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회사는 가족친화경영에 진심이었다. 임산부에게는 임신기간 내내 단축근무를 부여한다. 난임 치료비를 제공하고, 난임 치료 당일은 유급휴가로 처리해 준다. 유연근무를 7년 전부터 도입했고, 누구나 주 2회 재택근무를 할 수 있다. 돌봄 재택은 무제한이다. 육아휴직은 최장 2년까지 허용한다. 5000만원까지 무이자 대출도 해준다. 이 모든 ESG 프로그램 도입의 배경에는 대표의 "기업은 사회로부터 각종 혜택을 받았기에 사회적 책임을 통해 다시 갚아야 한다."는 철학이 자리 잡고 있었다.
더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 회사의 합계출산율이 2.77이란 사실이다. 경영 실적도 비교적 양호하다. 지난 2020년 이래 4년 연속 매출액이 증가했고, 동기간 33%의 매출 신장을 기록했다. 2023년 기준 영업이익률 15.5%, 당기 순이익률 13.6%도 동종업계 대비 우수한 수치다. ESG 경영이라는 사회적 책임과 경영실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고 있다.
하지만 이 회사 사례를 접하면서 최근 자본시장의 핵심 의제인 상법 382의 3(이사의 충실의무) 개정 논의가 오버랩되면서 의문부호 하나가 생겼다. 즉 만일 상당수 자본시장 참여자의 열망대로 동법 동조항에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가 추가된다면, 그리고 고운세상 코스메틱이 상장된다고 가정한다면, 위 이주호 대표의 경영철학과 가족친화경영 프로그램들이 상장 이전과 동일하게 유지되고 실행될 수 있을까? 혹여 행동주의 투자자들이 위 회사의 일정 지분을 취득한 후 회사의 재무제표를 열람하고 아래와 같은 배경으로 이사를 상대로 한 소송전을 펼친다면 회사의 ESG 경영이나 가족친화경영이 위축될 개연성은 없을까?
그 배경이란 다음과 같다. 대체로 2,3년의 단기적 관점에서 주주 이익 극대화를 표방하고 그것을 추구하는 일부 행동주의 투자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 위와 같은 가족친화 경영은, 회사가 부담하지 않아도 될 불요불급한 비용, 재무성과 제고와의 인과성이 검증되지 않은 매몰 비용, 따라서 회사의 탑라인과 바텀 라인을 제약함으로써 그만큼 주주들에게 돌아올 몫을 제약할 수 있다는 논거의 입론이 가능하고, 이를 근거로 주주와의 대화를 요청하거나 법적 절차를 밟을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회사와 주주 간에는 몇 가지 관점의 큰 차이가 존재한다. 첫째, 경영 판단 시계(視界)의 차이가 그것이다. 의사결정에 있어서 통상 회사는 장기적이며 주주는 상대적으로 단기적이다. 물론 주주 간에도 천차만별이고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따라서 그 프로젝션 기간에 따라 특정 프로젝트가 매력적일 수도 있지만, 배임적 의사결정으로 둔갑 될 수도 있다.
둘째, 유형적 무형적 측면, 재무적 비재무적 측면에 대해 일반적으로 상호 간 시각 차이가 있다. 특정 섹터의 기업경영에서 다양한 전문성과 오랜 경험을 축적한 경영자들에게는 이른바 통찰력이라는 것이 있을 수 있다. 흔히들 감(感)이라고도 말하고, 암묵지(暗默知)라고도 말하지만 이러한 것들이 체계화되면 숫자나 문자로 담기 힘든, 이른바 경영철학이 된다. 이 철학에 근거한 자원배분을 화폐단위로 계량화하여 여타 유형자산 및 재무적 측면과 그 우위성을 객관적으로 비교하기란 어렵다. 가족친화경영, 사람 중심 경영 등이 그 대표적 사례가 아닐까?
따라서 상법 382의 3(이사의 충실의무) 개정 논의에 있어서 '주주'를 추가하되, 그 단서 조항으로 주주 이익 관점에서 종업원, 소비자, 협력사, 지구환경, 지역사회 등 이해관계자 이익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명기할 필요가 있다. 그러할 때 위 상법 개정으로 인한 ESG 경영의 형해화나 표류, ESG의 홍보 수단 전락을 일정 부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이해관계자를 중시하는 대륙법계의 회사법은 물론이고, 보통법계인 영국의 회사법(Companies Act 2006)에서도 이사들은 의사결정을 함에 있어서 주주 이익을 최우선으로 놓고 종업원 등 이해관계자 이익도 고려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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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웨이 임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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