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플랫폼 '케미버스' 신약 개발 기간 단축유한양행 기술이전, IPO로 기술력 인정···'희귀질환' 공략AML 치료제 내년 임상2상 목표, 조기 상용화로 매출 확보
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윤정혁 파로스아이바이오 대표는 최근 자사주 1만671주를 유가증권시장을 통한 장내 매수 방식으로 매입했다. 이번 자사주 매입으로 윤 대표의 보유 지분은 기존 274만358주(발행 주식 총수 대비 21.21%)에서 275만1029주(21.29%)로 약 0.08% 포인트 증가했다. 자사주 매입 규모가 크지 않아 지분율에 영향은 미미하지만, 신약 개발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만큼 책임 경영의 의지를 보이기 위한 결정이었다는 게 회사측 설명이다.
파로스아이바이오는 약 62억건의 단백질 3차원 구조 및 화학물 빅데이터가 탑재된 '케미버스'를 기반으로 희귀난치성질환 치료제를 개발하는 기업이다. 창업주인 윤 대표는 연세대학교 화학과 학사, 카이스트 화학과 석·박사 학위를 받은 후 1994년부터 목암생명공학연구소 선임연구원을 지내며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한 신약 개발을 연구했다.
당시 국내에서 생소하게 여겨지던 분야였지만 윤 대표는 AI를 통한 신약 개발이 바이오산업의 미래라는 확신을 갖고 한국 MSI 수석연구원, 아이디알 연구이사 등을 거쳐 2011년 이큐스앤자루 바이오사업 부문 대표직을 맡았다. 이후 2016년 파로스아이바이오의 전신인 '파로스아이비티'를 설립했으며, 2020년 사명을 변경했다.
윤 대표는 회사 설립 당시 미래창조과학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바이오의료기술개발사업-신약개발지원센터 R&D지원사업에 참여해 '케미버스'를 개발했다. 케미버스는 총 9개 모듈로 구성됐는데, 이 중 '딥리콤'(DeepRECOM)과 '켐젠'(ChemGEN)은 독창성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딥리콤은 약물과 호응하는 타깃 유전체 분석을 통해 신규 타깃 및 적응증을 제한하고, 켐젠은 신규 화합물 스크린과 생성 모델을 통해 선도 후보 물질을 도출한다. 파로스아이바이오는 디스커버리 단계에서 케미버스를 활용해 신약 개발 과정을 효율화하고 있다.
신약 개발은 통상 10년 이상이 걸리는 장기 프로젝트이지만 AI를 활용하면 기간과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이에 국내에서도 신약 개발에 AI 기술을 접목하려는 시도가 늘고 있는데 임상에 들어간 경우는 많지 않다.
반면 파로스아이바이오는 AI 알고리즘을 통해 도출한 후보물질을 임상에 진입시켜 기술력을 인정받았고, 지난 2022년엔 유한양행에 KRAS 저해제인 'PHI-201'을 기술을 이전하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그 결과 회사는 지난해 투자 한파 속에서도 기업공개(IPO)에 성공했으며, IPO 전 총 415억원 규모의 시리즈 투자를 받았다.
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파이프라인으로는 AML 및 재발성난소암(OC) 치료제 'PHI-101', 전이성 난소암 치료제 'PHI-301', 담관암 치료제 'PHI-401', 대장암 치료제 'PHI-501' 등이 있다.
임상 진행 속도가 가장 빠른 물질은 AML 치료제인 'PHI-101'이다. 이는 2016년 케미버스 개발 당시 신약 개발 단계에 바로 적용해 도출에 성공한 물질이다. 파로스아이바이오는 심장독성 위험이 낮고 FLT3 저항성 F691L 돌연변이도 억제하는 후보물질 'PHI-101' 도출에 기여함에 따라 독점적 개발권을 확보했다.
현재 국내와 호주에서 임상 1b상을 진행하고 있으며, 연내 완료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회사는 곧바로 임상2상에 진입해 그 결과에 따라 내년 말 조기 상용화하는 것을 계획 중이다.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국내 식약처로부터 희귀의약품 지정 승인(ODD)을 받았기 때문에 조건부 판매 승인을 노려볼 수 있다는 게 회사측 설명이다.
희귀의약품 지정은 희귀난치성 질환 또는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에 대한 치료제의 개발과 허가가 원활히 이뤄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다. 개발단계 희귀의약품 지정은 ▲적절한 치료 방법과 의약품이 개발되지 않은 질환인 경우 ▲약리기전과 임상시험 데이터 등으로 볼 때 기존 대체의약품보다 현저히 안전성 또는 유효성 개선이 예상되는 의약품의 경우 승인된다.
