적 서세동점의 시대에 우리는 쇄국으로 일관하다 일제 침략에 속수무책 당했다. 결과적으로 민족사적 수치인 일제 식민 지배를 거쳐 우리는 근대국가의 뼈대를 마련할 수 있었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당시 조선이 내부 분열을 잘 수습하고 외부로 빨리 시선을 돌려 선제적 근대화를 추진하고 미국 영국 등과의 동맹 관계를 공고히 할 수 있었다면 일제 침략에 그토록 일방적으로 당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2차세계대전 이후 우리는 이념으로 갈라져 세계 전쟁사에 남을 참혹한 한국전쟁을 겪었다. 당시 군인 민간인 실종자 피학살자만 해도 남북한 전체 인구의 약 1/5가량이었다. 이 전쟁의 직접적 원인은 김일성의 남침이었지만, 남한 역시 무비유환(無備有患)의 원인 제공자였다. 제주 4.3사건, 여순사건 등으로 극심한 혼란을 겪었다. 1950년 1월 미 국무장관의 애치슨라인 발표는 김일성의 오판을 부추겼다. 한국전쟁은 정치적 무능과 국제 정세의 변화를 읽지 못했던 외교적 실패의 후과였다. 역시 부질없는 가정이지만 당시 자유당 정부가 정치적 외교적 군사적으로 유능했었다면 5천년 역사상 최악의 참상을 방비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1997년 외환위기 장면은 아직도 생생하다. 당시 명동의 한 증권사에서 일했던 필자는 그해 겨울 을지로입구역을 가득 메운 노숙자들의 추워 떠는 비참한 모습들과 매일 마주해야만 했다. 실로 고통스러웠다. 그 사태로 인해 대우, 삼미, 진로 등 재벌기업들이 무너졌고, 부지기수의 중소기업들은 문을 닫았으며, 수많은 가정이 해체됐다. 이듬해 98년 경제성장률은 80년 2차 오일쇼크 이래 초유의 5.1% 역성장을 기록했다. 만일 당시 한국 정부가 단기 외채 급증, 외환보유액 감소 등에 대한 국내외 이코노미스트들의 사전 경고에 선제적으로 대처했었다면 경제적 참사를 막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최근 한국에서는 새로운 위기를 경고하는 목소리가 높다. 앞 서의 세 가지 사건이 국가적 위기였다면 현재 제기되는 위기는 특정 기업의 위기다. 바로 삼성전자 위기론이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경제적 위상과 비중을 고려할 때 국가적으로도 중차대한 문제다. 올해 반기 기준 424만명의 소액주주들은 10만전자의 꿈을 접고 5만전자의 현실에 운다. 따라서 그 위기의 원인 진단과 처방 역시 백화제방, 백가쟁명을 방불케 한다. 과연 이번에는 삼성전자에 드리운 위기를 선제적으로 진단하여 예방할 수 있을까?

먼저 유사 사례 분석을 통해 시사점을 찾아보자. 한때 노키아는 핀란드 수출 물량의 20%를 책임지고 전 세계 핸드폰 시장의 40% 시장점유율을 기록했다. 그런 노키아가 왜 몰락했을까. 핀란드 알토대와 프랑스 인시아드대는 그 원인 규명을 위해 2005년부터 2010년까지 회사 내부에서 발생한 일들을 분석하기 위해 최고경영진, 중간관리자, 외부 전문가 74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문제의 핵심은 최고경영자와 중간 관리자들간 소통과 협력의 부재였다"고.

즉 기술 역량이 부족한 최고경영자와 해당 역량은 갖추었으나 보신적 입장을 취하기 쉬운 중간관리자들은 동일한 위기에 대해 각기 다른 태도를 취했다. 특히 위계 문화가 강했던 노키아의 경우 위기 시에 최고경영자는 더욱 공격적이고 감정적인 태도를 취한 반면, 후자는 그렇다 보니 더욱 위축되어 사태의 본질을 희석시키고 상부층에 듣기 좋은 왜곡된 정보를 전달했다. 그런 과정이 5년여 반복되면서 휴대폰 업계의 최강자 노키아는 병들었고 침몰했다.

올해 3월 닛케이는 '대기업 병'이라는 제목으로 삼성의 문제를 파헤쳤다. 삼성전자 30대 연구원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직속 상사에게 보고할 때마다 '전례가 없으면 GO 할 수 없다'는 피드백만을 받았다고 한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서 일부 연구원들은 SK하이닉스로 짐을 쌌고, 나머지는 혁신의 엔진을 끈 채 평범한 샐러리맨들이 되었다.

선대 이건희 전 회장이 이끌던 삼성은 혁신의 아이콘이었다. 그는 혁신을 독려하기 위해 모든 사업을 '씨앗', '묘목', '고목'으로 분류해 끊임없이 혁신과 쇄신, 개혁을 강조하며 독려했다. 자녀와 아내만 빼고 다 바꾸라고도 일갈했다. 이 회장의 집무실인 승지원으로 불려 간 임원들과 엔지니어들은 그의 집요한 질문 공세에 식은땀을 흘렸다. 그만큼 이 전 회장은 철저했다. 그 지식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었던 임원들은 이 회장의 질문에 벌거벗겨지듯 지적 무장해제를 당했다. 이러한 치열한 소통을 통해 이 전 회장은 시장변화와 기술적 동향을 이해했고, 그에 따라 선제적이며 모험적인 시도를 감행했다. 글로벌 넘버원 기업은 그렇게 탄생했다.

현재 위기의 삼성에게 앞선 노키아 사례를 반면교사로 추천하고 싶다. 아울러 선대 이건희 회장의 리더십도 반드시 참고할 것을 권한다. 두 가지 모두의 공통점은 최고 의사결정자와 나머지 구성원들간의 소통문제다. 따라서 이재용 회장이 직접 나서 소통해야 한다. 그가 환골탈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부자 삼대 못 간다. 그렇지 않으면 삼성이 한국경제 위기의 새로운 진앙지가 될 수도 있다. 호미로 막을 건 호미로 막아야 한다. 삼성의 유비무환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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