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개봉한 어벤져스 시리즈의 첫 편은 '아이언맨'(Iron Man)이었다. 당시 누구도 성공을 확신할 수 없었는데, 그 이유는 만화를 영화화할 때 팬들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없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범적으로 하나 만들기로 한 것이 아이언맨 캐릭터였다. 마블의 많은 캐릭터 가운데 아이언맨을 선정한 이유도 단순했다. 아이들이 가장 좋아한다는 설문 조사 결과 때문이었다. 최소한 본전은 생각할 수 있었다. 기대와는 다르게 제작비 대비 4배의 흥행 수익을 냈고, 후속편도 제작할 수가 있었다.
이후 흥행이 계속되면서 2012년 기념비적인 어벤져스 시리즈를 낳게 된다. 어벤져스 시리즈는 갈수록 흥행 기록은 스스로 경신을 해나갔다. 마침내 '어벤져스-엔드 게임'은 아바타의 흥행 수익보다 5천만 달러가 많으며 역대 박스오피스 1위 영화가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역대 외화는 '어벤져스 엔드 게임'으로 1천397만 명이 관람하고, 1천220억 원의 수익을 낳았다. 이렇게 뛰어넘을 수 있었던 것은 스노우볼 이펙트(snowball effect) 즉, 눈덩이 효과 때문이었다.
눈덩이 효과는 어떤 현상이나 사건이 초기에 미미하다가 나중에 점점 더 커지는 현상을 말한다. 경제에서는 워런 버핏이 복리 이자의 효과를 설명할 때 인용하고는 했다. 사회과학 관점에서는 긍정적으로 변할지 부정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콘텐츠 산업에서는 스마트 모바일은 물론 글로벌 OTT 서비스의 진전으로 더욱더 눈덩이 효과가 증가하였다. 잘 알지 못했던 이들도 여러 매체 경로를 통해서 접할 수 있는 콘텐츠 환경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어벤져스 시리즈는 개인 캐릭터에서 시작해서 영웅들의 집합과 연대로 진전시켰다. 이러한 점은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듯싶었다. 슈퍼맨이나 배트맨처럼 혼자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지적을 많이 받아 왔다.
그런데 이순신 3부작은 순차적인 스토리텔링을 구사하지 않았다. 기본적이고 고전적인 서사 진행 구조인 기승전결이라는 점과 달랐다. 이는 K 콘텐츠의 패턴이었다. 2016년 방탄소년단은 LOVE YOURSELF 시리즈의 첫 번째 앨범도 독특했다. 두 번째에 서사 전개에 해당하는 앨범 '러브 유어셀프 승 허(LOVE YOURSELF 承 Her)를 먼저 발표했기 때문이다.
이순신 3부작은 첫 편에 무게를 실었는데, 두 번째에 해당하는 해전을 배치했다. 즉 가장 극적인 명량해전을 다루었다. 시간순으로 명량해전은 한산 해전 다음에 해당한다. 2014년 김한민 감독이 먼저 명량해전을 선택한 것은 의도가 있었다. 가장 극적인 명량해전을 통해서 관객들을 대거 모으기 위한 것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한산과 명량을 제작할 여건을 마련하려는 했다. 이는 처음부터 강력한 팬덤을 구축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하지만 변수는 있었다. 당시 세월호 참사 때문에 과연 흥행이 되겠는가 싶었다.
영화 '해무'와 달리 바다를 다루었음에도 비극적이거나 우울하지 않은 결말은 오히려 큰 반전의 결과를 안겨주었다. 어려운 상황과 조건에서 승리를 끌어낸 이순신의 활약이 오히려 우울감에 빠져 있던 국민에게 위로와 희망이 되었다. 하지만 생각하지 못한 변수가 생겼다. 영화 '아바타'를 제치고 총관객 17,615,057명으로 역대 영화 1위를 기록했다. 아직도 이 기록은 깨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모두 충성적인 팬이 아니라 스크린 독과점의 결과라는 한계도 있었다.
뒤이어 변수의 연속이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개봉 예정이었던 '한산'이 개봉을 할 수가 없었다. 2022년 1년을 미뤄 마침내 개봉했지만, 전작 명량에 비해서 턱없는 흥행 기록이었다. 7,266,340명으로 손익분기점 600만 명을 넘겼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하지만, 코로나19 이전과 비교했을 때 좌석 회복률이 50% 정도인 상황을 고려한다면 대단한 성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외계인 +', '비상선언' 등의 영화가 흥행에 실패한 것은 이를 잘 말해주고 있었다. 물론 창작 시리즈의 흥행과 비교할 수 없는 점이 있지만, 위기 상황에서 어떤 콘텐츠가 강점이 될 수 있는지 보여준 셈이다.
2023년 영화 '노량'은 애초의 짐작과 다른 방향에서 결실을 거두어가기 시작했다. 처음에 김한민 감독은 '노량'이 이순신 장군의 죽음 때문에 경쟁력이 약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미 '명량'과 '한산'을 보았던 관객들은 마지막 완결 시리즈인 '노량'을 극장에서 확인하기 위해 쇄도했다.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이었음에도 시리즈의 완결에 대한 열망이 팬심으로 작동한 셈이다. 이렇게 '노량'까지 완결되는데, 10년의 세월이 소요되었다. 기존에 알고 있던 스노우 볼 효과와는 또 다른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
이전이 이순신 콘텐츠가 사극의 한계에 머물러 흥행이 불투명할 수 있었는데 이를 극복했다. 더구나 해상 전투 장면이 100여 분에 이르니 극장에 갈만한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이러한 점은 바다를 무대로 스토리텔링을 구축한 영화 '아바타-물의 길이'나 '밀수'에서도 비슷한 관람 동기를 찾을 수 있다. 이렇듯 영화관에 가야 할 이유와 명분을 주어야 한다. 아무리 익숙한 역사적 사실이라 해도 어떻게 할 수 있다면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모델이 앞으로 시도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하지만 10년 동안 해상 전투 촬영 노하우는 한국이 아마도 세계 탑 클래스에 올라가게 했다. 트렌디함은 따로 정해져 있는 포맷이나 장르가 아니라 어떻게 만드는가에 있다. 사극이 킬러 콘텐츠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고려거란전쟁', '서울의 봄'과 함께 보여주고 있는 상황에서 새싹은 다시금 피어올라 올 것이다. 이순신 3부작과 관련하여 어벤져스 시리즈의 장점도 발전시킬 필요는 있다. 다양한 캐릭터의 부각 그리고 연대와 협업이라는 점에서 이순신은 새로운 진화가 필요하다.
뉴스웨이 안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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