일반적인 질환에 대한 신약 승인은 임상 3상까지 전 과정을 마쳐야 하고, 기존 사용 중인 의약품 대비 우월성도 입증해야 한다. 하지만 난치성 희귀질환은 사용할 수 있는 치료제가 없기 때문에 조건부 승인 제도를 통해 임상 2상의 결과로 우선 사용 및 판매가 가능하다.
'PHI-101'은 기존 약물에 불응하거나 재발한 AML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FLT3 표적 항암제다. AML은 골수에 골수아세포(BM Blast)가 20% 이상 차지하는 혈액암의 일종으로, 질환 진행 속도가 매우 빠르다. 진단 후 치료받지 않으면 1년 이내에 90%가 사망할 정도로 매우 치명적이다.
백혈병 환자 중 30~35%는 FLT3 돌연변이를 보이는데, 이 변이가 있는 AML 환자는 그렇지 않은 경우 대비 생존율이 약 2배 낮고, 재발 위험이 높다고 알려져 있다. 현재 FLT3 억제제로 임상 현장에서 쓰이는 약물로는 일본 아스텔라스의 '조스파타'(성분명 길테리티닙)가 있다. 조스파타는 FLT3 변이 양성 재발/불응성 AML 환자를 위한 국내 최초의 표적치료제다.
다만 파로스아이바이오는 'PHI-101'가 조스파타를 대체해 항암제의 국산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조스파타 치료 후 재발 또는 불응한 환자들이 참여한 임상 1b상에서 'PHI-101'의 유의미한 효능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회사가 지난해 12월 미국혈액학회(ASH)에서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PHI-101은 기존 FLT3 저해제 치료 후 재발한 환자들에서 골수아세포를 5% 미만으로 줄였다. 또 평가할 수 있는 환자의 60%가 종합 완전관해 보였고, 모든 용량에서의 내약성이 우수했다. 투여 제한 독성성(DLT) 또한 발생하지 않아 우수한 안전성과 유효성을 입증했다.
'PHI-101'은 케미버스를 활용해 적응증을 확장, OC 치료제로도 개발 중이다. 현재 OC 치료제 시장을 점유하는 PARP 저해제 계열 약물 이후 차세대 혁신 신약을 목표로 국내에서 임상1상을 진행하고 있다.
이밖에 'PHI-501'은 악성 흑색종을 비롯해 난치성 대장암, 삼중 음성 유방암 등 난치성 고형암을 대상으로 임상 1상시험계획(IND) 신청을 준비 중이다. 이 물질 또한 지난 2021년 FDA 희귀의약품 지정 승인을 받았다.
회사는 조기 상용화 및 기술이전을 통해 매출을 발생시키고 글로벌 바이오텍으로 도약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상장 2년차인 파로스아이바이오는 지난해에 이어 올 상반기에도 매출이 전무한 상황이다. 영업손실은 2021년 84억원, 2022년 106억원, 2023년 101억원, 올 상반기 67억원이었다. 상장 이전에는 '케미버스'로 매출을 냈지만 앞으로는 R&D에 전념해 AI 신약 개발 성공 사례를 만들어 나가겠다는 계획이다.
회사가 희귀난치성질환 치료제 개발에 중점을 두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현재 치료제가 존재하는 희귀질환은 약 8%에 그칠 정도로 미충족 수요가 높다. 일반적인 블록버스터 약물과 비교하면 시장 규모는 작지만 개발 성공 시 경쟁 약물이 제한적이고 안정적인 수익 확보도 가능하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물론 미국 등 많은 국가가 희귀난치성질환 치료제 개발 장려를 위해 세제 혜택, 신약 승인 패스트트랙 등을 지원하고 있다.
회사측은 "정부 지원과 기업의 연구 개발 시너지로 인해 희귀질환 신약 개발 성공률은 그렇지 않은 질환 대비 약 3배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파로스아이바이오는 AI 신약 개발 기업으로는 드물게 파이프라인의 자체 임상 진입에 성공했고, 연구개발 및 프로젝트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중장기적 성장에 확신을 가지고 있는 만큼 저평가된 기업 가치에 대한 책임 경영의 의지를 보일 것"이라고 전했다.
뉴스웨이 유수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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